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태 무창선면 온리원 펜션시인ㆍ수필가
하 태 무
창선면 온리원 펜션
시인ㆍ수필가

다시 설날이다.

세상이 많이 각박해졌다고 하나 밤은 불야성이고 해는 매일매일 찬란하게 뜬다. 내 이웃은 좀 더 따뜻 해 졌고 우리는 많이 아프다. 설과 추석 무렵이면 거의 ‘민족대이동’이 화두가 되었었다.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마저도 코로나19로 인한 거리 두기 원칙에서 벗어나니 설날 풍속도 마저도 바뀌어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설상가상 아픈 사람이 있는 집안의 명절은 참 슬프다. 가족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에나 자녀들을 만나리라 기대하고 부풀었던 마음들 앞에서 모두가 풀이 죽는다.
지금은 장성해 가정을 이룬 큰 아이가 고3이 되던 해였지 싶다. 

언제나처럼 우선 설날 아침에 먹부터 갈았다. 하이얀 화선지 한 장 책상 위에 펼쳐 한해의 포부를 써 보라 했었다. (그때는 혈기왕성하던) 아비가 먼저 붓을 든다. ‘언제나 시작’. 우리 집의 가훈이자 한해를 살아가는 결심이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자. 그 새로운 시작이 이젠 아무 의미가 없다.

‘정상 정복의 해’. 큰 아이가 이렇게 썼다. 그 아이에게 무엇이 정상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둘째가 붓을 받아서 썼다. ‘무한한 가능성을 향하여’. 이런 거창할 데가 있겠나 싶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아이에게도 어떤 걸 원하기에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을 했는가? 물어보지 않았다.

이들 삼부자(三父子)들은 설날 아침이면 결심을 붓으로 쓰던 그날의 분위기를 추억하면서 마음 아파한다. 남편이 병이 나서 손을 못 쓰게 되고부터 가장 슬픈 일은 붓글씨를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남해로 이사 오고 난 뒤에도 서울 살 때 다녔던 동방연서회 서실을 찾아 연습을 하고 필본을 받아오던 열정이 넘치던 이였건만. 이제 설날이 되어도 먹을 가는 일은 없다. 

이제 어느덧 지천명을 넘긴 아들들은 그 옛날 설날 아침에 품었던 지신들의 포부가 이루어졌을까?

슬프게도 아비가 1급 중환자가 되고부터 명절이 되면 즐거운 기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름다운 달과 해와 별과 하늘이 있고 온리원의 앞바다는 출렁이고 있으며 우리네 삶 또한 끝이 아니다. 

올해는 만 3년간의 병원살이를 접고 퇴원하고 집에서 처음 맞는 설날이다.

인공호흡기도 떼고, 위류관으로도 음식을 안 먹고 입으로 먹긴 하는데 스스로는 동작이란 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중환자. 그래도 명절이니 조금은 색다르게 준비를 해야겠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다.

지난 추석에는 작은 아들이 메론 한 덩이, 탕국에 부침개, 나물, 떡 등등 음식을 가지고 와서 병원에 들여놓아 주고 갔다.

감옥처럼 유리창 너머로는 보게 했었는데, 그때는 무슨 일인지 보게 하면 벌금이 무려 300만원이라나 그래서 멀리서도 얼굴조차 못 본다기에 음식만 들여주고 아비랑 통화만 했는데 “말도 조금 할 수 있어” 그랬더니 아들은 “열심히 하세요, 아버지” 그러고는 울먹이며 그냥 갔다.

이게 이즈음의 환자가 당하는 코로나 풍속도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날 오후 외국에 사는 큰아들 가족이 영상통화를 시도했었다. 예쁜 두 손녀랑 사랑스런 며느리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오십이 넘은 아들은 붉은 테의 돋보기를 쓰고 좀 쑥쓰러운 지 화면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영상통화 또한 이즈음의 풍속도. 오지 못하니 그렇게라도 아쉽지만 고마운 일이다.

설날이 다가오는 무렵이면 옛날엔 연날리기도 하고 윷놀이도 하고 집안이 시끌벅적하지 않았나?

명절이 다가오는데도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환자의 기분에 따라 보호자도 정서가 춤을 춘다.

어떤 때는 맑음인가 했는데 금세 흐림으로 바뀐다. 갑자기 태풍도 몰아친다. 그렇다고 함께 휩쓸려 떠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리 달래고 저리 얼리고 애기 다루듯 환자의 풍랑을 온몸으로 맞다보면 파김치가 된다.

하루 서너 시간 오는 요양보호사에게 환자의 정서까지 돌아보는 여유를 기대할 수는 없다. 스무 너머 시간을 보호자가 어찌하고 살지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니 그 폭풍우와 비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가장 가까운 보호자는 점점 지쳐가는 것이다.

명절이 오지만 어찌 그것이 기쁨일 수가 있겠는가? 그마저도 공휴일에는 요양보호사가 오지 않는다.

긴 설 명절 연휴 동안 혼자 환자와 씨름할 일에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래서 주문을 외듯 홀로 마음속 기도를 끝없이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많은 날들이 모두 감사로움으로 제 가슴에 담기게 해 주십시오.”

“사지가 멀쩡한 것도 감사한 일이요. 내가 누구의 손과 발이 되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느끼게 해 주십시오. 불쑥불쑥 화를 내는 내 환자가 내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가 나보다 불편한 게 많은 거라고 내가 부족하게 돌보는 거라고 얼른 뉘우칠 수 있는 용기를 제게 주십시오.” 4년여 넘긴 병간호로 제 몸과 제 영혼은 이미 지쳐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최고의 인생은 사랑하는 삶이요, 최고의 사랑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며, 사랑하기 제일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는 말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거리 두기가 이 설날에 너무 외롭습니다.

그리고 시 한 수를 소리 내어 읊어 본다.        

   

밤하늘에 쓴다
                                            유안진

언젠가 그 언젠가는
저 산 바다 저 하늘도 너머
빛과 어둠 너머

잘 잘못을 너머
사랑 미움 모두 너머

머언머언 너머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우린 다시 만날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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