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나 슈퍼의 주류 판매대에 가면 눈에 띄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처음처럼’으로 명기된 소주입니다. 필자는 애주가가 아니지만, 유독 이 이름에 눈길이 가는 것은 ‘처음처럼’이라는 별호가 상징하는 의미 때문입니다. 명상을 하는 입장에서는 매 순간이 처음이라는 의미를 실감하게 할 호칭이어서 더욱 시선을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 순간이 처음이라는 의미를 직역하면 지금까지의 인생 경로에서 맞이한 과거 경험을 좇지 말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경험에 의미를 두어 그 중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매 순간 맞이하는 생각, 감정, 행동 하나 하나가 난생 처음이듯이 행하는 무위의 작용을 지각하거나 수용할 수 있다면 일상 자체는 정말 경이로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탐구를 철저히 무시해왔습니다. 아니 어쩌면 무시라기보다 그러한 기분에 젖어들 상태가 아니었을 경우가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과거는 주로 기억을 아로새겨 원망의 시계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미래는 예측불허의 조짐에 두려움이 가시화된 상념이 생활 전반을 좌우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좇다 보니 나를 자각하는 일과 현재에 중심을 둔 삶의 방식이 외면되어 왔던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소양은 고사하고 사념과 망상에 쫓겨 본래 나의 성품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는 잠재된 능력마저 소진시키는 안타까움마저 낳게 하였습니다.
이런 시류 속에서 그동안 공정의 곁가지로만 여겨왔던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생활의 전면에 등장하는 시기를 맞게 됩니다. 원래 사람의 잠재된 역량을 여과 없이 발휘하기도 전에 기계문명에 종속당할 비운을 생각하면 안타깝기가 그지없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이런 물음에 나오기 시작할 즈음 빈곤한 정신 사조를 이을 인간성이 담보된 영적 능력을 배양할 시기가 되었다는 자조적인 물음에 직면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서야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시화되니 비로소 순수의식 배양을 위한 인식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깜빡이는 눈꺼풀, 좌우로 움직이는 눈동자, 꿈틀거리는 손가락, 쿵쿵거리며 뛰는 맥박, 쉼없이 도는 피, 잠시라도 멈추지 않는 심장의 박동, 멈추려야 멈출 수 없는 오장의 활동, 두뇌의 활동과 섬세한 감각, 내면과 외면을 아우르는 경락의 흐름, 호흡의 순환, 백회와 회음을 잇는 기운을 인지하는 찰나의 모든 것은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역량으로 할 수 없는 생애 처음의 일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쉼 없이 전개되고 있기에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점으로 보면 이것은 분명 기적입니다. 필자가 이를 기적이라 칭하는 데에는 처음과 새로움에는 최초 순수한 의식으로 어느 쪽이든 치우치지 않는 진실, 순수, 유동이 함축된 경계 없고 사심 없는 진실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통설을 참고하면, 무위(無爲)로 이루어질 정신 사조 역시 지금까지 달고 살아왔던 불신과 사심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의식인 무위의 각성(覺性)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각성은 깨달아 거듭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하여 저장하던 모든 것을 덮고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처음으로 맞이한 일, 사람, 물건, 처음인 이 자리 오직 지금의 시금석이 될 지구의 역동적인 의식이 총망라된 지금이야말로 운명의 초석이 될 그런 인식으로 조명하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실어주는 은혜에 감사하며 해와 달이 비추어주는 은덕을 잊지 않으며, 자연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가 있음에도 아직 참에 들어가는 겸손을 터득하지 못한 채 마음에 잊고 잃음이 많다면 이 거룩하고 경이로운 오늘 처음으로 여는 날의 의미를 상기하며 마음을 집중해봅니다.
이러한 기화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나를 객관적으로 정확히 바라보는 혜안도 갖추어야 하고, 내가 과연 처음과 같은 위대한 이 순간에 완벽히 적응할 태세가 되어 있느냐, 아니면 상념의 미몽에 빠져 뜬구름 잡듯 망상에 쫓겨 나를 잊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느냐를 가름할 수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매 순간이 처음이듯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 곧 내 마음이 편안해질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만약 지금 어떤 감정으로 치닫고 있다면 그러한 마음으로 되돌아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상이나 수련이 필요합니다. 명상이나 수련으로 중(中)과 화(和)의 지혜를 섭렵하는 것입니다. 이 자의적 노력을 통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 순간, 매 순간이 처음이라는 생의 참다운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밖으로 돌면서 내 안에 잠재된 매 순간이 처음인 순수한 자연성을 찾는 일에 무지로 일관하며 살아왔다면 말입니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꼭 기후가 아니어도 무언가 위기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곤 합니다. 점점 무더워지는 날씨에다 사람의 마음도 예전에 볼 수 없을 정도의 잔인함과 무서울 정도의 폭력적 심성이 거침없이 전개되는 양상을 보노라면 두려움마저 들 정도입니다. 이런 심성이 전후좌우 생명에게 옮겨진다면 지구 환경 역시 그러한 심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7월의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이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시류를 전환할 용기 있는 선각자의 예감이 바로 매 순간이 처음이듯이 사람, 자연, 사물을 소중히 대하는 마음가짐이 아닐까요. 내 인생 첫날, 처음 맞이한 일, 처음 맺은 인연 그리고 처음 접하게 되는 자연 그리고 물건에 대한 이미지를 호기심 가득한 시선과 평정심으로 이끈다면 삶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매 순간이 생애 처음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