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신협 이사장
지난 9월 2일 밤 10시경 한낮의 열기가 식지 않은 늦더위를 뒤로 하고 우리가 몸을 실은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이륙해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고 카스피해와 흑해를 지나 13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헬싱키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는 비행기를 환승해 다시 1시간여를 날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상쾌한 아침을 맞이했다.
덴마크는 인구 600만 명에 50%를 상회하는 높은 세금과 무료교육 등으로 잘 알려진 수준 높은 복지국가다. 수도 코펜하겐에서 아멜리엔보르 왕궁과 17세기 건축물이 즐비한 뉘하운 운하,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동상과 그의 대표작 『인어공주』의 인어조각상을 둘러보고, 오후 3시경 크루즈 선을 타고 덴마크를 떠났다.
다음 날 오전 10시 크루즈 노르딕호는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도착했다. 노르웨이는 북해 유전을 가진 부국으로 산악국가이면서 요트의 나라다. 국토 면적은 한국의 2배 면적이고 인구는 550만 명이다. 오슬로의 비겔란 조각공원에서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많은 조각상을, 뭉크박물관에서는 그의 대표작 <절규>와 많은 그림을 관람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유서깊은 오슬로 시청 홀을 방문했다.
다음 일정으로 우리는 버스에 올라 빙하수가 흐르는 강과 호수, 푸른 숲이 아름다운 자연, 눈이 시린 에메랄드빛 강물, 정원과 같은 마을들을 부지런히 눈에 넣었다. 빙하가 만들어낸 좁고 깎아지른 깊은 협곡은 단연 북유럽 여행의 백미였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따라 이어진 유람선 위에서 우리는 긴 여정에 지친 피로를 풀었다. 브릭스달 국립공원의 푸른 빙하는 기후 온난화로 강물이 되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송내피오르드 협곡을 따라 올라간 유람선에서 내린 일행은 플롬산악열차를 타고 가며 폭포가 쏟아지는 계곡에 나타난 붉은 마녀의 춤사위에 매혹됐다.
자연친화적인 잔디지붕의 주택들이 인상적이었으나, 예전엔 초가을부터 스키를 즐기던 곳곳의 스키장슬로프는 기후온난화로 맨살을 드러내고 눈구경을 할 수 없어 아쉬웠다. 맛깔스런 연어회와 저녁에는 술을 구입할 수 없는 아쉬움, 한국인 입양아가 많은 사연 등을 안고 버스는 노르웨이를 벗어나 스웨덴으로 향했다.
스웨덴은 인구 1000만 명에 26만 개의 섬이 있는 섬의 나라다. 중세시대 건물이 있는 칼스타드의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하룻밤을 묵고, 스톡홀름에서는 고려시대쯤 지어진 한자동맹 시대의 건축물이 산재한 올드타운과 왕궁을 먼저 관람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3만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스웨덴의 베니스라 불리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풍스러운 골목길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노벨상 수상자 만찬 장소인 시청 홀에는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있다. 우리의 거북선과 비슷한 시대에 건조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전함이 있는 바사박물관에서 바이킹족의 위용을 느끼는 것을 마지막으로 크루즈 실자라인을 타고 스웨덴을 떠나 핀란드로 향했다.
핀란드는 인구 550만 명에 척박한 기후로 600년의 스웨덴 통치와 긴 국경을 마주한 러시아의 침략 등 파란만장한 역사가 있는 나라다. 핀란드는 숲의 나라답게 17~18세기 전통가옥을 옮겨놓은 헬싱키의 야외민속박물관은 한적한 숲이었고,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한 공원에는 거대한 파이프로 만든 기념비가 오롯이 서 있었다.
헬싱키에는 거대한 암반의 중심을 파내어 만든 암석교회가 있다. 외부에서는 거대한 바위 언덕이지만 내부에는 채광창으로 있는 원형지붕의 넓은 예배 공간이 있는, 1969년에 완공된 핀란드의 대표적인 현대 건축물로 이름난 명소다.
소련의 침공을 지켜낸 유일한 국가답게 헬싱키 중앙역에는 우크라이나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영토의 10% 이상을 뺏겼음에도 원로원광장에는 러시아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버티고 선 아이러니도 있다. 마지막 일정으로, 코린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헬싱키대성당과 서방세계 최대 러시아정교회, 금발에 푸른 눈의 핀족이 북구의 추위를 견뎌온 굳은 표정으로 활보하는 헬싱키 시내를 지나며 북유럽 문화 탐방을 마무리했다.
행복지수 세계 1위 핀란드를 비롯해 북유럽 국가들은 자연과 공존하며, 의료비는 물론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수준 높은 복지국가임을 새삼 느끼며 헬싱키를 떠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