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초 3학년인 아들, 5학년인 딸 두 아이의 뒷글자를 따서 본인을 ‘우우아빠’라고 소개하는 하상현 씨는 요즘 생애 최고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시골은 난생처음이라는 그는 창원에서 기계 분야 일을 해오다가 지난해 12월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남해로 귀촌했다. 아내와 두 아이가 먼저 귀촌했고, 아빠 상현 씨도 합류했다. 귀촌과 동시에 올해는 상현 씨 인생의 첫 안식년인 셈이다. 간호사인 아내가 올해 가장 역할을 하느라 창원시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주말 부부 생활 중이다. 귀촌하기 전까지 큰 걱정은 도시, 아파트, 학원 생활만 해본 아이들이 처음 만난 ‘남해라는 시골’을 잘 적응해줄 것인가였는데, 아이들은 귀촌 첫날부터 완벽적응해서 이제는 ‘아파트로 돌아갈래?’ 하고 물어봐도, ‘이어마을 이 마당 집에 담긴 추억이 많아서 못 떠난다’고 했다고.

코로나19가 극심했던 지난 3월, 
정작 우리의 아이들은 방치되었다

엄마 김경남 씨는 귀촌의 결심이 선 순간이 생생하다. “간호사다 보니 지난해 3월을 잊을 수가 없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근무 강도도 엄청났다. 정작 우리 아이들은 학교도 못가고 온라인수업을 해야 하는 데 챙겨 줄 사람도, 보호자도 없었다. 그 시기에 TV뉴스에서 ‘남해의 작은 학교 살리기’를 보게 됐다. 육아에 지쳤고 코로나19에 지쳤다. 아이들 또한 부모 퇴근 시간인 저녁 7시에 맞추기 위해 학원 셔틀 3곳을 돌리던 상황이라 사교육에 지쳤다. 그 당시 두 아이 학원비만 100만원 가까이 들었다. 정작 아이들은 학원 셔틀을 힘들어하고, 어른인 우리 또한 지치고 가족끼리의 대화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렇게 무작정 남해로 내려와 실제 학교를 찾아가서 교실을 보여달라고 졸랐다. 선생님 책상 하나, 아이들 책상 5개가 놓여 있는 교실을 보자 눈물부터 핑 돌았다. 여기 남해에서 살자.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아보자 결심이 섰다”.
이러한 아내의 결심에 반신반의했으나 아내보다 1년 늦게 귀촌한 남편 하상현 씨는 지금 네 사람 중 가장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이기도 하다. 상현 씨는 “늘 납품기한을 맞춰야 돼 토요일까지 근무가 잡혀있었고 야근도 많았다. 가족 여행은 저 빼고 셋만 갈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서의 저란 존재는 그저 ‘필요한 걸 사주는 사람’이었지, 아이들의 친구나 따스한 아빠는 아니었다”며 “여기 와서 아내가 제게 ‘그간 우리 가족 먹여 살리느라 10년 넘게 고생했는데 이젠 좀 쉬면서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봐요’라고 제안할 때 얼마나 감동이던지. 신기하게도 이젠 제가 남해에서 엄-빠 역할을 하는데 아이들과 진짜 친구가 됐다. 여기선 모든 게 놀이고, 체험이다. 또 최근 핸드폰 요금제를 바꿔 끊었더니, 영상만 보던 아이들이 책을 열심히 본다”며 신기해했다.

흙으로 놀고 샘물에 손 씻고…
시금치 공판장에서 경제관념을 배우고

아이들 역시 이어마을의 사랑둥이로 잘 크고 있다. 김필명 이장님이 마당 있는 집을 구해주셨다. 수리해 쓰는 조건으로 월세 없이 3년간 살 수 있어 든든하다. 학원 안 가는 대신 흙으로 놀고, 그러다 샘물에 손 씻고, 낚시 가고 갯벌 가고, 직접 키운 시금치를 경매하는 공판장에 팔러 가본 경험으로 절로 경제관념을 배우는 아이들이 그저 대견스럽다. 아빠 하상현 씨는 “저희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저 반겨주시고 뭐든 도와주시니 이어마을 김명필 이장님부터 모든 어르신들께 정말 감사드린다. 또 도마초 교장 선생님께서 저희뿐 아니라 모든 귀촌한 가족들의 집을 구해주시느라 너무 애써주셨다. 그 마음의 깊이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한다. 엄마 김경남 씨도 말한다. “아이들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린 다 알잖나.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행복한 기억을 주고 싶다, 나중에 부모가 없더라도, 그 행복한 기억을 꺼내 살아가는 데 힘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어찌 되었건 코로나19 팬더믹이 계기가 돼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를 깨닫고, 이제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우우가족’. 
무엇보다도 학급이 소수정예다 보니 선생님께서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다 애정을 쏟아주고, 아이들끼리도 일종의 ‘무리나 파벌’ 없이 다 잘 지내 밝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라고 한다. 
인생의 안식년 중인 아빠 하상현 씨는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상현 씨는 “일자리가 없어서 결국 돌아가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많이 하는데, 아이들 교육과 환경 때문에 여기까지 오기로 결심한 이상, 일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유대, 아이들의 행복’이다. 그리고 일은 상황에 맞게 하나씩 찾아가면 된다”며 “더 큰 문제는 주거다. 사실 지역 사정을 모르는데 덜컥 집 사긴 그렇고,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살 집을 구해주면 좋겠다. 한 사람 유치하는 것보다 가족 서너 명을 유치하는 게 인구증대에도 효과가 크듯 주거문제를 풀 수 있다면 더 많은 이들이 귀촌할 것”이라며 지원책에 대한 희망사항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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