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저(堂底)리는 당집 아래에 있는 마을에 붙여진 이름이다, 집 당(堂) 밑 저(底)를 쓰며 고유 지명은 당밑, 댕밑이라 한다. 옛날 창선의 조세와 특산물을 모아 해창이나 보미창을 통하여 운송할 때 한성까지 탈 없이 운송케 해달라는 제(祭)를 올리는 당집이 있었고 그 당집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고 당밑마을이다, 아직도 당집터가 남아있고 커다란 고목이(당산목) 있으며 마을에서는 매년 동짓달 그믐날 불을 밝히고 풍농 풍어를 비는 동제를 모신다고 한다.
고종8년(1871)에 발간한 진주목의 목장지(牧場誌)편에는 마을 이름이 해창동(海倉洞)이었다. 1906년 창선면이 남해군으로 이속 되면서 법정리인 당저리(堂底里)가 되었으며, 1971년 3월 해창마을은 당저2리로 분동(分洞)이 되면서 당밑마을은 당저 1리가 되었다.
해창(海倉)마을은 창선의 조세나 상납하는 토산물을 해안에 있는 창고에 모아 조운선(漕運船)으로 조창에 운송하면서 해창(海倉)이라는 동명이 되었다, 바다 해(海) 창고 창(倉)을 쓰니 당연히 바닷가에 있는 창고마을이다. 우리나라에 조창이 처음 설치된 것은 고려시대였다. 10세기말 지방제도를 확립하면서 이를 토대로 바닷가 또는 강변에 조창을 설치하고 세곡을 수납했다. 해안에 설치되어 해로를 이용해 세곡을 운송하던 조창은 해운창(海運倉), 강변에 설치되어 수로를 이용하던 조창은 수운창(水運倉) 또는 수참(水站), 강창이라고 했다.
추도(萩島)는 사철쑥 추(萩) 섬 도(島)자를 쓰는 마을이다. 마을 앞에 있는 무인도에 사철 쑥이 많다하여 추섬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지금은 쑥보다 소나무가 울창하며 추도공원이 조성되어 바래길과 연결되어 있으며 해안에는 공룡발자국 화석도 있다.
지족리(只族里, 只足)의 고유지명은 새미날, 새민날, 새밑날 등으로 불린다. 지명의 유래는 삼동면 지족을 오가는나루인 지족진이 있었던 곳으로, 샘 아래 나루라 하여 샘밑나루가 새밋날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경상도 지리지(地理志)와 진주목지(晋州牧誌)에는 족 자를 일가 족(簇)자로 쓰였는데 언제 부터인가 겨레 족(族)자로 바뀌었다, 나루의 북쪽 기슭에 원사(院舍)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원사의 흔적은 없다.
지족리의 한자표기는 다만 지(只) 일가 겨레 족(族)을 쓴다. 건너편에 있는 삼동면 지족마을은 알 지(知) 족할 족(足)쓰고 있어 지명의 뜻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강이나 바다를 마주보는 마을은 설천면 노량리와 하동군의 노량리와 같이 같은 한자를 쓰거나 전혀 다른 지명을 쓰는데 이곳은 소리는 같고 뜻은 다른 이름을 쓰고 있고 지명의 유래도 전하지 않는다.
삼동면 지족리를 왕래하는 도선이 있었던 마을이다. 지금은 창선교로 이어져 있다. 창선교(昌善橋)는 1975년에 폭 8m 길이440m의 콘크리트로 다리로 설계되어 섬사람들의 소망이었던 다리가 생긴다는 기대감으로 착공 4년 만인 1980년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다리는 1992년 7월 13년 만에 붕괴되어 부실공사의 논란이 되었다. 현재의 창선교는 폭 14·3m 길이438m로 1993년 5월 공사를 시작하여 2년 7개월의 공사 끝에 1995년 12월에 완공하였으며 국도 3호선을 연결 하고 있다.
창선교는 교통의 소통 뿐만 아니라 다리 아래에 있는 죽방렴과 일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시어업 방법이 그대로 간직된 민속 문화재인 죽방렴은 길이 10m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개펄에 박아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놓고, 물살을 따라오는 고기를 잡는 단순한 방법이다. 현재 지족해협에 23개가 남아있어 보존가치가 높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신흥리(新興里)는 마을 앞산이 거북의 모양으로 생겼다고 구영동(龜靈洞)으로 불리었으며 고유지명은 구녕개였다, 후에 지명이 좋지 않다하여 앞산의 모양이 용과 닮았다고 하여 구용포(九龍浦)로 바꾸고 구용동(九龍洞)이라고도 하였으나 지금도 구영개라고 불리는 마을이다. 1936년5월 지족리(只族里)에서 분동하면서 새롭게 흥하라는 뜻으로 새 신(新) 흥할 흥(興)자를 사용하여 새로 만든 지명이라고 한다.
구룡포(九龍浦)는 오늘날은 매립이 되어 언개(堰浦)라는 새로운 지명으로 바뀌었지만 아홉마리 용의 전설어린 큰 내가 있어 구룡포라하며 고랑의 끝에는 백기미와 솔고지가 있다. 백기미는 백금이라고도 하며 배구미가 변한 것이고 솔고지는 솔곶이가 변한 곳이다. 일제 때 제작한 남해군도(1937)에는 구룡포(九龍浦)라고 표기 되어 있다.
해바리마을은 바다와 인접한 곳으로 남해의 특산물인 유자를 처음으로 가공하여 보급시킨 마을이다. 수령 60년 정도의 편백나무 숲이 마을 뒷산에 있어 삼림욕을 즐기며,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다에서는 횃불로 낙지 등을 잡는 홰바리체험, 갯벌생태체험, 선상어부체험 등의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온가족이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해바리는 서해안에서는 해루질이라고도 하며 밤에 얕은 바다에서 횃불을 들고 맨손으로 어패류를 잡는 것을 말한다. 요즘은 횃불 대신 손전등을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방앗간에서 얻은 폐유를 적신 솜뭉치에 불을 붙여 사용하였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쳇바퀴나 그물을 가지고가서 문절구나 낙지, 게를 잡았으며, 낯에는 그물 양쪽에 가늘고 긴 대막대로 손잡이를 댄 반두로 얕은 바다에서 물고기나 게를 몰아 잡기도 하였다.
지족마을에서 서쪽 서부로를 따라가면 해바리마을에서 산쪽으로(창선면 서부로 270-106) 올라가면 토피아랜드가 있다. 토피어리는 식물을 다듬어 여러 가지 보기 좋은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작품을 의미한다. 남해 토피아랜드는 꽝꽝나무와 주목나무를 이상한 나라 엘리스처럼 다양한 조각상을 만들어 놓은 동화 같은 공원이다. 울창한 편백나무 숲에서 피톤치드를 만끽하면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며 푸른 남해 앞바다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야생화와 상록수가 많아 4계절 내내 푸른 공원이며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들도 많다. 가족, 연인, 웨딩촬영 장소로도 인기가 높지만 취사는 불가능하며 도시락을 준비해서 편백나무 숲 평상에서 즐길 수 있지만 입장료 받는 개인 정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