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려회 워킹그룹 회원들은 가끔 이0 회장의 안내로 한강을 바라보며 이촌 한강공원을 걷는다. 이환성 회장은 사주팔자에 물과 친해야 성공한다는 도사의 말을 듣고 이곳 이촌동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는 이촌동의 마을 이름에는 물 수(水) 자가 들어 있지 않지만 한강을 바라보는 곳이기 때문에 집을 마련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으며, 별 탈이 없는 것도 그 덕이라고 믿고 살다 보니 마을의 터줏대감이 되어 아파트단지 내의 크고 작은 일을 앞장서서 해결하고 있어 주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용산구에 속하는 이촌동은 한강변에 자리 잡은 마을로 여름에 큰 장마가 지면 주민들이 홍수를 피해 강안으로 옮겨 살았던 관계로 마을이 이사를 자주 간다는 이촌(移村)마을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동국문헌비고」에 의하면 이 지역은 본래 사평리진 또는 사리진이라 했고, 속칭 ‘사리마을’, ‘사촌리(沙村里)’라고 불리는 모래마을이었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 지역은 큰 백사장이 있어 여름철에는 시민들이 물놀이를 하던 곳이었다. 1960년대 말부터 여의도, 반포동, 압구정동과 함께 아파트단지로 개발된 첫 번째 지역으로 신도시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곳에는 동부, 중부, 서부이촌동의 3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동쪽에 있는 마을이 동부이촌동(東部二村洞)으로 사촌리라 불렸고, 중부이촌동(中部二村洞)은 세 마을의 중간에 있던 마을인데 1925년 을축년 홍수 때 폐동되었으며, 새푸리라고도 하였다. 서부이촌동(西部二村洞)은 서쪽에 있던 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새남터, 사남기, 새나무터라고도 불리었다. 후에 1개 마을이 없어지고 2개 마을이 되자 동명을 이촌동(二村洞)으로 바꾸었다.
이촌동 아파트단지와 한강공원을 연결하는 지하통로를 지나면 한강 고수부지에 조성된 공원을 만난다. 이곳은 노들섬과 마주 보는 곳으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조깅을 할 수 있는 코스로 이촌동민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이촌 한강 공원을 걷다보면 요즘 보기 드문 버드나무를 만난다. 옛날에는 버드나무가 많았다. 시골 신작로에는 버드나무가 줄을 지어 늘어서 있고 마을 어귀나 냇가에는 어김없이 키가 큰 버드나무 몇 그루가 서 있어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마을 이정표가 되었다. 산 밑에 한두 채 초가집이 있고 꼬불꼬불한 시골길의 마지막에 키가 큰 ‘애불랑구’가 서 있는 모습은 어릴 때 자주 보는 모습이다. 지금은 그런 시골 풍경은 사라지고 없지만 높다란 가지 위에 까치가 집을 짓고 낯선 손님이라도 지나가거나 다른 새들이 주위에 오면 울어대는 모습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버드나무는 사라지고 다른 수종으로 교체가 되어 보기가 힘들어졌다.
‘애불랑구’는 버드나무의 남해 사투리다. 정확한 어원은 알 수가 없지만 왜버드나무를 뜻하는 말로 ‘왜’가 ‘애’로 바뀌고 ‘버들’이 ‘불’로 ‘낭구’는 ‘나무’의 옛말로 이 말들이 합쳐져 된 말이라고 한다.
버드나무는 봄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작은 가지를 꺾어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속에 든 나무 심을 빼어내고 끝부분을 납작하게 눌러서 버들피리를 만든다. 버들피리는 크기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낼 수가 있었고 손재주가 좋은 아이들은 구멍을 뚫어 소리를 조절하기도 했다.
농사철에는 무성한 가지를 잘라 밑거름으로 사용했으며, 더운 여름철에는 시원한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무 그늘 아래 평상을 두고 낮잠을 자기도 했으니 마을 사람들과는 친숙한 나무였다.
길가나 냇가에 있었던 키가 큰 버드나무는 우리나라 고유종이 아니고 미국이 원산지인 미루나무다. 미국에서 온 버드나무(柳)라 하여 ‘양버들’이라 부르기도 하고 아름다운 버드나무라는 뜻으로 미류(美柳)나무라고도 불리다가 1988년 맞춤법 개정으로 미루나무로 바뀐 것이다. 일제강점기 도로변의 가로수나 학교, 마을 광장 등에 미관용으로 많이 심었지만, 그때 심은 것은 수명이 다하고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다른 품종의 가로수로 교체되어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수종이 됐다.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수명이 70년으로 짧은 편에 속한다. 고목이 된 버드나무 중에 나무속이 비거나 굵은 가지 부분이 썩어 있는 것은 대개 수명이 다한 나무라고 보면 된다.
포플러에 속하는 버드나무는 곧장 하늘로만 뻗쳐 올라가는 나무다. 옛날에 나무의 가지가 옆으로 뻗고 있을 때였다. 모든 나무들이 잠자고 있는 저녁에 한 노인이 포플러나무 가까이 오더니 자기 외투 속에서 보따리를 꺼내 나뭇가지 속에 숨겨 놓고는 모르는 체하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무지개 여신인 아이리스가 울면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어젯밤 자기 발밑에 놓아둔 황금단지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나무에게 자기 황금단지를 보지 못했느냐고 묻고 다녔지만 다들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이 아이리스는 주피터에게 호소하며 황금 단지를 찾아달라고 청했다.
성난 주피터는 우레 같은 큰 소리로 모든 나무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아이리스의 황금단지를 가져간 나무는 빨리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큰 벌을 줄 테다.” 그러나 다들 서로 눈치만 볼 뿐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피터는 모든 나무에게 “나뭇가지를 하늘로 높이 들어”라고 명령하고는 일일이 조사를 하려 했다.
모든 나무들이 가지를 들어 올렸을 때 포플러나무에서 황금단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정말 억울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포플러나무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주피터는 들어주지 않고 명령했다. “너는 영원히 손을 들고 있어라” 말하고는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 뒤로 포플러나무는 가지를 위로 들고 바람이 불면 아니라고 가지를 흔들어 호소를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금도 가지를 흔들며 서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죄 없는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애불랑구도 바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