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태 무창선면 온리원 펜션 / 시인ㆍ수필가
하 태 무
창선면 온리원 펜션
시인ㆍ수필가

필자는 13년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꼭 따야 할 이유보다는 그저 천주교 노인시설에 봉사활동으로 노인들 말벗이나 해드리고 안마나 조금 해드리려 했더니 요양보호사 자격을 가져야 가능하다고 해서였다. 

당시는 자식이 못하는 효도를 국가가 대신해준다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란 거동이 불편한 65세 이상 노인 또는 65세 미만의 노인성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혼자서 수행하기 어려울 때, 신체활동 또는 가사활동 지원 등 장기요양급여를 제공하여 노후 건강검진 및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사회보험제도이다. 거기다 자식이 아픈 부모를 돌보아도 하루 일정액의 보수를 준다는 제도였다.

자식이 부모를 돌보는 건 의무인데도 현실이 여의치 못하면 부모라도 모실 수가 없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면 그것 때문이라도 부모를 모시게 될 수도 있으리라는 게 제도를 마련한 가본 정신이었다.

그러나 당시엔 부모를 부양하는 건 자식 된 도리이자 의무인데 자격증을 땄다고 그 일에 돈을 준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미 내 양쪽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을 때이니 가족을 돌보는 일에 내 요양사 자격증이 쓰일 줄은 꿈에도 상상조차 못했을 때다.

그러나 예고도 없이 배우자가 덜컥 아프기 시작했다.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재활은 필수적인 일이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하던 일도 접고 3년을 요양병원에서 보호자 자격으로 함께 지냈다.

그렇게라도 함께 지내며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가족이라고 병실에 여분이 있는 동안만 잠시 함께 있게 병원 측에서 배려를 해 준 덕택이었다.

그러다가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재활 시기를 놓친 내 환자에게 더이상 재활은 별로 의미가 없는 듯 보여 편하게 집에서 재가 센터의 도움을 받자고 결정을 내렸다.

날마다 집에 가자고 조르는 내 환자에게 더는 버틸 힘도 없었다.

그동안 병원에 지내면서 느낀 게 많다.

환자를 학대(?)하게 되는 간병 현실은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조금씩의 문제는 있게 마련. 안방에서 들으면 안방 말이 옳고 부엌에서 들으면 부엌 말이 옳은 것처럼. TV에서 떠들면 무조건 병원에서 잘못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다. 얼마 전 TV에서 간병인이 환자를 심하게 학대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줬다.

참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환자와 간병인, 간호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아무리 그래도 환자에게 그럴 수가….

그냥 단순하게 뉴스를 접하고 느끼는 사람들의 반응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특별히 성격적으로 못된 간병인이 아니라면 대개의 간병인들은 자기가 맡은 환자를 성심을 다해 돌본다.

간병인 한 사람이 24시간 동안 대여섯 명의 환자를 돌보아야 하는 현실에서 치매증세가 심하다거나 특별히 환자가 고집이 세다거나 할 경우 간병인이나 간호사들은 다른 환자들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을 병원 생활 3년 동안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가령 밤에 잠을 자는 시간인데 다른 환자가 잠을 못 자게 고함을 친다거나 바깥으로 나가려 한다거나 냉장고를 열어 남의 음식을 꺼내 먹으려고 할 경우, 다른 환자를 위해 강제로 잠을 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24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일은 대개 중국인들 간병인이 맡아 한다.

그들은 요양보호사 자격이 없어도 며칠 혹은 몇 시간의 교육으로 병원에서 간병인 역할을 할 수가 있다.

휴가도 없이 24시간 일하며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 사람들은 악착같이 돈을 벌어 본국으로 돌아가 편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온 중국 사람밖에 없다.

한국 사람은 대부분 24시간 휴가도 없이 간병하는 열악한 이 극한직업을 택하기가 녹록치않은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뉴스에 나오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 현실이다. 간병인에게만 책임추궁을 할 일만은 아닌 경우도 많다.

물론 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너무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나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죽음으로 가는 대기 장소에 불과하다.

오죽 했으면 어느 시인도 이런 시를 썼다.

“거기가 요양하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으랴만/ 당신도, 나도 우리도 다 안다/ 대합실 같은 곳, 대기소 같은 곳/ 그러나 다행이다/ 더 요양할 삶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공연히 우울하고 불안하고 안 하던 짓도 하게 된다. 현실은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고 돌볼 사람들은 생활 전선에 서야 하니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부모님을 모시는 일이 쉽지 않다.

이때 정부에서 자식들을 대신해서 하루 몇 시간이라도 집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요양보호사를 보내준다. 집에서 돌봐줄 요양보호사를 보내주는 곳은 재가센터다. 

일단 환자가 재가센터에 등록을 하면 센터에서 보내는 요양사들에게 서비스를 받는다. 전국 방방곡곡에 우후죽순 격으로 생기는 재가 센터들. 국가가 만든 보험제도로 그렇게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며칠 전 내 환자가 등록된 재가센터에서 문자가 왔다. 새로 생긴 재가 센터에서 수급자와 요양사를 유인알선하는 파렴치한 행각이 발각되었으니 혹시라도 이런 일에 연류된다면 자격 정지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요양사나 수급자로 등록된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재가 센터의 수입원일테니 유인알선이 왜 생기지 않겠는가? 게다가 기존 재가센터보다 급료를 좀 더 준다거나 무엇인가 금전적인 이익을 더 준다면야 같은 일을 하고 돈을 더 많이 준다는 곳으로 가고 싶지 않겠는가?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닭이나 돼지를 돌보는 일과는 다르기 때문에 사람이 정을 들이면 아무리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한들 그 정을 뿌리치고 갈 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일 뿐이다.

