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저리도 고울 수가 있을까? 어떻게 저런 색감을 지닐 수 있을까? 자연은 신(神)이 만든 최고의 경지이기도 하거니와 어쩌면 신조차도 감탄할 정도의 순수 자연미는 어떤 표현으로도 담아내기 어려운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한 자연을 특유의 감성으로 잡아내는 화가의 시선입니다. 평범하면서도 예리한 그러면서도 따뜻한 감성과 아름다운 미학을 겸비한 화가의 시선은 자연의 내밀한 속성을 형상화하는데 잠시라도 머무름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욕망을 초월한 순연한 경지의 이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어떠한 혼란 속에서도 표현에 대한 기상이 뚜렷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을 정하여 자연을 바라보니, 만상이 내 안에 모이고 마음을 다하여 채색하니, 마치 자연의 영롱함이 화가의 마음 안으로 드나드는 듯합니다. 이로써 보면 화가의 영감(靈感)을 다질 내적 구상은 몸과 마음과 성품을 가꾸는 것이요, 외적 구상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내면화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도 아무렇게나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화가 스스로 창안한 조화로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화는 예비와 정화와 완성을 목전에 두고 적절한 기준으로 균형을 맞추며, 예비는 사물의 실체를 맨눈으로 관찰하며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역동적 활동입니다. 하나의 과정을 잇기까지는 수많은 시험이 가미되고, 수십 번의 가작이 선행될 때 비로소 주체적 자연미와 실체적 감각이 살아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첫째, 자연을 새롭게 가꾼다는 것이요, 둘째, 형태와 색으로 기존의 미를 재창조하는 것이며, 셋째는 의식의 재탄생이라는 점을 상기해 봅니다. 특히 의식의 재탄생에서 색채와 오브제를 통한 정화 활동(색채의 신비와 몸과 마음과의 관계, 작품을 통한 감정의 순화)은 많은 분의 심금을 울리기도 합니다. 우울하면 붉은 색감을 내면화하며, 흥분과 고조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푸른색으로 마음을 다지기도 합니다. 

이런 감정의 뉘앙스를 참고하면 정화는 작품과 나 사이에 빈번한 갈등의 분초가 되는 에고의 나, 그 에고가 사라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터득할 수 있는 초연한 미(美, 즉 아름다움)의 수렴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대상을 직시하려면 내 안에 잠재된 습관의 잔재를 거둬내어야 비로소 자연과 사물의 실체를 바르게 터득할 수 있다는 명제는 작가의 역량을 가름하는 기준이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전인적 인격체로서 사람이 취해야 할 대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미(美)가 인격과 지혜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비와 정화의 과정을 거쳐 완성은 한 작품을 위한 열정에 사심 없는 헌신이 바탕이 되어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야말로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아니 자연의 미를 구체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심과 열정이 내면을 장식할까요.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미술은 성품과 마음과 몸, 자연을 비롯하여 의식주 일체를 아름답게 가꾸는 주체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먹고 사는 행위, 안전하게 쉬고 여유를 즐기는 편안함 속에서 생을 영위하고자 하는 목적과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이러한 욕망이 지나쳐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이때 이를 다스릴 수 있는 묘안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마 이구동성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거나 심리적 안정을 기리는 것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의식주에 대한 욕망이 끊임없어도 심리적 안정이 없이는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이 편안치 않은 상태에서는 가중된 욕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심리적 안정이 이루어질 때 생각의 폭이 깊어지며 사람, 사물, 자연을 대하는 폭도 넓어질 것이라는 현자의 어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최근에는 심리적 안정을 이루게 할 요소들이 즐비하지만, 인간의 정서를 밝게 하고 심리를 안정시키는 효율성에서 미술이 차지하고 있는 것만큼 비중이 큰 것이 있을까 생각하면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화가의 작업을 정말 경이롭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품 속에 담긴 자연을 사색하며, 진솔한 자연의 속삭임을 마음으로 읽으면서 감정을 순화할 심미안은 분노와 두려움에 깃든 정서를 다스릴 색상 시대의 길임을 놓치지 않습니다. 사계절이 소재인 자연의 형, 색, 미를 감지하며 연중 바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도 형형색색 조화된 구상과 추상의 영역을 넘나들며 갈고 다듬은 솜씨는 남해의 정서와 감정 순화에 적지 않게 이바지하고 있음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숨 가쁘게 다가오는 인공지능 시대에 미와 예를 사랑하며 사람의 감성이 퇴보되지 않도록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내면을 다지면서, 깊어지는 가을에 남해군 미술협회의 연중 가장 큰 잔치인 정기전을 열게 되었습니다. 열악한 전시 환경 속에서도 작품에 대한 신념과 다짐은 날이 갈수록 고조되어 더 높은 작품으로 승화하려는 회원의 열정을 이번 정기전을 통하여 만나보시지 않으시렵니까? 피카소가 청색 시대를 열었듯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미적 감각과 심미안으로 군민의 내면을 새롭게 가꾸고 남해의 미적 시대를 선도할 정기전 참여 화가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며 아래에 소개해 봅니다. 

강두연. 강상미. 강외자. 공태연. 권성은. 김계자. 김무송. 김수자. 김윤희. 김은영. 김인자. 김정리. 김혜경. 박근영. 박민희. 박용균. 박은영. 박  철. 박형모. 박마리아. 박홍빈. 서용빈. 손민교. 안진경. 양병량. 양승자. 엄동섭. 유소현. 윤미경. 이동기. 이미동. 이주혁. 이현순. 임채욱. 혜원스님. 전주환. 정순연. 정향순. 조수현. 진공스님. 조윤경. 차성찬. 천정자. 최예원. 최지아. 하길숙. 하미경. 한수진. 허증숙. 

이와 함께 9월 17일부터 29일까지 유배 문학관 전시실에서 개최되는 남해군 미술협회의 정기전에 남해군민을 초대합니다. 부디 귀한 걸음으로 소중한 작품을 감상하시면서 이를 계기로 미와 예와 색을 논하며 아름다운 남해를 가꾸는 여정에 군민의 정서 또한 유감없이 발현되어 마을마다 창조의 역량이 소중히 펼쳐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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