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남해군 역시 인구의 3분의1 이상이 65세 이상으로 고령화의 전형적 현장이다. 청년인재의 지역 유입을 위해서라도 고령인구와 지역산업을 아우르는 종합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준비 없는 고령화는 쇠퇴와 소멸로 이어지지만, 준비된 고령화는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한국 사회 전체가 고령화의 급류 속에 놓인 지금, 남해군도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더 앞서 대응해야 한다. 부산시가 1283억 원을 투입해 추진하는 ‘에이지테크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령층을 돌봄의 수혜자가 아니라 디지털 소비와 건강·여행 산업을 주도하는 ‘액티브 시니어’로 바라보겠다는 구상이다.
남해군은 이미 ‘고령친화도시’ 사업을 추진하며 초고령사회의 대응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기준에 맞춰, 고령층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교통·주거·의료·문화 전반에서 노인 친화적 제도를 정착시키려는 노력이다. 남해군은 지난 몇 년간 고령친화도시 인증을 목표로 △노인 돌봄 서비스 강화 △마을 단위 공동체 기반의 건강 프로그램 운영 △세대 간 소통 공간 조성 등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단순히 인증에 머무른다면 실효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고령친화도시는 지역사회 전체를 바꾸는 장기 전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고령친화도시 사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액티브 시니어’ 개념과 결합해야 한다. 지금의 고령층은 단순히 의학적 돌봄만 요구하는 세대가 아니다. 소비력이 있고, 디지털에 적응하며, 여행과 평생학습에 적극적인 새로운 집단이다. 남해군의 고령친화도시는 돌봄 중심에서 벗어나, 건강·여가·경제활동을 포괄하는 ‘실버경제 허브’로 진화해야 한다. 예컨대 은퇴자를 농촌체험관광, 로컬푸드 가공, 해양치유 서비스의 기획자와 운영자로 참여시키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고령층은 돌봄 대상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김태유 교수의 ‘이모작 사회’ 구상은 남해군 같은 지역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다. 젊을 때는 유동지능을 필요로 하는 산업·기술 분야에 종사하다가, 은퇴 이후에는 경험과 판단력이 중요한 행정·상담·돌봄, 문화해설 등으로 옮겨가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실제로 남해군은 고령인구가 풍부한 농업·어업 경험을 갖고 있다. 이를 단절된 개인 경험으로 방치할 게 아니라, 청년세대와 연결해 창업·관광·교육 자원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세대 간 분업’을 체계화하면, 고령층도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청년과 함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해외 선진국의 사례도 교훈을 준다. 일본은 돌봄 로봇에 집중 투자하며 고령화 사회의 돌봄 부담을 줄이고 있고, 싱가포르는 평생교육과 연금 제도를 통해 고령자의 노동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긴 출산휴가를 보장하지만 육아 환경 전반이 개선되지 않아 여전히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이처럼 단일 정책만으로는 효과가 없다. 기술과 제도, 문화와 생활환경이 동시에 개선되어야 지속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
남해군의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 고령친화도시 사업을 복지 사업에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 전략과 연결해야 한다. 둘째, 지역 인구정책의 목표를 출산율 회복보다 우선적으로 ‘인구 부양비 개선’으로 바꿔야 한다. 노인도 일할 수 있는 구조, 청년도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구조를 동시에 만들지 않으면 죽음의 계곡을 건널 수 없다. 셋째, 농어업·관광·돌봄을 아우르는 실버경제 생태계를 현실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남해군은 해양·생태·문화 자산을 보유한 지역이다. 이를 액티브 시니어가 주도하는 지역산업과 연결하는 것이 곧 생존 전략이다.
결국 남해군의 초고령사회 대응은 ‘늙어가는 군민’을 짐으로 볼 것인가, ‘새로운 자산’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고령친화도시 사업은 그 방향성을 보여주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진짜 승부는, 이 사업이 남해군의 산업구조 재편과 인구정책 전환에 얼마나 긴밀히 엮이느냐에 달려 있다. 늙어도 활력 있는 사회, 나이가 들어도 배움과 노동, 소비와 여가를 이어갈 수 있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남해군이 열어가야 할 현실적인 미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