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문화와 예술 생활을 해야 하며, 이러한 문화 예술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요. 문화와 예술은 삶을 풍요롭게 함과 동시에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는 미와 예의 건전한 표현 양식입니다. 이러한 양식이 넓게는 시대정신을 맑게 하는 근간이 되고 있지만, 우리는 얼마만큼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문화나 예술 활동에 참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여전히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화사한 꽃이 열릴 때마다 그 너머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숙지할 때면 고개가 절로 숙어지고, 한밤중 들녘에서 들려오는 미물의 아름다운 음률에, 마음속에 머물던 잡념마저도 사라집니다. 가고 옴이 뚜렷한 세상에 비록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선의의 감정으로 먼저 인사하고 다가간다면 마음으로 느껴질 훈훈함은 주변을 아름답게 적셔줄 것입니다. 이것이 문화와 예술이 지닌 감성의 힘입니다. 

세상은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인식만큼이나 나의 말 한마디에, 나의 생각하나에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생각하면, 문화 예술은 곧 나의 정신이 뒷받침된 흔적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면 문화와 예술 행위의 실체적 사명은 미술, 음악, 연극, 문학의 장르 속에 드리워진 정신과 인격의 함양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문화와 예술을 주도할 주체인 사람은 정신이 없으면 살 수가 없고, 물질을 도외시하여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문명이 물질로 상징될 살과 뼈와 근육이라면 문화 예술은 의식과 정신입니다. 정신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를 두고 공론을 벌일 필요는 없지만, 물질문명 폐해의 후유증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정신을 상실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성을 고려하면 문화와 예술의 불모지라는 오명은 결국 사람의 정신 역량의 퇴보라는 뉘앙스마저 풍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게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는 사이 AI로 통하는 인공 지능과 로봇이 창궐할 조짐이 있는 작금의 시대에 문화 예술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는지, 인간의 정신을 아우를 문화 예술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잠재된 역량을 백프로 활용하기도 전에 기계 문명에 종속당할 운명이라면, 창작의 산물인 인간 정신 사조를 아우를 문화 예술에 대한 방향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대 사조에 버금갈 문화 예술 역량이란 다름 아닌 순수와 진실이 바탕이 된 내적 감성으로 기존의 가치관, 경험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변형하고 발전시켜 생활에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대한 의식에 공존의 묘미를 더할 문화와 예술이 지역 발전을 이룰 촉매제가 되고도 남으리라는 것을 보물섬 남해에서 한층 고무된 심정으로 바라봅니다. 

시대를 이끄는 문화와 예술의 창조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절정에 다다른 이 시점에, 그렇다면 남해의 문화 예술의 정도는 어떠한가요. 행여나 문화와 예술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나는 문화나 예술과 거리가 멀다고 일갈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이루는 모양, 색, 소리, 느낌에 공감하며 살아가는 자체가 미와 예의 감각에 젖어 살아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심정적으로 반복되는 오감(눈, 코, 입, 귀, 혀)의 작용이 있음에도 가시적으로 마을마다 빈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 미관을 해치고, 방치된 곳곳엔 풀과 잡초로 뒤덮여 마을 이미지를 어지럽게 하는 자체 역시 문화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낙후된 이미지라는 불명예를 만회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남해군 전체가 초저녁만 되어도 어둠에 젖어든다거나 가게나 음식점마저 문을 닫아버리는 것도 그렇고, 도시에 살던 사람이 남해에 한 달 살이 등과 같은 생활에서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빈번한 소식을 접할 때면 안타까움마저 들기도 합니다. 물론 각기 처한 입장이 있겠지만, 생활방식에 따른 차이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감정 표현을 주도하는 억양에 근접할 수 없는 거리감이 상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면 이도 역시 문화 예술의 감성을 약화시키는 원인인 것은 아닐까요. 

농촌에 오랫동안 살고 계시는 분은 나름의 생활방식이 옳다고 여길 것이며, 도시에서 살다 오신 분들은 도시 생활방식에 젖은 방식을 버리지 못합니다. 흔히 이러한 것을 습관에서 오는 관점의 차이라고 하지만, 진정으로 문화를 공유하는 자세란 지금까지 경험으로 살아왔던 방식이 아닌 다중이 공존하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마음에 형성된 차이를 좁혀나가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자신이 지닌 경험이 옳다라는 신념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이란 돌고 돈다는 순환의 원리에서 절대적인 생각이나 고정적인 사고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견주어보면 문화와 예술의 창작 정신은 기존의 방식이나 경험이 아닌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적응을 용이하게 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감성이 절정에 이를 이때쯤이면 미술 전시회라든지 음악회라든지 시 낭송과 같은 행사가 자주 열립니다. 계절적으로도 가을은 낭만의 계절이기도 하여 상념에 젖기도 하며, 한편의 그림을 감상하고 한 곡의 음악을 들으면서 회환의 심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열정에 비하여 이를 눈여겨 볼 대중의 열기는 침체되어 작가나 관심 있는 지인의 참여만 있을 뿐 대중화라는 명제를 실현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안타까움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작가의 역량이라고 평가하기 전에 공존의 묘미를 더할 문화 예술이 지역 발전을 이룰 촉매제가 되고도 남으리라는 기대를 정말 간절한 심정으로 열망해봅니다. 왜냐하면, 지성, 감성, 창조, 자비, 사랑, 진실, 기쁨을 공유할 심성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문화와 예술이야말로 이를 현실화할 진솔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제반 문화 예술단체와 공무 기관 간 협력 구축, 실생활에 필요한 장르의 개발 및 보급, 신인 작가에 대한 격려와 지원, 경제 핵심으로 자리매김할 예술문화와 연계한 관광 촉진, 전시와 공연장의 증축, 예술 마을 생태계 조성, 문화 예산 지원 방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되뇌어봅니다. 

이처럼 영롱한 개인의 감성으로 공유할 인간화의 사명에 깊이 공감하면서 이 지대한 의식에 공존의 의미를 더할 문화 예술이 전인적 인격체로서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을 이을 촉매제가 될 수 있도록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화를 이룰 소양(기쁨, 감동, 공감, 감화, 감응)의 모든 것이 문화와 예술인의 감성 자체에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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