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는 벌마늘이 다량 발생해 농가를 긴장시키더니 올해는 남해 단호박이 이상 기온에 의한 수정 불량으로 결실률이 현저하게 떨어져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어떤 농가에서는 평년의 30%, 심지어는 20%도 채 되지 않는 결실률이 예상되고 어떻게 수정이 제대로 되어도 단호박 품질이 균일하지 못해 시장에 내다 팔 상품으로서 제 기능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원인을 따져보니, 이번에도 기후가 문제였다. 그 첫째 원인은,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 즉 ‘수정벌’의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수정벌이 보통 꿀벌이나 뒤영벌 같은 화분매개곤충인데, 기후변화로 서식 환경이 나빠지면서 개체수가 감소했다고 말한다. 둘째 원인은, 5월 초 단호박 꽃이 한창 필 무렵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곤충들은 활동을 멈추게 되었고 꽃이 있어도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결실률이 기존의 30~40%에 불과하다. 

이번 단호박 피해는 기후위기가 농촌과 농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사실 이 현상은 올해 처음이 아닌데 지난해에는 벌마늘 농가들이 긴 장마와 고온 현상으로 인해 대규모 피해를 입기도 했다. 마늘 줄기가 썩고 뿌리가 무르면서 수확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어 농가에 피해를 입혔다. 

기후가 바뀌면 농수산업도 흔들린다. 꽃이 피어야 할 때 안 피고 열매가 맺어야 할 때 수정이 안 되고 수확해야 할 때 비가 쏟아지면 인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농민에게 기후위기는 곧 생계의 위기이고, 식량의 위기이며, 더 나아가 지역의 공동체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 당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농민들에게 재해보험 가입을 독려하고 있고, 농작물 피해에 대해 직접적인 보상도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점검, 보강해야 한다. 병충해 발생 시기를 예측해 방제 시기를 알려주는 병해충 예보 시스템, 급격한 날씨 변화에 대응하는 하우스 자동 개폐 시스템도 수분 곤충을 직접 방사하는 곤충 이용 농법도 농업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반복되고 심화되는 한, 이런 조치들에만 기댈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길은 단지 농업 기술이 아니라 ‘농업방식의 전환’이다. 농사를 짓는 법, 작물을 선택하는 기준, 농업이 지역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를 바탕으로 하는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하게 된다. 농업생산 품종 선택의 다양화, 기후에 강한 품종, 조기 수확 가능한 품종, 병충해에 강한 품종 등 다양한 작물을 실험하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다르게 보면 농업도 기후위기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한데, 비료와 기계 사용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친환경 농업, 유기농, 저탄소 농업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또 농산물 유통 단계가 짧을수록 탄소 배출은 줄고 농민의 소득은 늘어난다.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순환형 먹거리 체계는 기후위기 대응뿐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아울러 개별 농가가 감당하기 어려운 기후위기 앞에서 협동조합, 마을 영농법인, 로컬푸드 협약 등 공동체 기반의 대응력이 중요하다.

올해 단호박 결실률이 급감한 사건은 단지 농사 실패, 농가 소득의 감소에만 그치지 않을 것 같다. 기후가 바뀌면 농수산업 등 1차 산업의 생산환경이 급변하게 되고 우리 지역에서도 이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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