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태 무 창선면 온리원 펜션 / 시인ㆍ수필가
하 태 무
창선면 온리원 펜션 / 시인ㆍ수필가

병원에 입원하면 온갖 곳에 ‘낙상 주의’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심지어 샤워장에는 수도꼭지 하나마다 ‘낙상 주의’ 그림과 함께 팻말이 붙어 있다.

그만큼 낙상은 환자에게 치명적이다. 필자도 병원에서 내 환자를 돌보다가 오로지 나의 실수로 세 번의 낙상사고가 났었다.

한번은 걷는 연습을 하다가 선 채로 뒤로 넘어져서 꼬리뼈가 멍들었었다. 마루바닥에 뒤로 넘어졌는데 ‘쿵’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뛰어나올 정도였다. 요행 머리는 다치지 않았으나 꼬리뼈가 불편해서 재활을 한참이나 멈출 정도.

두 번째는 매일 새벽 6시는 다른 환자가 자고 있는 시간이라 그 시간을 이용하여 목욕을 시켰다. 씻는 걸 좋아하는 내 환자를 위해  새벽에 휠체어처럼 생긴 목욕 의자에 앉혀 밀고 샤워장까지 가야 하는데 사지를 못 쓰는 내 환자의 발이 꼬이는 바람에 휠체어 채로 뒤로 넘어졌다. 그때는 경미한 타박상이어서 잘 지나갔었다. 그래도 얼마나 놀랐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세 번째는 늘 휠체어에 그냥 앉혀두어도 앞으로 넘어지는 일은 없었는데 그날은 기침을 하다가 몸이 다 앞으로 쏟아지는 바람에 병실 바닥에 얼굴을 쿵 찍어서 앞 면상을 크게 다쳤다. 코뼈가 다 부러지고 이마가 약간 찢어지고 온 얼굴이 퍼렇게 멍이 많이 들었다.
세 번째 다친 것이 치명적이어서 며칠 음식도 목에 잘 안 넘어가니  배가 고프다고 카스테라와 두유를 달라고 해서 그걸 억지로 먹다가 기도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결국, 폐렴이 심해져서 상급병원인 경상대 병원으로 실려 갔고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기며 인공호흡기와 위류관 시술까지 하게 되고 말까지 잃게 되었던 거다. 그렇게 위험한 것이 낙상사고다. 

같은 병원의 한 아저씨는 침대 아래에 있는 신발을 꺼내다가 머리를 쿵 찍었는데 매일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던 분이 약 6개월을 누워서만 지냈다.

침대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병실침대가의 난간을 반드시 올려야 하는데도 잠깐 실수로 못 올렸을 때, 침대에서 떨어져 팔을 다치고 간병인이 책임을 질 수 없어 병원 측에서 상급병원 입원비 전액을 변상하는 것도 보았다. 

무엇보다 노인환자들은 휠체어를 타는 사람은 물론이고 걸어 다니더라도 안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넘어지기 일쑤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거나 집에 있는 환자거나 낙상 사고는 하루 이틀에 낫는 병이 아니므로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필자도 휠체어에 부착된 벨트를 잘 매기만 했어도 그런 위험한 사고는 당하지 않았을 텐데 손발을 못 쓰는 환자가 넘어지면서 손잡이를 잡을 수 없어 무방비상태로 몸이 앞으로 쏟아져 내렸던 거다.

잠깐의 부주의로 안전사고를 당하는 건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언제나 유비무환의 자세로 환자를 간호해야 할 텐데 말하고 싶은데 말이 되지 않는 내 환자를 보면 내 탓이다 싶어 늘 가슴이 아리다. 

그런데 며칠 전에 서울서 필자의 척추협착증을 치료해 주셨던 A의사 선생님에게서 내 환자의 상태가 어떠냐는 안부 전화를 받았다.

