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 연 설천면장
박 정 연설천면장

가을은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다  - 알버트 까뮈 -

가을은 온통 자연을 물들이고 우리는 지금, 가을이라는 그림 속에 살아갑니다.

곁에 두고 있으면 영혼이 충만해지고 행복해지는 물건들이 한두 가지쯤 있을 것입니다.

이 가을에는 잘 익은 낙엽 한 장만으로도 넉넉한 삶을 누릴 수 있을 테지만,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霜降)을 지나자 어느덧 바람의 온도가 차가워지고 가슴이 뚫린 듯 허전해질 때 자꾸만 감성 소품으로 마음이 향하게 됩니다.

머리가 가장 잘 담고,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은 감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아가는 듯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는 두 번의 가을을 잃어버린 채 힘든 시기를 건너왔습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아 떠나는 시간으로 채워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순간순간 호흡을 고르고 삶의 의미를 채워가며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무릎담요
무릎담요

겨울의 문턱에 접어드는 입동(立冬)을 앞두고 저는 장롱 속에 아껴두었던 귀한 앤틱 패브릭으로 특별한 의미를 품은 감성소품, 무릎담요를 만들었습니다

구하기도 어려운 데다 손깃만 스쳐도 혹여 원단이 닳아 버리지는 않을까 조심스레 달래가며 프랑스자수 소품들과 어우러지니 까다로운 가치만큼이나 오히려 사랑스런 모습으로 변신했습니다.

조각조각 헝겊이 이어지고 만들어지는 동안, 마치 마지막 한 조각으로 퍼즐이 완성되듯이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감동은 영혼마저 따뜻하게 데워주었습니다.

그저 평범한 조각에 불과한 헝겊이지만, 앤틱 원단은 누군가의 린넨장에서 묵묵히 견뎌온 세월의 자존심만큼이나 차마 바느질하기에 미안할 정도로 경외감으로 다가옵니다.

이 소품은 특별한 기교와 도안 없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조각조각 섬세한 무늬를맞춰 가며 앤틱 패브릭이 갖는 묘한 매력만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얀 린넨 위에 단아하게 수놓은 모노그램, 원단의 씨실과 날실을 몇 올씩 빼어낸 뒤 남은 올을 엮은 드론워크, 도안에 따라 버튼홀 스티치로 수를 놓은 뒤 무늬를 오려 낸 컷워크, 
한 땀 한 땀 수놓은 화이트 워크… 묵묵히 지켜온 시간의 의미와 가치가 녹아있는 헝겊 조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그 이상의 가치를 품은 무릎담요로 탄생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사물에는 우리가 풀지 못하는 묘한 수수께끼가 깃들어 있는 듯합니다. 조각조각 헝겊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느리게 느리게 그리고 오래 보아야 전해들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마치 할머니의 유년시절 들었던 옛날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처럼… 올 겨울, 영혼의 온도를 끌어 올려 줄 여러분의 감성 소품은 무엇인가요?

※ 앤틱 패브릭(Antique Fabric) : 10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 고전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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