백 상 봉 작가
백 상 봉 작가

어느 모임을 가든 처음에는 한마음으로 모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친밀해지는 사람이 있고 소원해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공자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친구는 2부류가 있는데 정직한 친구, 성실한 친구, 박학다식한 친구는 유익하지만, 허세 부리는 친구, 아첨하는 친구, 감언이설 하는 친구는 손해를 끼치는 친구”(孔子曰 益者三友 友直,友諒,友多聞, 益矣. 損者三友 友便辟,友善柔,友便佞, 損矣)라고 말했다.

공자는 ‘인의’를 중시하는 유교의 중심 사상을 제시한 성인으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것이 그 사상의 핵심이다. 그런데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로 구분한 것은 취사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신이 그러한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대처를 잘하여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충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과정에서 이득이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빈번하고 큰 피해를 당해 원수지간이 되는 경우까지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친구와 단절하고 혼자 사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줄어들고 작아지는 과정에서 ‘독거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바람직한 생활방식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의미는 달라진다. 어릴 적에는 함께 노는 사람, 나를 외롭지 않게 하는 사람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의 경계는 분명해진다. 좋은 친구는 나의 삶을 가볍게 만드는 사람이며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고 침묵조차도 불편하지 않다. 내가 힘들 때 조용히 곁을 지켜주고 잘나갈 때는 진심으로 박수를 쳐줄 뿐만 아니라 그는 내 인생의 리듬을 깨뜨리지 않고 오히려 내 걸음에 발맞추어 나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해준다.

반면 나쁜 친구는 겉으로는 다정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경쟁을 한다. 내 행복을 축하하는 척하지만, 어느새 비교와 시기 속에 나를 깎아내리려 해서 그와의 대화는 늘 피곤하고 만남 뒤에는 허전함이 남는다.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가 기원정사에 머물 때 생루라는 바라문이 찾아와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물었다. 그에 대한 부처의 대답은 이랬다. “나쁜 친구는 보름달과 같아서 처음에는 밝고 환하지만 밤낮이 돌아가면 점점 줄어들어 나중에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나쁜 친구도 그와 같아서 날이 갈수록 믿음이 없고 계율과 지식과 보시와 지혜가 없어지는 것이다. 반면 좋은 친구는 초승달과 같아서 처음에는 희미하지만 밤낮이 돌아가면 점점 환해진다. 보름이 되면 완전하게 둥글어져 모든 사람이 쳐다보게 된다. 좋은 친구도 그와 같아서 날이 갈수록 믿음이 더하고 계율과 지식과 보시와 지혜가 더해지는 것이다.”

삼강오륜에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는 말이 있다. ‘친구 간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 귀에 익지만 ‘붕’(朋)과 ‘우’(友)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다. 먼저 ‘친구’라고 하면 우리말로는 ‘벗’으로 통하지만 한자어로는 ‘붕우’(朋友)라고 구분을 한 것은 단어 속에 의미가 있다. ‘우’는 우정, 친우, 죽마고우, 학우 등과 같이 쓰이지만 ‘붕’은 붕당 외는 단어가 없다. 따라서 ‘붕’은 무리, 동아리, 뜻을 같이하는 동료라는 의미로 쓰이고, ‘우’는 서로 친하게 지내거나 사귀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살다 보면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풍파를 만나고 큰 암초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듯이 인생도 혹독한 겨울이 온 뒤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고 했다. 평생 신의를 지킨다던 주식친구(酒食親舊)들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체에 걸러지듯 줄어들고 외롭고 곤궁할 때 비로소 좋은 친구임을 알게 되니 그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맹자는 사람의 품성과 삶의 질이 어떤 사람과 어울리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버려야 할 유형 4가지를 제시하며 잘못된 관계를 끊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했다. 

첫째는 이익만 좇는 관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다가오는 사람은 결국 당신을 이용하고 떠난다. 이런 관계는 신뢰가 아닌 계산 위에 세워지기 때문에 위기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무너진다.

둘째는 아첨하는 관계다. 겉으로는 칭찬과 호의를 보내지만 속으로는 다른 의도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진심 없는 아첨은 결국 서로를 해친다. 올바른 말보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관계를 경계해야 한다.

셋째는 원한을 키우는 관계다. 사소한 일에도 앙심을 품고 오래 기억하며 기회만 되면 보복하려는 사람이다. 이런 관계는 함께 있을수록 불안과 경계심이 커지고, 결국 서로를 소모시킨다.

넷째는 도리를 저버리는 관계다. 약속을 가볍게 깨고 어려울 때 등을 돌리는 사람이다. 도리를 잃은 관계는 어떤 명분이 있어도 붙잡아서는 안 되며 신의 없는 사람 곁에서는 당신의 인격도 무너진다.

맹자가 말한 ‘버려야 할 관계’는 단순히 불편한 사람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어지럽히고 인간성을 훼손시키는 인연이다. 더 좋은 친구를 얻고 싶다면 친구의 좋은 일에 기뻐하고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다. 정말로 친구와 오래 사귀고 싶다면 반드시 현명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기 때문에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어제의 친구가 오늘 적이 될 수 있으며 오늘의 적이 내일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살아가면서 우정의 기준을 ‘막역지우’나 ‘관포지교’와 같이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다 보니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를 구분하여 스스로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친구는 인생의 수를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사람이다.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는가보다는 그 사람이 곁에 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좋은 친구는 나를 더욱 빛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내 인생의 선물이다. 비록 친구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관계를 가꾸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때로는 솔직하게 충고를 하고 때로는 침묵으로 위로를 해주기만 해도 그는 위안이 되고 온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