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金松)리는 마을 앞의 산모양이 거문고와 같다하여 금성(琴城)이라 불리었으나 이름이 어렵다하여 금송으로 바꿨다고 한다. 한때는 금송(錦松)으로도 불리었다, 금송리는 쇠 금(金) 소나무 송(松)자를 쓴다. 금송은 일본 남부 고야산이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나무이다. 공주 무릉왕릉의 관재로 사용 될 만큼 고급 자재로 쓰이긴 하지만 일본이 원산이라는 이유 때문에 현충사 안에 있던 금송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심는 일도 있었다. 그런 금송을 마을 이름으로 바꿨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되며 우리나라 고유종인 금송(錦松)으로 바꿔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드는 지명이다. 금송리에는 새 뜸(새터) 깐치밭골(鵲田), 가는 골(細谷)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전도(錢島)리는 된섬 돈섬으로 불리던 곳으로 마을의 형상이 고기모양으로 생겨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지도상으로 보아서는 형상을 알 수가 없다. 다른 유래는 옛날에 염전이 있어 돈이 모이기 때문에 돈 전(錢) 섬 도(島)자를 써서 돈섬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전도에 염전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지만 두음포에 염전이 있었다는 기록은 남아 있어 이곳이 두음포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두음포(頭音浦)는 현동 22리에 있으며 염밭이 있다고 적고 있다. 두음포는 콩 두(豆) 소리 음(音) 개 포(浦)자를 쓰니 한자의 뜻 보다는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두름개로 불리며 두름은 생선을 엮은 단위로 조기 한 두름처럼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마을 뒤에는 두 개의 쇠두름산이 있어 이 곳이 옛날에는 두름포로 이었음을 추정하는 요소가 되며 주변에 고기를 잡을 수 있는 죽방렴이 있는 것도 두름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본다.
둔촌(屯村) 마을은 옛날부터 조정에 바치는 세곡을 저장하는 조창이 있던 마을이라서 진칠 둔(屯) 마을 촌(村)자를 서서 둔촌이 되었다고 하며 조창을 관리는 관리들이 주둔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둔촌마을에는 왜적을 섬멸하기 위해 모래로 벽을 쌓아 군사들을 매복시켰다는 복병이고개가 있고 동 북쪽 골짜기에는 많은 말이 죽어 묻었다고 하는 몰상개(馬傷浦)가 있다. 구전에 따르면 고지를 서로 점령하기 위해 왜적과 많은 전쟁을 한 곳으로 귀신이 자주 나온다는 고개이기도 하다.
동천(洞天)리는 삼화천이 범람할 것을 대비하여 둑을 쌓았는데 이 둑을 둥천이라는 사투리에 따라 동천으로 이름 지었다고 하며, 골 동(洞) 하늘 천(天)자를 쓴다. 후대에 지어 지명의 유래와 맞지 않지만 국어사전에 동천은 산과 내로 둘러싸인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나, 신선이 사는 세계로 하늘과 통하는 마을이라고 하니 지형과 부합하는 아름다운 지명이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동천곶은 현 동쪽 30리에 있으며 둘레가 55리 되는 목장이 있다고 적고 있으며, 동천리를 얼 동(凍) 내 천(川) 자를 쓴다. 따라서 동천은 언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언은 얼음이 언다는 의미가 있지만 한자어로는 둑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언 이라는 소리를 빌려 온 것이지 뜻을 빌려온 것은 아니다. 물론 겨울이 되면 내가 얼어서 언다는 생각도 할 수가 있지만 언다는 것은 다른 내도 얼기 때문에 동천만 어는 내라고 볼 수는 없다 동천은 남해 사투리로 방천, 또는 방죽이라고 한다 한자로는 방죽 언(堰)자를 쓸 수도 있다. 동천곶 목장은 수장포에서 시작하여 대지포까지 이어진 마성의 둘레와 일치하는 거리이다.
산속에 있으면서 곶이라는 지명이 붙은 것은 옛날에는 금천마을앞 바다로 튀어나온 곶이 이 마을의 중심이었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내동천(乃東天), 안동천(洞川)은 동천리의 안쪽으로 동천 저수지 위쪽에 있는 마을이다.
도림마을은 복숭아나무가 많아서 지은 이름이며 복숭아 도(桃) 수풀 림(林)자를 쓴다. 과수원이 있었던 곳도 아니라서 얼마나 많은 복숭아나무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복숭아꽃이 피는 이상향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떠올리게 하는 지명이다.
화천(花川)마을은 꽃내라는 예쁜 지명을 가진 마을로 고내라고 불린다. 동천리를 가로지르는 시냇가에 나무가 무성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한 곳이라서 꽃내라고 불리었으며 한자로 꽃 화(花) 내 천(川)자를 쓴다. 꽃내에는 동천물놀이장이 마련되어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 유명하고 특히 여름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남해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피서처이기도 하다.
채봉골은 풍장을 지내던 곳으로 채봉은 보통 임시 매장을 한 뒤 2~3년 정도 지나 육탈이 된 다음 길일(吉日)을 택하여 다시 뼈만 추려 이차장(二次葬,두벌묻기)으로 치르는 장례 의식이다. 채봉은 흔히 초분(草墳)으로 알려진 장법(葬法)과 유사한 것으로 복장(複葬) 또는 중장제(重葬祭)라고도 불리는 특수한 장례 형식의 하나이다.
금천(錦川)마을은 삼화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자리하는 마을로 물이 맑고 깨끗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앞에는 지형이 노루목을 닮았다 고하는 노루목, 장항(獐項)이 있고 조정에서 기르던 말이 몰살당했다는 몰상개, 병사들이 주둔했다는 병지(兵地)마을 등이 있으며 한자로는 비단 금(錦) 내 천(川) 자를 씀으로 고유지명은 비단내이다.
양화금(楊花錦) 마을은 버드나무를 많이 심어 버드나무 양(楊) 꽃 화(花) 비단 금(錦)자를 쓰며 옛날에는 쇠 금(金)자를 쓰기도 하였다. 고유지명은 양아기미 라고 하며, 양아기미가 양화금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양화는 버드나무 꽃을 뜻하지만 지명에서는 버든곶(뻗어 내린 곶)이라는 의미를 갖는 말이다. 구미는 땅이 쑥 들어간 곳을 이르는 말로 기미나 금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 양아기미나 양아구미는 같은 말이라고 볼 수가 있다. 버덩은 높고 평평하며 나무는 없이 잡풀만 많이 우거진 거친 들을 가리키는 우리말로서, 보등이라고도 하였다.
청사포(靑沙浦)는 양아구미에 있는 모래나 자갈돌이 푸르다는 뜻이며 일면 베갈모라고도 불린다.
동천리에 있는 해관암(海觀庵)은 한국불교 태고종에 속한 사찰로 용(龍)이 알을 품고 있어 선인이 나온다는 명당자리에 있다. 이 사찰은 1943년 독립 운동가이신 하전(河筌) 이상태(李相兌)선생이 창건하였고, 1948년 설석우 스님이 법당 요사체를 작은 규모로 중창하였다. 지역의 인재양성 교육 사업으로 경남해양과학고(남해수고)에도 큰 기여를 하였고. 그 후 47년이 지나 1989년 지성스님의 원력으로 재 중창건되어 창건자의 뜻을 잘 이어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