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철​​​​​​​월간『좋은생각』발행인
정용철​​​​​​​
​​​​​​​월간『좋은생각』발행인

어머니,

아침이 옵니다.

아침이 올 때

어머니도 같이 오세요.

문은 열어 두었으니

두드리지 말고

바람처럼 오세요.

그 따뜻함

그 넉넉함

그 미소.

아침은 아직 먼데

바람이 붑니다.

 어머니는 차마 집 밖에 나가지 못하고 아버지만 소나무 숲 빈터에서 우리를 기다립니다. 

진주, 양산, 부산, 양평, 서울에서 달려오는 자식들을 기다리는 것은 차라리 하나의 고통입니다. 

몸 아픈 데는 없는지, 마음 상하는 일은 없는지, 벌이는 괜찮은지, 손주들은 잘 자라는지……. 한없는 걱정과 기쁨은 조금 후 자동차가 도착하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미 목소리로 자식들의 형편을 다 알고 있지만 오늘은 얼굴을 보고 직접 확인하는 것입니다.

10남매 중 일곱 번째다 보니 나는 부모님께 소홀했습니다. 막내가 가장 오래까지 고향 집에 있었지만 막내까지 진주로 떠나자 부모님은 텅 빈 방을 오가며 이부자리만 내 말리고 넣고, 내 말리고 넣어놓고를 반복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이웃에 ‘전화 왔다’고 전하러 가다가 넘어져 그 길로 고생하시다 76세에 돌아가셨고, 아버지께서는 어머니 돌아가신 후 이전보다 더 매서운 풍파를 겪다가 9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고향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좋은생각』에 많이도 올렸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 나는 신바람 나게 글을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부모님의 속내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바쁘다’는 한마디로 부모님의 마음을 잘라버렸고, 애타는 사랑을 막아버렸습니다.

나이가 70이 넘고 가을이 오니 지금에야 어머니, 아버지의 외로움과 안타까움을 자주 떠올립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어머니를 훌륭한 분을 넘어 불가사의한 인물로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날마다 때마다 어디서나 한결같이 하고 계셨습니다. 그것도 제대로 하고 계셨습니다.

한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많은 일을 강하고 빈틈없이 하고, 사람과 삶에 대한 사랑까지 풍성했는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며, 내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는 일입니다. 누구의 어머니도 다 그러실 겁니다. 자식이 볼 때 모든 어머니는 다 한계 너머에 있을 것이고, 나도 내 어머니를 나로서는 더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이겠지요.

여름 끝 무렵부터 해수욕장이 있는 사촌 본가에 자주 갑니다. 지난달에는 도배를 했고 커튼과 방충망은 곧 새로 달 것입니다. 오래된 벽지를 뜯어내고 새 도배지를 바르다 보니 문득, 어머니의 손때 묻은 안방 문 옆 모서리 도배지가 생각났습니다.

아픈 허리 때문에 벽 모서리를 잡고 기대어 일어서느라 손이 자주 가다 보니 손때가 묻어 그 부분이 까맣게, 누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사진 찍어 사진가에게 보여주니 ‘이게 진짜 사진’이라고 말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서 진짜 사진은 찍었지만, 살아계실 때 내 진짜 마음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내내 한스럽습니다. 아니 너무나 슬프고 괴롭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천국에서 ‘용철아,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번 가을이 가기 전에 아침 바람으로 내 방에 찾아와 이 말을 내 귀에 똑똑히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용철아,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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