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 시대, 그 최전선에는 ‘주민자치’라는 가치가 우뚝 서 있다. 중앙집권적 행정의 효율성을 핑계로 주민들의 목소리가 뒷전에 밀려왔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삶의 터전인 지역사회에서부터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주민이 직접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거세다. 이는 단순히 행정의 권한을 지역으로 이양하는 차원을 넘어, 주민 스스로가 지역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주민자치는 첫째,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서 완성하는 의의를 가진다. 주민들은 직접 마을의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예산을 결정하며, 정책을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민주적 주인으로 성장한다. 이는 단순히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을 넘어, 풀뿌리 민주주의의 건강한 토양을 다지는 행위다. 둘째, 행정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극대화한다. 지역의 필요를 가장 잘 아는 주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함으로써,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고 실질적인 주민 수요에 부응하는 맞춤형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셋째, 붕괴 위기에 놓인 공동체를 재건하는 가치를 지닌다. 주민들이 함께 모여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파편화된 사회에서 잊혀졌던 공동체 의식을 회복시키고, 이웃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주민자치의 가치가 온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행정적, 정치적 뒷받침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립 기반이 필수적이다. 아무리 좋은 자치제도를 갖추어도 지역 경제가 무너지면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떠나게 되고, 자치는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인구 소멸 위기에 직면한 남해군과 같은 지역사회는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주민자치 시대에 부응하는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주민자치형 경제체제’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그 핵심은 바로 ‘지역 기반 순환 경제 모델’이다. 이 모델은 중앙의 대규모 자본에 의존하거나, 외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는 기존의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자원을 활용해 지역 주민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수익을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 시급히 수행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을 단위의 사회적 경제 조직을 활성화해야 한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을 육성하여 지역의 숨겨진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경제적 수익으로 연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촌체험휴양마을이 단순히 체험비를 받는 것을 넘어, 마을에서 생산된 농산물로 가공식품을 만들고, 이를 마을 기업이 유통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한 수익이 마을 공동체로 환원되고, 주민들은 경제적 참여를 통해 자치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둘째, 로컬푸드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 지역 농어업 생산자가 생산한 신선한 먹거리를 지역 주민에게 직접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를 활성화하고, 지역 내 식당이나 학교 급식에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지역 농가에 안정적인 판로를 제공하고, 주민들은 건강한 먹거리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경제적 이익과 건강 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셋째, 관광산업을 질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남해군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독특한 문화 자원을 가진 지역은 관광이 핵심 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분별한 관광객 유치로 인한 환경 파괴나 상업화는 경계해야 한다. 단순한 방문 위주의 관광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체류형, 체험형 관광을 육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지역 주민에게 직접 돌아가도록 하여, 관광이 지역 공동체의 활력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산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넷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주민 참여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주민들이 지역 경제 활동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제안하고, 소통하며, 거래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오프라인 모임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주민자치의 성패는 결국 주민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이제 이 자산을 주민 스스로가 활용하고, 발전시켜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을 설계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