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상 봉 작가
백 상 봉 작가

망구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버린 세월과 한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냥 살아온 삶을 그대로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미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올 때는 누구나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성장해갈수록 주변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서 개개인은 나름대로의 주체성을 갖게 되고, 성장이 멈춤과 동시에 생명을 마감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태어날 때와는 다른 무언가 변화된 내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거의가 비슷한 백발의 할배, 할매가 된다.

사람이 젊어서 뜻을 세우지 않으면 나이 들어 범부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지만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다. 나이 들면 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처 종착역에 다다르고, 종착역에서는 따로 표를 팔지 않아 예약이 없다. 각자가 알아서 갈 뿐, 가족도 친구도 도움을 줄 수 없으니 오로지 운명이라는 하늘의 처분에 맡기는 것이다.

결국은 사람은 나이가 들면 좋든 나쁘든 한 인격체로서 성장을 하게 되고 평가를 받게 된다. 따라서 스스로가 무엇이 되었는지 한번쯤은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만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 않고 남의 눈치를 볼 일도 없으니 어쩌면 객관적일 수 있다.

옛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기 어렵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사람 속은 들여다볼 수가 없다. 요즘같이 영상기기들이 발달하여 인체의 속을 속속들이 들여다봐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오장육부 외에는 알 수가 없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어 입으로 말할 수도 없는 그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을 인간의 정신세계라고 한다면 알기가 어렵다는 것은 곧 마음이라고 해도 다름이 없다.

우리는 잘산 사람 성공한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되기를 바란다. 누구의 삶을 잘못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비교적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훌륭한 사람을 세 가지로 나누어 보는 경향이 많았고, 지금도 그런 평가를 한다. 그것은 난 사람, 된 사람, 든 사람이다. ‘훌륭하다’는 말은 썩 좋아서 나무랄 것이 없다거나 사람 됨됨이나 행실, 능력을 대상이 칭찬할 만큼 대단하거나 뛰어나다는 뜻으로 한자어 ‘홀륜(囫圇)’에서 유래했다고 하나 고유어일 가능성이 많다. 흠이 없고 모자람이 없는 온전한 덩어리라는 뜻이다.

성공해서 유명세를 가진 사람을 난 사람이라 부른다. 난 사람은 뛰어난 사람이기에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 인기가 따른다. 그래서 난 사람이 되려고 열심히 연습하고 훈련하여 난 사람이 되면 유명인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된 사람은 인간미가 넘쳐 세상을 훈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품이 훌륭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아니하고 균형을 잡고 갈등을 해결 하려고 하기에 스스로 이롭고 남들한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다. 참되고 정직한 사람이다. 

든 사람은 아는 것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 학식이 있고 철이 든 사람이다. 아는 것이 많으면 쓸모가 많다. 그래서 든 사람이 되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익히기 위해 노력하며 많이 든 사람은 그래서 전문가가 된다.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는 말은 난 사람이나 든 사람이나 된 사람이라야 사회적·도덕적 인품에 도달하여 다른 사람들과 차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된 사람이나 든 사람이 난 사람인 경우도 있지만 아주 희소하다. 대개는 난 사람은 그냥 이름만 알려졌을 뿐 든 사람이나 된 사람이 아닌 경우도 많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보다는 못난 사람, 별난 사람이 많고 못난 사람이 있어야 잘난 사람이 있는 것이며, 된 사람보다는 덜된 사람, 안된 사람 못된 사람이 많으며 든 사람보다는 안 든 사람이 많다. 못난 사람은 핑계를 대는 자, 변명을 늘어놓는 자, 자신을 업신여기게 하는 것은 못난 사람의 짓이다. 잘되면 내 덕이고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자, 뻔뻔한 것은 자기를 몰라준다고 큰소리치고 삐지는 자다. 자기 주변의 잘된 사람을 자랑하고 조상의 훌륭한 업적을 자랑하는 것은 스스로를 높이려는 행위이며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보다 못난 친구를 자랑하는 이는 없다. 자신이 낮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위가 높고 권력 있고 부자가 된 사람을 자랑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좋은 것을 홍보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들과 관계가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는 난 사람, 된 사람, 든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런데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을 가질 나이가 되니, 난 사람, 된 사람, 든 사람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있음을 깨닫는데, 바로 오래 살면서 베푸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 경륜 높은 사람들이 있지만 베푸는 사람은 드물다. 생전에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가까운 친구에게는 밥 한 끼 사는 것도 아까운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똑똑한 사람, 유명한 사람, 괜찮은 사람 이 세 가지를 갖춘 사람은 찾기 어렵다.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도 못 들더라도 오래 살아남아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푼다면 괜찮은 삶이 아닌가.

잘 베푸는 사람은 자기의 존귀함을 알고 자신에게 먼저 베풀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건강할 수 있고 건강해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 우리 부모들은 자기에게 인색하고 자식에게 베풀기만 하다 건강을 놓친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망구세대는 자식보다 자신에 투자하고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만 건강을 유지하고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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