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은 지역을 바꾼다. 그 변화는 단순히 외지인의 방문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광이 ‘산업’이 될 때, 그 지역은 새로운 삶의 방식과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변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관광업이 지역의 주된 산업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구조적 준비와 방향성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남해군은 오랜 세월 동안 바다와 농업에 기대 살아왔다.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금산과 보리암, 다랭이논, 독일마을, 상주은모래비치와 같은 자원들은 남해를 전국적인 관광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이 남해의 ‘미래 산업’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관광객 수는 점차 늘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그 흐름은 ‘산업적 효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관광업이 ‘관광산업’으로 도약하려면 첫째, 관광업에 종사하는 일자리와 고용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 남해군의 관광 관련 일자리는 대부분 소규모 민간 숙박업, 음식점, 계절형 체험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거나 생계 보완 수준의 단기 일자리로, 안정적인 소득 기반이 되지 못한다. 청년이 정착하고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면, 숙박업·체험업·문화예술·관광마케팅 등 관광 산업 전반에 걸친 전문 인력 양성과 정규직 일자리 창출이 필수다. 이를 위해 관광전문학교나 평생교육기관에서 직무 교육과 창업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체류형 관광으로의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의 남해 관광은 대부분 하루 이틀 머무는 ‘스폿 관광’에 머물고 있다. 주요 명소 몇 곳을 둘러보고 떠나는 관광객은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남기기 어렵다. 반면, 체류형 관광객은 숙박, 음식, 체험, 쇼핑, 문화 향유 등 다양한 소비 활동을 통해 지역의 산업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이를 실현하려면 다양한 숙박 형태, 예를 들어 전통한옥 민박, 농가민박, 치유형 스테이, 장기 체류용 거주 공간을 개발해야 하며 관광 콘텐츠도 걷기, 명상, 예술, 농어촌 체험 등 다양한 테마로 구성되어야 한다.
셋째, 지역 주민의 참여와 주도성이 강화되어야 한다. 외부 자본에 의한 관광개발은 일시적인 활기를 불러올 수는 있지만, 지역민의 삶과 유리될 경우 지속 가능성을 갖기 어렵다. 관광산업이 지역을 살리려면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직접 관광 자원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관광마을협동조합’이나 ‘지역문화관광협의체’ 등을 통해 지역민이 주체가 되어 마을카페, 민박, 체험장, 기념품점 등을 운영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넷째, 관광 인프라의 체계적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 관광지 간 이동은 여전히 불편하고 대중교통은 부족하며 관광 안내 체계는 더 보완되어야 한다. 정보 접근성 역시 낮아서 고령자나 외국인 관광객이 편리하게 움직이기 어렵다.
다섯째, 남해만의 브랜드와 철학이 필요하다. 관광산업은 이미지 산업이다. ‘왜 굳이 남해여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스토리와 정체성을 구축해야 한다. ‘휴양과 치유’, ‘바다와 예술’, ‘청색 힐링섬’ 등 남해의 감성을 하나의 브랜드로 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마케팅을 강화해야 한다. 제주도는 ‘자연+휴식’, 전주는 ‘한옥+음식+문화’, 여수는 ‘야경+로맨스’, 신안은 ‘퍼플섬’이라는 개념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남해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브랜드 정체성을 체계화해야 한다.
여섯째, 관광산업과 타 산업과의 융복합이 필요하다. 관광은 단독 산업이 아니라 지역의 농업, 수산업, 예술, 교육 등과 융합되어야 시너지를 낸다. 예를 들어 마늘·한우·단호박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한 ‘로컬푸드 체험 관광’, 해양치유와 고령자 건강 관광을 결합한 ‘웰니스 프로그램’, 예술가와 청년을 유치하여 운영하는 ‘예술마을형 민속촌’ 등이 예시가 될 수 있다.
개별 민간 자원만으로 관광산업을 육성하긴 어렵다. 지자체는 중장기 관광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부서가 협업하여 인프라 확충, 제도 개선, 재정 지원, 거버넌스 구축을 담당해야 한다.
관광이 남해군을 다시 살게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구조를 바꾸고, 주체를 키우고 철학을 세우는 일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