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인구가 줄고 일자리는 사라지며 생활환경도 도시보다 뒤처진다. 그래서 우리는 “인구를 유입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생활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이 말만으로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지역 안에서 만들어진 재화와 서비스로 생긴 돈이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고, 지역 내부에서 돌며 다시 지역에 투자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지역 내 재투자율을 높여 그 재투자가 다시 지역의 산업생산 역량을 키우고, 그 산업이 지속가능하게 지역경제를 지탱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구조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인구 증가, 일자리 확대, 생활여건 개선 등이 본격적으로 가능하다.
물론 외부투자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소규모라도 지역 내 재투자 체계와 재투자 순환을 일정 정도 이룬 후에 지역산업이 중심이 돼 외부투자를 활용해야 지속적인 지역부흥이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내부의 순환경제 생태계를 구축하고, 지역경제권의 가치를 스스로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역순환경제(local circular economy)’이다. 지역에서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고, 지역에서 그것을 소비하고, 다시 지역에 투자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경제의 생태계가 살아난다.
최근 남해군의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지역 지정은 지역순환경제와 연관지어 호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이 사업은 2026년부터 2027년까지 2년간 전 군민에게 매월 15만 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는 구조다. 이에 우리는 지급되는 상품권이 단순 복지성 지원이 아니라 지역 내 소비·재투자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계기로 만들 수 있는 호기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다.
지역 내 순환경제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첫째, 지역자본이 축적되고 재투자될 수 있는 기제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금융기관이나 사회적경제 조직, 공공기관 등이 지역산업에 대한 여신이나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둘째, 지역 생산주체들이 서로 연계되어야 한다. 농어업인, 가공업체, 관광업체, 숙박업체 등이 단독으로 존재해서는 한계가 있다. 이들이 네트워크를 이루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 셋째, 주민참여와 거버넌스의 역할이다. 지자체, 주민, 기업이 협력하고 지역공동체가 주인이 돼 생산·소비·재투자 구조에 참여해야 한다. 넷째, 지역 내 소비를 유도하고 외부로의 유출을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지역화폐나 지역상품권, 우선구매제도 등을 통해 지역 내 소비 흐름이 지역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게 설계해야 한다. 다섯째, 생활여건 개선과 산업생산 역량 강화는 병행되어야 한다. 순환경제 구조가 뿌리를 내릴 때, 일자리 창출과 인구유입, 정주환경 개선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남해군의 맥락에서 보면, 해양·농어업·관광 자원이 풍부하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내부 소비·재투자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 먼저 남해군 내부의 가치 흐름을 진단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지역 내부 소비 및 재투자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로컬푸드를 강화해 지역 농산물 소비를 확대하고, 가공업체와 관광·체험업체를 연계한다. 숙박·캠핑·체류형 관광객이 지역 내 숙박·음식업·체험업체에서 소비하고, 그 수익이 지역기업이나 주민조합 등에 다시 투자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재투자 기금 및 금융 메커니즘도 구축해야 한다. 남해군 차원에서 ‘남해군 지역순환경제기금’ 같은 기금을 마련해 지역기업이나 사회적경제 조직에 낮은 이율의 대출 또는 투자를 제공하고, 수익이 지역 내로 회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 거버넌스 및 주민주도형 사업도 확대해야 한다.
이런 순환구조가 자리를 잡으면, 남해군은 이를 기반으로 산업생산 역량 강화와 일자리 창출 및 인구 유입 전략을 본격화할 수 있다. 핵심은 지역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다시 투자되는 순환구조다. 남해군이 이 흐름 위에 설 때 비로소 인구감소와 산업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역주권형 성장 궤도에 들어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제 남해군민과 지역주체들이 ‘지역에 머무르는 가치’가 ‘지역에서 다시 자라나는 가치’로 연결되도록 첫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