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가는 가을,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칩니다. 이맘때쯤이면 형형색색 단풍잎으로 수놓을 나무엔 아직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가을의 멋을 느끼기에는 이른 듯합니다. 

나무에 달린 연녹색 잎이 바람 따라 흔들거릴 즈음 축제의 장으로 자리한 체육관 앞에는 요란한 음악 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축제의 장 전체를 더 들썩이게 하는 공연 현장엔 흘러간 가요에 춤사위를 놓지 않는 열정의 객이 흥겨움을 더하고 건너편 부스에는 익숙한 솜씨로 달구어진 달인들이 군중의 시선을 이끕니다. 남해 곳곳에서 나름의 취미와 특기를 살린 장인의 솜씨가 한자리에서 장을 펼치니 아! 이것이 AI로 대변되는 시대에 잠재된 인간의 역량이 표출되는 절정의 순간임을 직시합니다. 

사람이 일평생 자신의 잠재된 역량을 100% 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기도 하는데,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자기만의 솜씨, 자기만의 기술을 대중에게 선보인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익숙한 기술과 재료로 어우러진 솜씨를 뽐내는 사이, 실내외 경기장에선 축구, 족구, 달리기, 배구의 역동성이 열기를 더하니, 축제의 자리엔 그야말로 동(動)과 정(靜)이 하나로 엮어진 열기가 하늘마저 감동에 이르게 합니다. 

축제의 뒤안길, 발길 가는 곳 따라 들려오는 익숙한 유행가 가사에 흥에 겨워 어깨가 들썩거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마저 흥에 겨울만큼 완벽한 만족을 자아내기에는 무언가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그러한 여운 속에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무를 무엇으로 달랠 것이며, 무엇으로 충족할 수 있겠느냐는 갈망이 스며있는지도 모릅니다. 행여나 채워지지도 충족되지도 않는 욕구를 풀 길이 없어 외연의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아닌지, 무엇으로도 충족시키지 못한 아쉬움,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사람은 더욱 깊게 자극적이고 유혹적인 언사에 휩쓸린다면 고독과 허무의 빈자리는 영영 채워지지 않을지도 모를 것입니다. 

채워도 달래도 채워지지 않고 달래지지 않는 심연의 세계, 그 요란한 세계를 달굴 말이 범람하는 세상에 말의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마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혼란과 혼돈에 휩싸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수같이 흐르는 인심 풍속에는 때때로 비난, 비판, 충동, 죽임에 이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말의 섬득함이 도사리고 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혼돈의 세상을 부추기는 말 속에 각각의 심리가 자극의 빈도를 더해가지만, 이러한 혼돈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불안과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터득하지 못한다면 축제다운 축제를 맛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동적이든 정적이든 축제의 장을 열면서 마음에 쌓인 원망과 상처와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을 간직한 채 축제에 임한다면 심신이 어찌 편안하여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군중의 심리를 안정시킬 그러한 시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안타까움에 솔깃하나마 마음을 달랠 고요의 정감이 서려 있는 공간을 갈망하는 아쉬움이 커지기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내면의 심연이 외연의 심중에게 말을 건넵니다. 정말 완벽하게 내 마음을 충족시킬 그게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이념의 갈등, 생각의 차이, 다른 생각이 용납되지 않는 세상을 일시나마 잠재울 축제라면 다행스럽기야 하겠지만, 하지만 그 이면에 여전히 남아있을 갈등을 달랠 길이 없다면 이를 어이하겠습니까? 말의 시류에 하늘마저도 절규하며 평온해지지 않을 것이며, 천지자연의 생명조차 말의 횡포에 심성이 물들어 포악한 심리를 갈구어 낸다는 사실을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시대의 풍속이라 해도 만약 지금까지 외연의 행보에서 만족을 얻지 못했다면, 이제는 한 번쯤 방법을 달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언행과 심리를 대변하는 말이 사납고 거칠면 마음의 작용이 이와 같고 성품의 정갈함이 이와 같아질 것이니, 축제의 기운인들 어찌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을 이루는 실체는 의식이 일어나 말이 주체가 되어 행동을 수반하는데, 말은 마음이 근본이 되므로 만약 그 근본이 밝지 못하면 세상은 세상대로 나는 나대로입니다. 말로써 축제가 시작되고 말은 생각이 발동이 되어 오장과 사지를 움직이고, 행동의 모체가 되니 말이 반드시 바르면 세상도 바를 것이요, 말이 반드시 바르면 사람마다 반드시 바를 것입니다. 정과 동이 합하여 맥박이 고르고 호흡이 정화되어 혈액이 깨끗해지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편안해져 말이 또한 자연스럽게 발설되니 여기서부터 축제의 모음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다소 추상적인 구상이긴 하나, 외연의 대상에 몰입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안을 찾아가는 행보에도 관심을 두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흔들림이 와도, 혼돈과 갈등의 분초가 감정을 달구어도 동요없는 그곳엔 잠잠함과 고요가 한없이 스며있으며, 시간과 공간의 개념 없이 흔들림 없는 일심(一心)이 자리한 곳, 누구도 범람할 수 없는 자기 안에 살아있는 본래 자기의 모습, 그 경이로운 느낌을 만에 하나라도 느낄 수 있다면 더욱 의미 있는 최고의 축제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잠잠한 것은 성품이 발동이 되고, 여기에서 마음이 일어나 비로소 세상이 형성되니, 만약 내 안에서 잠잠함을 얻지 못하면 세상은 세상대로입니다. 마음에 고요가 담긴 그곳, 그 내밀한 정서에 익숙해지면, 일용행사가 한 치 어긋남 없이 행사될 것이요, 시류의 복잡함도 평온하게 다룰 창구가 될 것이니,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만상이 이를 흠모한다면, 이처럼 의미 있는 축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정녕 축제의 진면모는 자기 안에서 자기를 찾아 나서는 행보라는 것을 축제의 장 한가운데에서 되뇌며, 간절히 열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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