너도나도 요양보호사 자격을 따려고 시간과 공을 들일 때는 수입이 있기 때문이지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봉사하기 위해 따는 사람은 없는게 현실이다.

나 역시 요양보호사가 오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하루 24시간 중 90분간은 봉사료를 받는다.

우리 집에도 남자 요양사 한 분이 온다. 요양병원에서 경험을 쌓은 분이라 믿을 만하다.

하루 네 시간, 한결같이 열심으로 환자와 나를 도와주신다.

그렇지만 환자의 정서를 고려해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바뀔 떄 마다 환자들이 마음의 상처까지 받게 될 유인알선 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느 재가 센터를 가더라도 수급자나 요양사들이 같은 급료를 받을 수 있게 강력한 제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가 센터마다 급료를 조금씩일지라도 다르게 준다면 누구든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가려고 하지 않겠는가?

한국은 향후 2030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30%, 2050년에는 40%대로 노령인구가 늘 전망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급속도로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우리의 미래사회에 장기요양보호제도가 효과적인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제도를 더욱 안정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거의 모든 환자들은 아픈 본인만 최우선으로 대우해 주기를 바란다. 간병하는 보호자도 요양사도 같은 사람이므로 피곤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다는 걸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에게 그러지 말라고 고압적으로 말한다면 환자는 자신이 약자이기 때문에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절대로 환자가 상처받을 말을 해서는 안 되는데 하루는 너무 고집을 부려 “자꾸 그러면 내가 도망가 버릴 거에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나는 백 번도 더 잘못했다고 빌었다. 어떻게 꼼짝못하는 사람을 두고 도망간단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환자는 두고두고 섭섭함을 표하며 너무나 서러워했다.

어머니를 모시는 내 후배도 “엄마 그러면 요양원에 보내버릴래!” 그랬다고 아들이 오면 서러워서 이르고 며느리가 오면 또 울면서 이르고, 풀어드리려고 정말 힘이 들었다 한다.

환자는 작은 말에도 상처를 받고, 조금만 더 아파도 참지 못하는데 말을 잘못하는 내 환자는 혀로 ‘똑딱’ 신호를 보내서 불편함을 호소한다.

그런데 그 ‘똑딱’의 횟수가 너무 잦아서 돌아서면 똑딱, 되돌아와서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또 똑딱.

병원에 있을 땐 간호사들이 제발 밤에는 ‘똑딱’하시지 말게 하라고 온 병원에 울릴 정도라고 말했으니 내가 받는 스트레스는 오죽했겠는가? 집에 오니 누구 하나 조심하라는 사람도 없으니 밤에도 환자는 잠이 깰 때마다 ‘똑딱’거리며 꼭 나를 깨워 일으켜야만 한다.

얼마나 불편하면 삼십 분 간격으로 불러대겠는가? 환자가 성할 때 이루려던 모든 일은 지금은 다 부질없는 일이 되어 버린걸. 생각하면 답답하고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 않겠는가?

나는 불려갈 때마다 다리를 펴주고 스트레칭을 했다가 기도를 했다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주었다가 책을 읽어 주기도 하고 우리가 함께 여행했던 여행기도 읽어 주었다가 들락거리며 원하는 바를 다 해준다.

내가 졸려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이제 그만 가서 자라고 하지만 곧 불편한 곳이 또 생기니 어쩌겠는가

똑딱, 똑딱, 똑딱… 삼시 세끼인 식사도 한 시간씩 아직은 질도 먹는다.

집에 와서 좋은 점을 물어보니 병원에서보다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어 더없이 좋단다.

손발을 움직일 수 없지만 하루 한두 번씩은 휠체어를 탈 수 있다. 아직은 내가 태울 수 있지만 나도 힘이 빠지면 어쩌나 걱정이다. 휠체어에 타고 앉아 있는 모습은 환자도 아닌 것 같다.

길고도 긴 간병 시간 동안 보호자도 지치지 않으려면 유연한 자세로 환자를 대해야 함을 느낀다.

그래, 어려워도 즐기자. 그 길만이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오죽하면 그럴까?’ 이런저런 생각 뒤로 빗물처럼 떨어지는 시가 가슴을 울린다.

꽃이 시드는 동안
  / 정호승(1950~)

꽃이 시드는 동안 밥만 먹었어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꽃이 시드는 동안 돈만 벌었어요
번 돈을 가지고 은행으로 가서
그치지 않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오늘의 사랑을 내일의 사랑으로 
미루었어요
꽃이 시든 까닭을 문책하지는 마세요
이제 뼈만 남은 꽃이 
곧 돌아가시겠지요
꽃이 돌아가시고 겨우내 
내가 우는 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당신만은 부디
봄이 되어주세요

저작권자 © 남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