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는 미소가 행동에는 여유가 넘친다. 무작정 농사가 짓고 싶어 덜컥 고향 땅에 호기롭게 내려온 지 어느덧 10년. 스물아홉의 패기 넘치던 청년이 이제 서른아홉의 여유 있는 청년으로 거듭났다. 이동면 금평회관에서 만난 청년 농부 서호덕 씨의 이야기다.
청년농업인으로 구성된 남해군4H연합회의 회장직을 맡게 된 호덕 씨는 금평마을에서 벼농사 100마지기를 짓고 있는 전업농이다. 농사만 지어선 밥 못 먹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는 오늘날에, 외려 농사만 지었더니 재미나고 여유 있는 삶을 얻었다는 청년, 서호덕 씨를 만나 남해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주>
1984년생, 올해 서른아홉이 되었다는 서호덕 씨는 본래 삼동면 동천이 고향이다. 배를 탔다는 아버지는 이후 목수 일을 하다가 가족들 모두 울산으로 이사가게 됐다. 특성화고에서 자동차학과 전공을 한 그는 울산 조선소에서 일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 만지는 걸 좋아했고 뭐든 분해하고 고치는 걸 좋아했기에 조선소 일도 나쁘지 않게 했단다. 다만 직장생활의 상명하복 문화는 좀 맞지 않는 옷 같았다고.
호덕 씨는 “회사 생활 자체가 좀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거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느낌 같은 게 편치 않았다”며 “언제부턴가 내 농사짓고 싶다. 한 삼십 대 중반쯤 아니면 결혼하게 되면 갈까? 이렇게 저렇게 상상만 하다가 진짜 뭐에 이끌리듯 스물아홉에 훅 사표를 냈다”고 말했다.
무모하다는 소리를 꽤 들었는데 10년이 지나 이제 전업농으로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보니 그때 과감하게 용기 낸 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호덕 씨는 “제 걱정으로 부모님들도 덩달아 남해로 귀향하셨죠. 울산에서 남해로 전 가족 모두 귀향하게 된 셈이죠”라며 웃었다.
농사야말로 버티기의 미학 시련 견뎌내면 ‘폭망’ 없다
‘농알못’이 보기에 농사만큼 인내가 필요한 작업도 없지 싶다. 그래서일까. 월급쟁이만 해 본 사람들은 선뜻 농사짓기를 주저하는 게 현실이다. 호덕 씨는 “저는 머릿속으로만 될까 안될까 생각하는 시간에 땅 파서 심어보자는 주의다. 울산서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신기하게도 내 집인데도 내 집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남해 와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데도 농사는 신기한 게 ‘내꺼’라는 강한 애착이 들었다. 처음엔 농사를 모르니까 그저 마을 어르신들 농사일이라면 무조건 돕는 것으로 일을 익혀갔다. 그러면서 작은 땅을 빌려 이거저거 심고 기다리고 가꿔봤다”고 한다.
농업기술센터의 귀농귀촌교육도 잘 되어 있고, 농사를 배우려 들면 길은 많다는 호덕 씨. 그는 “저처럼 무모하게 말고 계획을 갖고 농사에 접근하고 싶다면 딱 2년 정도 먹고 살 자금을 쥐고 ‘농사지을 땅’부터 빌리거나 구하는 것으로 시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며 “농사짓는 재미를 맛보면 다시는 월급쟁이 생활로 돌아가기 싫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아무리 한 해 농사 망쳤기로서니 사업을 하고 가게를 차리면서 망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기에 그저 ‘조금 덜 먹고, 덜 쓰면’서 버티면 길이 나온다는 것.
청년 농부? 충분히 비전 있다…여유 시간 많은 벼농사 vs수익 좋은 시설재배
호덕 씨는 청년들에게 농사를 권하겠느냐는 질문에 당연한 듯 엄지척을 날린다. 그는 “농사가 충분히 비전 있어요. 남해가 워낙 땅이 귀한 곳이니 2만 평 농사짓는다면 많다고 생각하는데 혼자서도 거뜬하다. 엄청 바쁜가 하면 그도 아니다. 5-6월 바쁘고 9-10월 잠깐 바쁘다. 마늘과 시금치 농사 옵션으로 챙겨가도 그 정도만 바쁘다고 보면 된다. 바쁜 시기도 바쁜 거 해결하고 나면 오롯이 자유시간이다. 얼마나 여유롭고 좋은지. 스스로 새벽에 일어나 할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주체적으로 쓰는 기쁨이 크다”고 한다. 남해의 매력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할 것도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은 곳이다. 특히 식도락이 크다. 도시 음식이나 배달음식은 적지만 제철음식을 안주 삼아 나누는 ‘제철 수다’가 또 ‘꿀맛’이다. 어업 하는 형님 배 타고 배 위에서 즐기는 낚시와 횟감도 즐거움 중 하나”라고 말한다.
자동차보다 비싼 농기계 부담 마을 속으로 동화되는 과정이 관건
청년이 농부로 정착하기 위한 과정 중 큰 부담은 트랙터 1대 가격만 해도 4천만 원에 달하는 비싼 농기계 금액이라고 한다. 농기계임대소가 있어도 개인이 직접 트럭에 실어 대여와 반환을 해야 하는 문제와 농사철이 되면 경쟁이 치열해 결국엔 자기 농기계를 사야 하는 시점에 직면하게 된단다. 호덕 씨는 “신규로 오는 청년이나 농업인만 혜택 보는 게 아니라 기존에 정착해 사는 청년이나 농어업인도 지원받을 수 있는 정책의 균등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어 “‘망해서 농사지으러 왔나?’라는 편견으로 보는 시선 등 마을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좌절감이 있다 보니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청년들, 와서도 돌아가는 청년들이 생기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비추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덕 씨는 진입장벽이 높다는 마을에 적응해가며 작물이 커가는 기쁨을 키우고 있다. 자연을 평생직장으로 품는 나날을 쌓다 보니 어느새 ‘남해인’만의 즐거운 특혜가 무엇인지 절로 알게 되었다며 ‘남해농사’를 권하는 유쾌한 이웃으로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