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은 인구 급감과 고령화, 그리고 지역 경제 침체라는 삼중의 위기 앞에 서 있다. 농가의 평균 소득이 도시 근로자 가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지는 사회적 경고음이다. 이런 시점에서 남해군이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된 것은 단순한 복지정책의 확장이 아니라, 지역의 생존을 넘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려는 새로운 사회적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 성과는 지난 몇 달간 이어진 남해군민들의 연대와 실천, 군행정의 선제적인 결단과 노력이 합쳐진 남해군민 총화의 결과였다. 지난 5월 ‘농어촌기본소득 남해운동본부’가 출범한 이후 남해군농어업회의소, 상공협의회, 여성단체, 어촌계협의회, 주민자치협의회, 농가주부모임, 소상공인연합회, 청년·학부모단체 등 19여 개 단체가 뜻을 모아 ‘남해군농어촌기본소득추진연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군민 1만 3000명의 서명과 500여 명이 참여한 유치대회를 열며,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참여와 열망을 보여주었다. 

이 시범사업의 가장 큰 의의는 ‘지역소멸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남해군민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현금지급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자립과 자치를 위한 사회적 기반이다. 돈이 지역 내에서 돌고, 소비가 생산을 살리며, 사람과 마을이 다시 연결되는 ‘순환경제 구조’를 완성하려는 시도다. 농어업인수당과 지역화폐 ‘화전’을 꾸준히 운영해온 남해군이 이 정책의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며, 이제 ‘돈이 돌고 사람이 머무는 섬’이라는 남해형 모델이 전국 농어촌에 새로운 희망의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성장모델을 향한 과제

기본소득이 단순한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첫째는 지역 내 소비의 효율적 순환체계 구축이다. 지급된 화전이 지역 상권을 살리고, 다시 생산과 고용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소비 데이터 분석과 읍·면 단위 가맹점 확충을 통해 ‘소비 누수’를 줄여야 한다.

둘째는 복지와 생산의 균형이다. 기본소득이 단순히 소비로 끝나지 않고 지역의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농수산물 페이백’, ‘착한임대료 창업지원’ 등과 같은 연계사업이 실질적 생산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셋째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다. 시범사업 이후에도 기본소득을 지속하기 위한 군 재정의 자립 기반이 필요하며,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고 평가와 환류가 가능한 민관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아울러 중앙정부의 국비 분담 비율을 높여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제를 실천하는 주체는 결국 군민이다. 기본소득은 행정의 시혜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의 경제’를 이루는 참여형 제도다. 군민이 화전을 지역에서 사용하고, 지역 생산품을 구매하며, 소비를 통한 연대의 경제를 형성할 때 비로소 ‘남해형 기본소득’은 완성된다. 나의 소비가 곧 이웃의 소득이 되고, 지역의 일자리가 되도록 만드는 책임감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현재 국회에서는 ‘농어촌기본소득 지원법안’과 기본소득당의 ‘월 30만 원 지급안’이 논의 중이다. 제도가 현실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첫째, 지급액의 현실화다. 남해군의 월 15만 원은 출발점일 뿐이다. 소비유발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단계적 인상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국비 부담 비율 상향이다. 국비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고, 재정이 약한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셋째, 제도 운영의 투명성과 평가체계 강화다. 지급대상 요건, 경제 환류 지표, 지역 순환효과를 명시하고, 독립적인 평가기구를 두어 정책의 지속성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남해군의 기본소득 실험은 ‘강요된 지방소멸’을 넘어 ‘지속가능한 지역공동체’로 가는 첫걸음이다. 행정과 군민이 함께 만든 이 모델이 성공한다면,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농어촌을 다시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경제·사회적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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