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특히 어느 바다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남해의 바다를 더욱 좋아합니다. 동해, 서해, 남해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는 모두 특색이 있지만, 아무래도 고향의 정서가 깃든 남해는 그 정감이 남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남해의 이미지에 심취한 필자로서는 특히 고등학교 때 느낀 바다에 대한 소회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지만, 그때는 해마다 8월 15일 광복절이 되면 인근 남명 초등학교에서 남면에 속해있는 마을 전체가 참가한 가운데 축구 시합이 열리곤 하였습니다. 광복절이라는 특별한 의미에다 면민 전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연중 가장 큰 행사인데, 농촌의 정서상 전체 면민이 함께하는 행사가 드문 시절에 축구 시합에 참여하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거기에다 우승까지 하게 된다는 것은 마을로서는 대단한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필자의 기억에 남아 맴도는 우승과 관련된 이야기를 일별해 보면 어느 해, 필자의 외가가 있는 마을이 우승을 차지했는데, 한여름의 더위가 무색하리만치 마을 주민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합니다. 그 마을은 바다를 끼고 있어 선수와 주민들 모두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가는데, 그때 우연히 필자도 동석하게 됩니다. 

우승을 축하하는 잔치 분위기에 선상은 노래와 춤으로 뒤덮이고 넘실거리는 바다와 갈매기도 우승의 분위기에 동조한 듯 춤사위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승까지의 노고에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하는 선수들,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어르신, 이에 뒤질세라 바다의 율동 또한, 우승에 대한 기쁨을 함께하려는 듯 하얀 물방울을 끊임없이 치솟게 합니다. 그때 본 바다는 기쁨으로 승화된 바다였으며, 하늘마저도 그 기쁨에 동화되고 있었습니다. 

한창 예민한 청소년기에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든 선상에서의 추억이 쉽사리 잊히지 않았는데, 어느덧 수십 년도 더 되었을 도시 생활에 젖다 보니, 바다에 대한 인상도 거의 잊혀 가고 있는 와중이었습니다. 그럴 즈음에 귀향하여 다시 만난 남해의 바다는 필자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6년 전, 남해의 저명한 향토사학자와 함께 남해지역 마을 유래사를 조사하던 때였습니다. 약속한 마을로 이동하던 중 필자는 파도가 드센 바위에 몸을 기댄 채 미역 채취를 하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몸에 줄을 매어 바위에 연결한 채 작업을 하던 할머니는 거센 파도에 밀려 몸의 중심을 잡기조차 힘든 그런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필자는 차를 세우고 할머니가 작업을 하는 곁으로 다가가 일기도 고르지 못한 데다 파도도 세고 하니 위험하다고 외쳤습니다. 처음에는 파도 소리에 묻혀 필자의 외침을 듣지 못하던 할머니는 계속된 목소리에 이쪽을 응시하며 무어라 말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나는 늘 하던 일이라 당신이 보는 것처럼 그리 위험하지도 않은데 왠 호들갑이냐고 대꾸하는 듯하였습니다. 

필자 역시 할머니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에 묻힌 탓에 이를 알아듣지 못하고 얼른 나오시라고 손짓만 반복할 따름입니다. 이를 본 할머니는 무어라 응얼거리며 거칠게 팔을 휘두르면서 바위를 움켜잡고 물 밖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왜 그러시오, 남 한창 바빠 죽겠는데, 지금이 그래도 파도가 작아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데, 젊은 양반이 나한테 무슨 볼일 있소?” 이에 필자는 “어르신 작업을 보는 순간, 너무 위험한 것 같아 알려주려 내려왔습니다. 파도가 세니 좀 잠잠할 때 하시면 어떨까요?”라는 외침에 할머니는 “젊은 양반이 고맙구먼, 그라면 이왕 이리된 것 나도 좀 쉬어야겠네” 하시면서 울퉁불퉁한 바위에 걸터앉아 젖은 옷을 손으로 짜며 대꾸합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이렇게 위험하게 작업을 하시면 수입이 어느 정도 되시는가요”라는 필자의 물음에 “수입요, 아이고 얼마 안 돼요, 우리 손자들 오면 용돈이나 주려고 해요.” “아니 고정된 수입이 아니라, 손자들 용돈 주시려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하신다고요?” 필자의 놀란 기세에 할머니는 “아휴! 그 애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데”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 말에 필자는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고 해도 손자 손녀를 위하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못할쏘냐 라는 외침에 정(情)으로 연결된 인간의 성정(性情)이 얼마나 깊고 심오한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승의 즐거움과 손자 사랑의 간절함이 함축된 바다. 들뜬 듯하면서도 정이 스며있는 바다, 어쩌면 거기에는 인간의 잠재성을 돌이킬 위대한 품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 품성은 그냥 우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인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익은 사랑이 아닐까요. 

축구와 같은 격렬한 움직임에도, 위험을 동반한 미역 채취에도 사랑이 전제되고 있음을 느끼며,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는 감정이 아닌 전체를 사랑하는 바다의 넉넉함을 마음에 담으며, 또한 아무리 격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분노가 솟구쳐도 고요한 바다와 같은 성품으로, 사랑으로 담아내리라 다짐하며. 우리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는 바다와 같은 넓고 깊은 사랑을 담아내고 찾아야 한다는 것이 청소년기나 노년기에 지녀야 할 교훈이라는 것을 상기해 봅니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 모든 현상이 동(動)과 정(靜)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다시 잔잔한 바다의 품으로 들어가는 남해의 바다를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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