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세부를 넘어 이집트 다합을 지나 남해로 오기까지
필리핀 세부를 넘어 이집트 다합을 지나 남해로 오기까지
  • 남해신문
  • 승인 2021.09.1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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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그리고 다이빙, 다른 세계를 넘나드는 경계 없는 여행자 가족이 만난 남해

“다이빙하기 좋은 곳이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여행하듯 살면 언젠간 그리운 곳으로 남게 돼”

낮과 밤, 그리고 바다. 당신에게는 몇 개의 세계가 존재할까. 
조덕희(46), 고보경(41) 두 부부는 ‘바다’를 만나면서 또 다른 세계를 만났다. 다이빙하기 좋은 곳이 꼭 살기 좋은 곳은 아니지만 다름을 인정하며 여행하듯 살다 보면 나중엔 꼭 그리움으로 남게 되더라는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 마흔여섯과 마흔하나가 되기까지 이들이 누빈 바다와 그렇게 만난 다른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이빙 강사이자 전문 트레이너인 조덕희 씨와 20대엔 여행업계에서 일하면서 ‘여행하다 죽으리라’를 실천하던 고보경 씨는 다이빙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세계 여행이 꿈이었던 보경 씨와 세계의 바다 여행이 꿈이었던 덕희 씨. 덕희 씨 덕분에 보경 씨 또한 다이브의 매력에 빠지면서 자연스레 ‘평생 여행의 동반자’로 서로가 서로를 점찍었다.

부부란 평생 여행의 동반자…다이버들에게 바다란 ‘또 다른 세계’
8살 쌍둥이 딸 민솔, 은솔의 부모이기도 한 조덕희, 고보경 씨가 남해군 고현면으로 전입신고를 한 건 2020년 11월이었다.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는 다이브의 성지인 ‘블루홀’로 잘 알려진 이집트 다합에서 두 딸과 함께 살았다. 보경 씨는 “저는 필리핀 세부에서 취미로 한 다이브의 매력에 빠져 수련하게 되었다. 이후 스쿠버다이빙에 특화된 시골 마을인 이집트 다합에서 ‘다이브 숍’을 열고 홍해의 매력에 빠졌다”며 “필리핀에서 임신해서 한국에서 아이 낳고 첫 돌까지 한국에서 살다 필리핀으로 돌아갔다가 남편이 ‘자기야, 우리 홍해 가볼래?’ 한 게 계기가 돼 이집트까지 오게 됐다”며 파란만장한 여행자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보경 씨는 “필리핀의 경우 영어 어학연수로도 한국인이 많이 살다 보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치원도 있고 나름 한국 음식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이집트 다합은 차원이 달랐다. 부부 둘뿐이었다면 결정이 쉬웠겠지만 두 딸이 있어 고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일까 하는 여행 세포를 어쩌지 못했다”며 가족이 이집트로의 이사를 가기 위해 1인당 캐리어 2개만 허용되니 총 8개의 가방을 들고 총 36시간의 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다이빙 강사 라이센스 보여주자마자 ‘당일취업’
눈만 보여놓고 죄다 가린 채 사는 이집트인들 틈바구니 속에서 36시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다합에 도착하니 앞은 바다요, 뒤는 사막이었다. 첫날 든 기분은 ‘잘못 왔구나, 막막하다’였다고. 하지만 그 어린 두 딸이 부모만 믿고 36시간의 대이동을 무사히 견뎌준 것만으로도 이건 ‘기적이구나’ 싶었다. ‘물만 있으면 사는 부부’다 보니 믿을 건 자격증과 실력뿐이었다. 아빠 덕희 씨가 스킨스쿠버 숍을 찾아가 다이빙 강사 라이센스를 보여주자마자, ‘같이 해보자’는 제안이 왔고, 그에 대한 답은 ‘숍에 태극기를 걸어달라’는 것이었다. 이집트에서 태극기를 걸고 사업을 시작했다. 특파원이나 주재원도 아니고 그저 네 가족이 바다 따라 여행 따라 흘러 온 이집트 다합이었지만 신나게 일하며, 신나게 살았다. 그러나 두 딸도 막지 못한 ‘여행 본능’을 ‘코로나19’가 봉쇄해버렸다. 2020년 3월 이집트에 코로나19의 공포가 엄습했다. 일단 여행객이 하나도 없고 검사키트가 부족해서 검사마저도 안 되고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 보니 가짜뉴스가 많았다. 마스크를 살 수도 없었고 약국엔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었고 모든 길은 통제되고 이곳은 여행금지구역으로 지도상에 검게 표기됐다. 하늘 문인 공항이 닫혀버리고 바다까지 막아버린 채 사이렌을 울리며 단속하는 난리를 4개월 겪다가 2020년 7월, 간신히 첫 비행기를 잡아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고향을 찾아 선택한 ‘남해’…K26  ‘실전잠수풀’ 절실하다 
외할머니가 계시는 창원에 신세를 지면서 한국에서의 터전을 찾고자 고민을 거듭했다. 일단 바다가 있어야 했기에 바다를 중심으로 고민했다. 고현초-도마초 두 교장 선생님과 상담했는데 정말 좋은 분들이셨고 신뢰가 갔다. 8살이 된 쌍둥이 두 딸은 ‘자연에서 딱 뽑아낸 것처럼 자란 아이들’이라 흙과 돌을 가지고 놀았지 한국의 아이들처럼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도시 가면 적응할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도마초를 택했는데 전교생 모두가 (이들의 입장에서는) 도시아이들이었다. 

성산마을 귀농인의 집에 기거하면서 남해읍 롯데리아 맞은편에 작은 공간을 빌려 ‘씨드래곤 다이브’라는 숍을 내고 살길을 찾고 있다. 아빠 덕희 씨는 “다이빙하면서 평생 사는 게 제 꿈”이라며 “남해에도 가평의 K-26 같은 ‘실전잠수풀’이 있으면 그야말로 액티비티한, 움직이는 여행의 성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경 씨도 “물에 대한 공포가 상당했는데 그걸 극복하고 물의 매력에 빠진 케이스다. 바다에 들어갔을 때의 그 ‘무아지경의 편안함’을 알릴 수 있는 이 일이 즐겁다”며 “남해는 좋은 바다가 있어 동해처럼 다이버들의 성지가 될 조건이 다분하나 ‘실전잠수풀’이 없어 연계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두 딸 또한 최연소 다이버로 키워내 네 식구 모두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평생을 여행하듯 살고 싶다는 이 가족에게서 고요한 평화가 물처럼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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