“말이 하고 싶은데 안되니 너무 답답해합니다” 마침 경상대 외래예약 날이 가까워서 의견을 물었다. 봉합하면 안될까하고. 그래서 경상대 다른 의사 선생님 한 분을 소개해 주셨다. 그분 의견은 관을 제거한 지 9개월이 되도록 목을 뚫은 구멍이 조금도 막히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며 소독은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위류관을 제거하고 생긴 구멍을 소독할 때처럼 병원에서 가르쳐 준 대로 소독솜으로 소독한 후에 거즈를 붙였다고 했다. 그런데 위에 난 구멍은 얼마지 않아 다 메꿔졌는데 목은 하나도 메꿔지지 않고 본인이 손을 못 쓰니 의사소통은 간병하는 사람이 옆에 붙어 앉아서 목을 눌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계속 가래가 많이 나와 목에 난 구멍으로 흘러 나오니 봉합수술도 어렵고 메꿔지지 않아 할 수 없나보다 하고 있다고.

두 번이나 목을 뚫어주고 소독하는 법을 가르쳐준 이비인후과에  물어도 대답은 기다리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그분은 너무나 딱해하면서 봉합은 안 하는 게 맞지만 소독법이 틀렸다고 말했다. 목에 난 구멍에 소독 후 거즈로 막으면 소리가 다 새어 나가고 감염 우려도 있으니 메디폼으로 공기가 새지 않게 붙여 보라고 하셨다.

당장 예비로 갖고 있던 메디폼을 잘라 붙이고 그 위에 테이프로 봉했다. 정말 신기하게 남이 목을 막아주지 않아도 말이 되어 나왔다. 다만 기침을 좀 많이 하고 나면  메디폼이 젖기 때문에 부풀어 올라서 다시 갈아붙여야 되는 단점은 있지만 일단은 하루 중 잠시라도 스스로 말 할 수 있는 행운이 어디인가. 

시킨 대로 해 보니 어떻더냐고 다시 전화가 왔다. 나는 너무나 감사하다고 백 번이나 천 번이나 감사하고 싶다고 했다. 그분은 오히려 자기 병원에서 처치법을 잘못 가르쳐 주었다고 언제든 불편하면 전화를 하라고 한다.

메디폼은 보통 요양병원에서 욕창 예방 및 치료용으로 붙이는 파스 같은 건데, 습한 상처 부위의 습기를 빨아주는 역할을 하는 값이 좀 비싼 상처 치료용 의료용품이다. 

오랜 외상환자는 욕창 또한 문제다. 4년이 다 되도록 잠깐 휠체어를 타는 것 외에 대부분 누워있으니 욕창이 없느냐고 다들 묻는다. 필자는 병원에도 집에서도 환자의 자세 변경은 필자 스스로가 맡아서 해 왔다. 요행, 아직은 욕창이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조금 붉은 반점이 생기면 연고를 조금 발라 돌려서 바람을 쏘여주고 한참 있으면 정상 피부로 된다. 그 의사 선생님이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아니 4년씩이나 누워 있는데 욕창이 한 번도 안 생겼다니 놀랍습니다”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간병인들이 열심히 보는 데도 대부분의 환자가 다 욕창에 걸려 있었다. 침대에 욕창 매트를 깔아도 소용없이 엉덩이 쪽에 구멍이 뚫려 뼈까지 보이는 환자들도 많았다. 한 시간마다 방송으로 ‘지금은 자세 변경시간 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오지만 그걸 매번 지켜 그 시간에 자세를 변경해 주는 간병인은 흔치 않다.

아파서 몸을 잘 쓰지 못하는데 욕창까지 생기면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겠는가? 낙상과 욕창은 환자가 당해서는 안 되는 가장 악조건이다. 사랑과 관심만이 이 악조건을 예방할 수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가끔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시 하나 읊으며 시름을 달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불편한 게 많으니 밤이면 잠을 안 자고 수십번을 똑딱 하며 내 환자가 나를 부를 때, 
주문처럼 위의 글을 외우고 쓰고 …. 
우물에서 물을 긷 듯 사랑을 길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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