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마을을 스스로 가꿔가는 내동천마을 사람들
내가 살고 싶은 마을을 스스로 가꿔가는 내동천마을 사람들
내동천마을의 상징 재활용 페트병으로 만든 꽃모양 바람개비가 주민들 손에서 탄생했다
내동천마을의 상징 재활용 페트병으로 만든 꽃모양 바람개비가 주민들 손에서 탄생했다

삼동면 내동천마을에 가면 마을길 초입부터 색색의 바람개비가 방문객을 맞는다. 아이들 장난감이거나 장식용인 흔한 플라스틱 바람개비이지만, ‘내 힘으로 마을을 가꾸려는’ 주민들의 꿈이 담긴 내동천마을 바람개비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 ‘천 개의 바람개비’를 시작으로 내동천 주민들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꿈들이 시간을 타고 마을 골목길에서 꽃밭에서 집집마다 영글어간다.   

꽃과 바람개비 가득한 마을의 꿈 

내동천마을 가꾸기가 본격 시작된 것은 지난해 7월 남해군마을공동체지원센터가 추진하는 ‘찾아가는 마을학교’ 주민 워크숍을 통해 주민들의 뜻이 모이면서부터다. 마침 센터에서 이 사업을 진행하는 실무자가 내동천마을로 귀촌한 전경선 씨였다. 전경선 씨는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해오다가 이 일 직전까지 대구에서 여성의전화 활동가로 일해왔다. 그러다 남해로 귀촌해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려다 지역조사가 먼저이겠다 싶어 센터에 지원했단다.

내동천마을은 어느 마을에나 있을법한 대궐 같은 집 한 채가 없다. 마을주민 108명 68세대가 대농이 없는 고만고만한 살림살이에 시금치, 마늘 농사를 조금씩 지으며 살아가는 마을이다. 주민의 70% 이상이 70~80대 고령층인 마을에 최근 40~60대 귀촌인 10세대가 정착했다. 덕분에 거의 들을 일 없는 아이들 소리도 마을에서 듣게 됐다. 

“워크숍 시작할 때만 해도 우리 마을이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주민들이 연세도 많고 농사밖에 모르시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진행하다 보니 이분들이 욕심이 없는 거예요. 그냥 꽃이 가득하고 바람개비가 가득한 마을을 만들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이 편안해지고 위로받았으면 싶으셨대요.”

전경선 씨는 마을조사를 하다보면 대부분 마을이 근사한 건물을 지어주거나 돈벌이되는 사업에 관심을 갖기 마련인데 정작 “우리마을 분들은 너무 소박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물었다. “꽃하고 바람개비 가득한 마을을 사람들이 보러 오면 무슨 이득을 얻나요?” 그랬더니 마을 주민들이 하시는 말씀. “그거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 경선 씨는 그때서야 반성했다고 한다. ‘내가 마을에서 6년 넘게 살면서도 마을을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다. 반성과 감동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결심했다, 마을 주민들의 꿈과 바람을 함께 하나씩 실현해 가자고. 여기에 최갑환 이장, 백종운 개발위원장, 김태영 새마을지도자 등 마을임원과 주민들이 기꺼이 발벗고 나서줬다.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일하며 주민으로서 내동천마을의 변화를 주도하는 전경선(오른쪽), 장남주 씨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일하며 주민으로서 내동천마을의 변화를 주도하는 전경선(오른쪽), 장남주 씨

전국에서 모은 꽃씨로 만든 꽃밭

청주에서 아이들과 바람개비를 만드는 천주교 신부님을 마을에 모셨다.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20여 명이 모여 신부님께 재활용 페트병을 활용해 바람개비 만드는 법을 배웠다. 누구라도 잠깐씩 들러 바람개비를 만들고 이것을 모아 바람개비 길을 조성했다. 

마침내 올해 3월 내동천 바람개비학교가 개원했다. 내동천마을회관 2층에 자리한 바람개비학교는 바람개비를 만들며 주민들이 만나고 교류하고 배우는 공간이다. 바람개비학교 교장은 김봄(삼동초 4) 어린이다. 전경선 씨가 마을 SNS를 만들어 소통하니 전국에서 많은 후원자들이 물품으로 재능으로 후원금으로 내동천마을 가꾸기에 동참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전국에서 답지하는 꽃씨들을 모아 주민들이 마을 이곳저곳에 꽃밭을 만들어가고 있다. 꽃씨를 보내준 이들의 이름을 살린 꽃밭도 4곳이나 되지만, 기본적으로는 마을사람들이 길가나 공터에 마음 내키는 대로 꽃씨를 뿌려 가꾼다. 어느 꽃밭 한가운데엔 옥수수가 자라기도 한다. 옥수수를 심은 주민은 “마을을 찾은 이들에게 고향 옥수수를 보여주고 싶어서” 심었단다. 

따로 시간 내어 회의를 하는 일도 드물다. 그저 시간 되고 힘 자라는 주민이 나서서 하는 것이다. 따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언제든 도움을 청하면 일이 해결된다. 늘 함께하고 힘을 보태려는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제멋대로이고 조화롭지 않지만 그게 우리는 재밌고 좋아요. 어차피 우리가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만 재미있게 같이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전경선 씨의 말이다.

마을조사 주민 워크숍에서 나온 내동천 주민들의 바람이 빼곡히 적혀 있다
마을조사 주민 워크숍에서 나온 내동천 주민들의 바람이 빼곡히 적혀 있다

 ‘할매라이더’ ‘동네방네민박’ 사업계획 

이 마을에선 주민들이 하고 싶은 사업이 계속 늘어난다. 오토바이를 타고 늘상 마을을 누비는 할매가 계시니 ‘할매라이더’를 운영할 예정이다. ‘할매라이더’는 마을정원으로 개방한 집들 테라스에 메뉴판을 붙이고 휴대폰으로 주문하면 ‘할매라이더’가 오토바이로 주민들이 직접 만든 키위에이드를 배달하는 사업이다. 

‘우리동네 119’는 소방관인 마을주민이 계절별로 필수적인 안전교육, 응급처치 교육을 해주는 사업이다. 성묘 때 만날 수 있는 말벌이나 뱀 퇴치법도 배울 수 있어 아주 유용한 교육이란다. 또 청년회에서 삼천포나 사천 병원에 다니는 어르신들을 위해 통원날짜를 조정해 월초나 월말에 한번씩 병원에 동행하기도 한다.   

‘내동천상회’는 상점이 한 번도 생긴 적이 없는 마을에 필요한 물품을 모아 나눔하는 마을 잡화점이다. 내동천상회 공간은 앞으로 마련해야 한다. 늘푸름쉼터는 30년 전에 사라진 늘푸름마을청년회를 부활시킨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 방치된 구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서 쉼터를 만들 계획이고 이를 위해 주민참여예산을 신청하려고 한다. 

올 하반기에는 내동천마을 주민회가 ‘동네방네 민박’ 2곳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내동천마을의 시골문화와 정취를 체험하려는 도시민들에게 제철농산물 수확, 할머니 손맛 밥상 등 시골문화와 인심을 제대로 맛볼 수 있게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

“행정의 지원을 받지 않으니 성과의 압박 없이 편하고 재미있게 우리마을 일이다 하고 진행할 수 있어요.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하고 어울리니 사는 게 재미있고 생기가 돈다고 말씀하지요.” 그러면서 전경선 씨는 말한다. “결국 우리가 그리는 마을은 마을주민이 주인으로서 당당하게 대접받으며 살다가 마을에서 영면할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 하는 일과 앞으로 할 일들이 다 연결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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