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기, 나에게 시조와 고향이란 무엇인가
이처기, 나에게 시조와 고향이란 무엇인가
  • 임종욱 인턴기자
  • 승인 2021.07.16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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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으로 전하는 시인의 마음을 듣는다
시인 김민부 시비 앞에서
시인 김민부 시비 앞에서
시인 김춘수 선생의 문학강연 때(1998년)
시인 김춘수 선생의 문학강연 때(1998년)
현대시조문학상 시상식에서(2002년)
현대시조문학상 시상식에서(2002년)

이처기 시인에게 몸은 창원에서 살아도 고향 남해로 향하는 발걸음이 끊어진 때는 없다. 문학 관련 행사가 있거나 기념할 만한 일이 있으면, 또 가족이나 친지들을 만나고 고향의 흙 내음이 그리울 때면 언제나 남해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시인의 따뜻한 품성은 그의 세상과 사람을 향한 시선에서도 느낄 수 있고, 밭을 갈 듯 써내려간 작품에도 알알이 열매 맺어 있다. 30년 넘게 줄곧 매달려온 시작(詩作)의 길.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붓끝은 무뎌지지 않는다.

시인이 생각하는 고향, 그리고 사람들. 또 문학에 대한 탐구심. 여러 가지가 궁금해 만날 때마다 문의했고, 부족할 때면 메일이나 문자를 통해서도 보충했다. 그렇게 듣고 적은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간략하게 정리했다.

선생님 문학의 원천은 어디라고 봐야 할까요?
= 세상과 사람, 겪은 일과 생각들이 모두 글을 쓰는 데 힘이 되지요. 그래도 꼭 한 구절로 묶는다면 2016년에 낸 시조집『하늘채 문간채』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서 저는 “산 / 강 / 바람도 만나 보았다. // 더 그리운 건 사람이었다. // 정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시조집을 내면서 내 창작의 뿌리가 어딘지 돌이켜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런 글로 반추랄까 다짐이랄까 스스로를 다그치는 심정을 담았습니다.

결국 자연과 사람, 그리고 거기서 솟아나는 정(情)이 창작으로 결집되었군요
= (웃으면서) 제가 정이 많아 그런가 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고향을 멀리 떠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붙박아 살지도 못했어요. 교사라는 직업이 어딘가 장돌뱅이 같거든요. 하지만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타지에 있어도 눈길이 머무는 곳은 고향이 있는 하늘이었지요. 세상의 모든 자연과 사람이 항상 고향의 산천과 얼굴들로 수렴되었고, 그 애틋한 정이 제 시적 언어를 끌어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시조에 마음을 붙이셨군요
= 그래요. 젊어서는 여러 장르를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시조만큼 나 자신이나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는 게 없더군요. 반천 년 넘게 이어온 시조의 가락과 운율은 곧 우리들의 혼과 맥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더 올라가면 고려가요나 향가에서도 시조의 자취는 읽을 수 있어요. 우리들의 정과 한을 시조가 아니라면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할 거란 확신을 가졌고, 그래서 지금까지 앞으로도 시조를 벗 삼아 살아갈 겁니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 나이에 비한다면 정정하다고 해야겠지요? 여든을 넘기면서 몇 군데 탈도 나긴 했지만, 소중한 물건을 고쳐 쓰듯 매사 조심합니다. 남해에서 제 나이라면 아직 어르신 소리를 듣기엔 이르기도 하지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 분들의 웃음과 슬픔, 기쁨과 안타까움을 작품 속에 채우려 합니다. 내가 세상을 뜰 때까지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창작의 끈을 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많은 작품을 발표하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11편 연작시 <남해찬가>는 고향 사랑이 듬뿍 우러난 절창이라 여겨집니다. 선생님께 고향은 어떤 의미인지요?
=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기저귀’와 ‘어머니’지요. 기저귀는 전세에서 현세로 받아 내세로 전해줄 생명을 수반하는 밑자리이고, 어머니의 양수가 묻어 있는 선물입니다. 자식들 키우느라 늘 노심초사하는 그 마음,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여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노모의 기저귀를 제가 갈았는데, 그럴 때면 요람에서 나를 잠들게 하던 자장가가 들리고 모시베 짜던 베틀가가 연방 들립니다. 고향이란 이처럼 네게는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음에 참 와 닿은 말씀입니다. 남해 사람의 장점이라면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 남해 사람들은 무엇보다 부지런해요. 한 뙈기 땅이라도 있으면 뭔가를 가꾸지요. 자연을 소중히 여깁니다. 또 예절 바른 사람들이에요. 삶에 부대껴도 늘 이웃을 염려하고 도우면서 챙깁니다. 그런 데서 우러나는 인정도 빼놓을 수 없지요. 다음 세대들도 꿋꿋하게 이어진 이런 심성을 잘 기억하고 전하기를 바랍니다.

공감이 갑니다. 끝으로 선생님께서 뵌 분들 중에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면요?
= 어디 한둘이겠나요.『사향록』을 쓴 시나리오 작가인 이청기 선생님, 회나무 앞에 섰던 소설가 김정한 선생님이 기억납니다. 회나무 앞에 있던 목비가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국야구의 영웅 최동원 선수도 태생은 남해예요. 국제탈공연예술촌을 만들고 이끄셨던 김흥우 촌장님도 잊지 말았으면 싶습니다. 세계적 기업 MK회사를 이뤄 남해 군민관을 세우신 유봉식 선생님, 재일사업가로 남해장학회를 창설한 현위헌 선생님, 남해의 정신을 문학으로 승화하신 문신수 선생님,『남해100년사』를 쓴 장대우 선생님, 남해의 원로이자 서복회 회장이신 박창종 선생님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네요.
모두 우리 남해의 소중한 자산이자 자랑입니다. 그 분들의 땀과 얼이 우리 남해를 기르는 토양이지요. 이 분들 말고도 묵묵히 제 일을 해오며 사셨던 분들이 많은데, 늘 존경하며 본받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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