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면 앵강만에 반한 하규하, 우경미 부부는 마을 내 빈집을 빌려 ‘토훔 교회’라는 작은 쉼터이자 사랑방 같은 마을 교회를 꾸리고 더불어 행복한 삶을 일궈 가고 있다
이동면 앵강만에 반한 하규하, 우경미 부부는 마을 내 빈집을 빌려 ‘토훔 교회’라는 작은 쉼터이자 사랑방 같은 마을 교회를 꾸리고 더불어 행복한 삶을 일궈 가고 있다

당신은 신의 존재를 믿나요. 종교가 있냐는 질문에 ‘무교’라고 답해왔다. 하지만 하규하(55)ㆍ우경미(54) 부부를 만나고 돌아온 날, 저 답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교리를 품거나 신앙생활을 해 온 건 아니지만 사랑과 믿음, 소망은 삶의 바탕에 유유히 흐르고 있는 생명수이며 이 물이 고갈되어갈 즈음 삶 또한 피폐해진다는 걸 살아온 세월이 툭 알려주고는 했으니 말이다.

이동면 앵강만이 훤히 보이는 성남로 78번길 9-19. 마을 시작점에 ‘토훔 교회’라는 작은 입간판이 놓여있었다. 터키어로 ‘씨앗’이란 뜻의 소박한 교회. 낮고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 안에 무슨 교회가 있다는 걸까. 길을 따라 열 발자국 걸어가면 이슬람제국의 상징인 터키의 풍경이 벽화로 새겨져 있는 집이 나온다. 토훔 교회에 당도한 것. 부산 토박이 사내인 하규하 목사는 아내 우경미 씨를 설득해 8ㆍ15광복절, 남해로 정착했다. 

폐허에 가까운 빈집이 마을 교회가 되는 기적이라니
Local church. 지역 교회, 시골교회 어쩌면 마을 교회를 열자 결심한 건 지인의 빈집이 계기가 되었다. 방치되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세월만이 가득한 빈집이었으나 집과 이어진 남새밭이 이들을 치유로 이끌게 하였고 양쪽으로 놓인 창으로 바라보는 앵강만 풍경과 마을, 하늘, 들, 바다는 한번 보면 잊기 힘든 귀한 풍경이었다. 

지인의 공간을 허락받아 부부가 수리하여 마을 교회를 열고, 작고 동그랗게 그리하여 충만하게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이러한 결심이 가능한 것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기독교의 대척점인 이슬람의 심장, 터키에서의 삶이 밑바탕 되었다. 

하규하 목사는 당시 5살, 9살인 두 아들과 아내, 모두 대동해 터키로 떠났다. 신분이 확실해야 살 수 있었기에 전공을 살려 무역업, ‘비지니스 맨’인 ‘한국 가장’으로 살면서 신의 사랑을 조심스레 나누는 선교 활동을 한 것. 터키살이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 부부는 이주나 변화에 대한 용기가 훨씬 담대했다. 하규하 목사는 “나이 들면, 귀촌하겠다고 하는 친구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건강할 때, 좋을 때 좋은 곳을 누리라고. 혹여나 부부간 갈등이 있고, 매일 깨지는 이라면 ‘귀촌’, ‘이주’를 권하고 싶다. 장소를 바꿔보는 데서 오는 에너지와 더불어 같이 영차영차 고생해보면 한층 더 성장한다”고 말했다. 

아내 우미경 씨는 이러한 ‘나그네 같은 삶’ 혹은 ‘노마드 인생’에 대해 “시골살이에 대해 가장 큰 건 재정적 고민이었다. 그런데 막상 여기서 매일 마주하는 풍경의 아름다움에 반하면서 든 생각은 ‘내 삶의 패턴을 바꿔야겠구나’였다. 자급 자족하자, 조금 벌고 조금 쓰자, 이렇게 가치관을 바꾸니 시금치 단 묶는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긴 도시가 아니니 배달음식도 없지 않나. 달리 생각하면 전부 천연재료로 자연이 준 것으로 먹는다 생각하니 건강엔 더 좋다. 논밭 사이의 길을 걸으며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매일 누리니 감사하다. 풀 뽑으면서 힐링이 되고 아궁이 불 때워 집을 데우는데 그 따스함은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자족(自足)…스스로 만족하는 삶에서 감사함이 흐른다
“더불어 잘 사는 행복한 삶을 나누기 위해 남해로 왔다.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남해의 모습은 무얼까. 그런 고민을 같이 하는 공동체이고 싶다. 토훔 교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소속이지만 저는 여느 교리나 목사신분이기에 앞서 좀 더 가까운 이웃이고 싶다. 작은 것이라도 돕고 싶고, 누구든 와서 잠시 쉬어갈 사랑방 같은 곳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간 구성을 했다”고 하규하 목사는 말한다. 

ㄷ자 형태의 집은 창고건물을 고쳐 사랑방이자 동네 카페처럼 꾸며뒀고, 안쪽에 구들이 있는 소박한 예배당과 입구엔 누구라도 세탁기를 쓸 수 있도록 공유주방 형태로 열어 두었다. 이들은 “우리네 삶은 나그네다. 죽음이란 끝이 있기에 쌓아두는 건 부질없다. 가져갈 수 없다. 그러기에 집이란 개념도 여행길에서 긴 여정 도중 텐트 치듯 좀 근사하게 텐트를 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영원토록 살 것처럼 바벨탑 쌓기에 여념 없는 부동산 부자는 결코 ‘자족’을 모른다. ‘자족’이 있어야 만족이 있고 만족하면 행복으로 감사함이 차오른다. 감사함이 흐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아보게 된다”며 “남해는 아름답다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인데 자족의 분위기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땅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제주도 보다 좋은 남해’라고 키워드를 정했다. 이 아름다운 곳의 빈집 문제는 안타까운 현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실질적인 솔루션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쉬울 것 없는 사람들’에게 의사결정을 맡기지 말고, 치열하게 고민할 수 있는 ‘아쉬운 사람들’의 진심을 들어줄 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하규하ㆍ우경미, 이들이 만들어가는 ‘신세계 남해’로의 이주에 대해 덧붙였다. 

“귀촌할까 말까 망설이는 분들에게 최악을 먼저 떠올려 보면, 사실 죽기밖에 더하겠냐고 얘기해주고 싶다. 할까 말까 고민하는 시간이 낭비일 수 있고, 해보면 거기서 또 길이 보이고 안 보이면 자기의 길을 찾아가면 된다. 와 보면 좀 더 일찍 올 것을, 그게 제일 후회됐다. 남해 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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