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도시, 목표는 탈출’이라는 키워드로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1991년 독재 체제 시기 전쟁을 방불케 한 내란 상황을 담은 영화 ‘모가디슈’는 소말리아 남북대사관 공관원들의 탈출 실화를 담은 눈물겨운 영화다. 불과 30년 전 이렇게 무자비한 총질이 난무하던 전쟁이 있었던가 싶지만, 지금 코로나19 현실 또한 다르지 않다. 나라별, 지역별로 상이해 어떤 곳은 대학살 수준의 전쟁터인 것. 

코로나19 전장(戰場)이 되어버린 인도 남부의 뱅갈루루(Bangalore) 지역에서 16년 전부터 교육을 중심으로 한 여러 봉사활동을 펼친 임성경 전도사(40). 그는 부산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살다 고신대학교에서 만난 지금의 부인인 이수현 씨(38)와 결혼식만 올리고 다시 인도로 떠났을 정도로 봉사에 대한 마음이 컸다. 이후 2013년에는 가족 모두가 인도로 와서 인도의 청소년 교육에 매진했다. 

교원자격증이 있는 아내 이수현 씨는 인도에서 음악 교사로 활동했고, 임성경 씨는 ‘교육 디렉터’로 가난한 청소년들도 받을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연결시켜 주거나 장학금 지원을 주선하는 등 교육에 앞장서왔다. 이들 사이엔 중학생 2학년 아이와 초등학교 1ㆍ2학년 세 아이가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도사람들’ 코로나19 고통 위에 굶어가는 고통까지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심해진 1년 6개월의 시간에도 헌신으로 버텨냈다. 인도의 경우 한국의 ‘자가격리’와는 차원이 다른, 말 그대로 ‘락다운’ 상황으로 코로나 확진을 받으면 아예 집 안에 가둬 버린다고. 

혹시나 배가 고파 집 문을 열고 나오면 경찰들이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릴 정도로 극심하다고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인 인도 지역 서민들은 ‘굶어 죽느니 차라리 코로나19 걸리는 게 낫겠다’ 고 여길 정도로 상황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임성경 씨 가족은 집안에서 쌀과 마스크 등 생필품을 일일이 포장해서 ‘세이프팩’이라는 걸 만들어 집집마다 나눠주는 봉사를 이어갔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뉴스를 통해 알다시피 현재 인도의 1일 확진자 수가 40만 명에 육박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인도 한인회에서도 전세기를 띄워 인도 안의 한국인들을 탈출시켜내야 할 영화보다 더한 상황이 온 것.

남해로 전입해 온 지 이제 막 15일 됐지만, 정말 인도에서 떠나오기 전 장면을 떠올리면 공황장애가 올 정도라고. 길거리엔 사람들이 다 쓰러져 있고 병원에 가면 시체 옆에서 코로나19검사를 받아야 했다. 시체를 죄다 태우는 데 태울 수 있는 화장터마저 부족해서 곳곳에 시체로 즐비했다고 한다. 

안전한 한국, 힐링 그 자체인 ‘남해군’
인도 가기 전엔 창원에서 살았던 임성경 씨가 한국에서의 2막을 여는 곳으로 남해를 선택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임성경 씨는 말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그야말로 살기 위해 한국을 와야 하는 상황이었고 귀국 외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그런데 세아이들과 어디서 살 것인가가 문제였다. 인도에서 제가 가르친 제자들이 죽어 나가고 이웃들이 고통에 시름 했기에 우리 가족이 가진 거의 모든 건 다 나눠주고 빈 몸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외삼촌이 남해 남면에서 과수원을 하셨다. 남면에서 외삼촌 일을 돕다가 우연히 남해대학의 ‘귀농귀촌사관학교’ 플랭카드를 보게 됐고, 7월에 일주일간 귀촌 교육을 받는 중에 ‘고현초 백종필 선생님’을 소개받았다”.

백종필 교장선생님과의 만남은 전도사인 본인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만남이었다고 한다. 성경 씨는 “생명존중이 바탕에 있는 교육철학이나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등 정말 감동이었다. 남해에서 아이들과 교육자로 살아가면 좋겠다는 결심이 섰다. ‘남해로 언제 오실겁니까. 집부터 보러 가십시다’라며 발 벗고 나서준 백 교장의 헌신에 감사했다. 소개로 고현의 빌라 하나를 사고 ‘살아있는 천사’가 아닐까 싶은 천동마을 정영옥 이장님을 만나면서 모든 게 기적 같았다”고 한다.

바다 한번 보려면 12시간 가야 했던 인도
빈털터리로 온 남해지만 이곳에선 천군만마를 지닌 부자보다 더 충만해졌다. ‘우리 동네 박 반장’ 같은 박기석 씨가 이사부터 집수리까지 도와주고, 먼저 온 고현초, 도마초 학부모들의 환대와 응원이 보태졌다. 더 근본적인 건 가족의 행복이었다. 인도에선 바다 한번 보려면 12시간 차를 타고 가야 했고 산을 가려고 해도 최소 6시간 운전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곳 힐링 남해에서는 지천이 바다고 숲이고 산이었다고. 코로나19로 제자들의 줄 이은 죽음을 목격했기에 숙명적으로 찾아든 공황장애도 이곳에선 상당히 치유됐다. 성경 씨는 “남해라는 곳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법을 부리는 곳 같다. 저녁에 가족끼리 낚시를 나갔다가 한 마리도 못 잡고, 남해대교 아래서 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정말 행복했다. 막내인 딸이 ‘아빠 우리 여기서 오래오래 살자. 바닷가 앞에 집을 하나 더 사면 안돼요?’하는데 다 같이 웃었다”

인도에서 가난한 학생들에게 염소 한 마리, 소 한 마리를 장학금으로 나눠줬는데, 얼마 전 딸이 고현초에서 병아리 두 마리를 받아왔다고. ‘아, 이런 게 받는 사랑이구나’를 실감했다는 성경 씨. 남해라는 ‘공동체’에 반해버렸다는 이 가족들의 여행 같은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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