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鳳花)리는 봉촌(鳳村) 마을의 봉자와 삼화(三花)마을의 화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하며, 옛 지명은 삼거리라 불렀다. 전국에는 여러 곳에 봉화마을이 있지만 대부분이 옛날 봉화(烽火)가 있었던 마을이지만 이곳은 특이하다. 봉촌 마을은 옛날에는 금산아래 깊은 골짜기에 있어 내산이라 불리던 곳이며 새 봉(鳳) 마을 촌(村)자를 쓰니 고유 지명은 새마을이다. 새들이 사는 산골 마을이라니 운치 있는 지명이지만 바다와 접해 있지 않은 산골마을이다. 마을 지명에 새 봉(鳳)자가 들어가는 곳은 봉황이라는 뜻보다는 새로 생긴 마을(新村)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삼화(三花)마을은 칡꽃, 연꽃, 지초꽃 등 세 가지 꽃이 많이 피는 곳이라 하여 석 삼(三)자와 꽃 화(花)자를 사용해 삼화라고하며 긴 골짜기 안을 장골(長谷)이라고 한다.
화암(花岩)마을은 꽃 형상의 바위가 있어 꽃 화(花) 바위 암(巖)자를 써서 지은 지명이라고 하며 전쟁 때 피난처로 사용한 굴방우골과 서당이 있었던 터가 있다.
내산(內山)마을은 마을이 금산 바로 아래 깊은 골짜기에 있어 안 내(內) 뫼 산(山)자를 쓰며, 내산 저수지 서쪽에는 나비생태공원, 힐링숲, 바람흔적 미술관 등이 있고 남쪽에는 남해 편백자연휴양림이 있어 남해에서 힐링과 문화예술을 모두 갖춘 유일한 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독일마을(獨逸)은 삼동면 물건리에 1960년대 서독에 간호사와 광부로 파견되었던 독일거주 교포들이 대한민국에 재정착할 수 있도록 남해군에서 개발한 곳이다. 이후 독일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2001년 남해군에서 30,0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해 40여 동의 건축물을 분양하였다. 참여한 독일 교포들이 독일에서 재료를 수입하여 독일식 전통 주택을 신축함으로서 독일과 대한민국 전통문화 예술 촌을 연계한 휴양지 및 관광지로 호평을 받고 있다.
원예예술촌은 17명의 원예인들이 만든 예쁜 마을로 독일 마을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다. 마을을 이루고 있는 정원들은 프랑스, 지중해, 미국, 호주, 스위스, 멕시코 등의 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산책길도 벚꽃, 매화, 장미 터널 등으로 특색 있게 꾸며져 있다. 해오름예술촌은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지역의 문화 예술 창작공간과 지원활동을 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남해 최초의 양떼목장인 양모리학교와 같이 있는 양떼목장 양마르뜨언덕은 약 19,000㎡의 푸른 초원이 펼쳐진 체험목장이다. 독일마을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푸른 목초지와 초원 산책로, 푸른 숲과 깨끗한 계곡까지 흘러 다양한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귀여운 양 떼들이 있는 목장 안에서 직접 먹이도 주고 만져볼 수도 있으며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다.
남해 편백자연휴양림은 약 227만㎡ 면적에 200만 그루 이상의 편백나무가 자라고 있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 분비량이 많아 항균 효과와 면역력 강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양한 산림 체험 프로그램과 산림욕, 숲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가족 휴식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나비 생태공원은 나비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자연학습장으로 남해군이 사업비 약 51억 원을 들여 조성한 공원이며, 나비 생태관과 나비사육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람흔적 미술관은 바람을 주제로 하는 미술관이며, 바람을 주제로 큰 키의 바람개비를 세운 설치미술가 최영호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풍차를 떠오르게 하는 큰 바람개비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저수지의 물결과 초록빛 잔디밭도 곱지만, 풍파에 깎인 거친 바윗돌과 대나무, 작은 골짜기가 잘 어우러져 있다.
대지포(大池浦)리는 마을 가운데 자연적으로 생긴 큰 못이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하며 우리말 지명은 큰 못개이다. 한자로는 큰 대(大) 못 지(池) 개 포(浦) 자를 쓴다. 지형 상으로는 큰 못이 있을 지역이 아님에도 큰 못개라는 지명이 있는 것은 마을의 위쪽에 저습지나 물이 고이는 장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을 한다. 설천면에 있는 왕지포와 같이 조선 수군들이 물을 공급받는 장소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많다.
물건(勿巾)리는 마을 뒷산의 지형이 물(勿)자와 같은 형상이며,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가운데 내가 흐르고 있어 그 모양이 수건 건(巾)과 같다고 하여 물건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마을의 형상이 선비들이 바둑을 두고 있는 형상이라 여자들이 수건을 쓸 수 없다하여 물건이라 하였다고 하지만 모두가 후대에 지어낸 말이다.
물건리는 말 물(勿) 수건 건(巾)자를 쓴다. 글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수건이 없거나 수건을 쓰지 말라는 뜻이지만 물건이라는 글자를 음차 하였다면 말건 개, 맑은 개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200년 전에는 없던 지명이다. 설천면에 있는 왕지포의 수건널과 대지포의 물건이는 물을 건네거나, 수원이나 수근과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물건리에는 물건 숲이라 부르는 방조어부림이 있으며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방조어부림은 방조림(防潮林)과 어부림(魚付林)을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방조림은 바닷가에 바람이나 해일을 막아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해안지방에 가꾼 숲을 말하며, 어부림은 물고기 떼를 끌어들일 목적으로 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는 해안에 가꾼 숲을 이르는 말이다. 물건 방조어부림은 해안가의 우거진 숲이 어족들의 증식과 서식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알고 300년 전에 어민들은 조성한 것으로 길이 1.5km, 폭 30m의 해안에 각종 나무가 들어서 있다. 바닷바람을 막으며 어족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서 오래 전부터 보호를 받고 있으며 숲 뒤쪽에는 미륵당집이 있는데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얻는다고 한다.
은점(銀店) 마을은 뒷산에 은을 캐던 광산이 있어 부르게 된 지명으로 은골 이라 불리었다. 은점은 은 은(銀) 가게 점(店)자를 쓰니 은을 관리하는 점이 있었던 마을이다. 조선 시대의 은점의 역사는 초기에는 별장제로 호조가 주관이 되어 군이나 영문의 은점을 흡수 관리하고 새로운 은점에 별장을 임명하여 수세를 하게 하였다. 후에 은점에서 발생한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물주제가 도입되었다가 다시 광산주가 운영하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