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면 오곡마을에서 두릅 농사를 짓고 사는 이정이, 구남효 부부의 모습
고현면 오곡마을에서 두릅 농사를 짓고 사는 이정이, 구남효 부부의 모습

“나 같은 바보를 뭣 하러 보러 온다고? 그다지 할 얘기도 없어” 
오곡마을에서 두릅 농사를 짓는 구남효 농민의 목소리다. 수년 전 메구(꽹과리) 치는 모습을 뵙고 인사드린 게 전부일 뿐 그 사이 긴 세월이 흘렀다. 남해에서의 시간은 화살이다. 

구남효 씨는 아버지 때부터 오곡마을에 터를 잡고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해를 떠나본 적이 없다. 
외동아들로 태어나 스스로를 ‘호사스럽게 컸다’고 말하는 그는 “형제가 없어 그런지 내성적이다. 외동인 덕에 그 어려운 시절에도 중학교 공부까지 했지. 그런데 부모님이 연세가 많아 고등학교는 못 가고 남해대교 개통 1년 무렵부터 대교에서 사진사를 하면서 처음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그때 칼라 사진 한번 찍는 게 3천 원이었고, 내 월급은 1만 5천 원이었다. 넘(남)의 돈맛을 본 건 그게 처음이었다”며 추억을 들려준다. 그렇게 사진사 활동을 하면서 “요(여기)가 좋습니다, 사진은 등기로 보내드립니다, 이쪽으로 서십시오 등 못하던 말도 늘고 낯선 사람도 접하면서 성격이 좀 밝아졌다”는 구남효 씨는 점점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다시 고향인 오곡마을에서 경지정리를 하네, 농공단지를 여네 등등 변화를 겪어내며 9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오이 농사를 지었다고. 
20년 오이 농사 뒤로 ‘파프리카’가 좀 수월하다고 해서 지었다가 최근엔 두릅 농사로 재미를 봤다고 한다.

삼남매 무탈하게 키워내니 이제 좀 편안하다

28세의 청년 구남효 씨가 21세의 앳된 이정이 씨와 결혼을 해 같이 산 세월이 어느덧 45년. 선원마을의 이정이 씨를 중매로 만나 아들 하나 딸 둘, 삼남매를 무탈하게 잘 키우고 큰 병 없이 지금껏 온 세월이 감사하다 한다. 
반백년 해로한 아내 정이 씨에게 오래 잘 살아온 비결에 대해 물었더니 “비결이 어딨는고. 그냥 사는 거지. 한 사람은 참아야지. 안 살라치면 모를까, 살 것 같으면 누군가는 참아놓으니까 여기까지 오는 거지. 서로가 갈구면 여기까지 못 온다”며 미소짓는다. 

구남효 씨는 “사람은 누구나 어려움을 겪어 봐야 돼. 쓴맛을 겪어 봐야 돼. 너무 호사스럽게 크면 안 돼. 아이들 키워보니 고생을 사서도 시킨다는 옛말이 딱 맞아. 자식들이 번듯하게 잘 돼 있지 않다 할지라도 뭣보다 건강하게 가정 이뤄서 창원, 김해 등지에서 본인들 직장 생활하며 잘 살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한다. 아내 이정이 씨도 말한다. “지금 젊은 부부들 보면 짠해요. 나부터도 그때 그 시절 생각해보면 얼마나 갖고 싶은 것도 필요한 것도 많던지. 누가 조금만 도와주면 조금 낫겠다 싶어도 그게 안 되니 버거웠던 것 같아. 근데 참 신기하지. 지금은 돈이 있어 살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도 이제는 다 소용도 없고 필요도 없어. 내가 저걸 사본들 얼마나 쓰겠나 싶어서 들었다가도 내려놓게 된다니까. 욕심이 없어지는 거지”.

‘남해정론’ 시절부터 지역신문을 좋아했다
 
구남효 씨는 “내가 흥도 많고 정도 좀 많다. 지역신문을 참 좋아했제. 지금도 몇 개가 생겨 다들 회사마다 형편이 녹록치가 않을 거구만. 게다가 코로나19 바람에 장사도 시원찮고 축제도 끊기고…축제도 하고 단체들 행사도 해야 다 같이 밥도 먹으면서 지역경제도 좀 살고, 신문사 광고도 돌아가고 하는데 이렇게 돌고 도는 돈이 끊기니까 살만한 사람은 살기 쉬워도 어려운 사람은 혼자 고민이 많을 것”이라며 지역신문 걱정도 건넨다. 그러면서 시대가 바뀐 만큼 신문사도 매일 뭘 채울까 고민 많겠지만 남해 사는 사람으로 생각해보면 “남해사람들, 촬영해갔다는 소식을 말해줘도 텔레비(TV)를 볼까 말까요. 외려 ‘설천에서 니, 우찌 사네?’, ‘단호박 키우면서 산다더만 잘 사요?’ 싶은 그 마음을 잘 찾아 담아달라”고 당부하셨다. 그러면서 농사짓기 바쁘고 파크 골프 치기 바빠 “신문을 봐도 요새는 큰 대가리(제목)만 보고 후르룩 넘길 때가 많다”며 웃으셨다.

남해 사는 사람은 남해 좋은지 모르듯 농사 짓는 사람은 농사 좋은 줄 잘 몰라

 평생 농사를 짓고 산 부부는 “예전과 비해선 정말 많이 기계화됐다. 농사가 기계화 되다 보니 소득이 늘고, 돈이 벌린다. 대신 그만큼 바쁘다. 기계화로 시간도 벌고 노동력도 벌다 보니 여러 농사가 가능해졌다. 1년 내내 놀 새가 없이 농사를 짓게 된다”며 “시골 가도 기계화가 많이 돼 시금치하고 나면 두릅하제, 쫑대 하제. 마늘하고 나면 마늘 팔아야제. 놀 시간이 없어. 진짜 나이 많고 아예 아픈 사람이나 놀까. 땅을 놀려둘 수 없으니 돈 벌기 바쁘지. 옛날엔 이웃끼리 관광계도 하고 고구마 삶아 정자나무 아래서 새참도 나눠 먹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여유가 더 없지 싶다”고 말했다. 
인구절벽과 고령화를 고민하는 목소리에 대해 아내 정이 씨는 “농사가 편해졌다해도 농사로 생활이 될 만큼 경작한다는 건 골병든다는 뜻이기도 해서, 아무리 땅이 좋다 해도 내 자식한테만큼은 농사짓지 말라고 하고 싶다”며 “남해 사는 사람은 남해 좋은지 모르듯이 농사를 짓는 사람은 너무 힘에 부치다 보니까 농사 좋은 줄 모른다. 원래 하는 사람은 죽겠는데 보는 사람은 좋아 보이는 게 인생살이”라고 웃으셨다. 

“한 번도 남해를 떠나본 적 없다. 그러니까 내가 바보지. 그런데 사람들이 바보를 좋아하더라고. 똑똑하면 싫어해, 사람들이…고사마을 조개 먹지. 두릅이랑 시금치 먹지. 감 열리면 감 따 먹어야지. 이게 남해 사는 우리 재미야. 그게 좋아서 여즉 살아. 방송에서 자꾸 소멸이니 절벽이니 떠들어도 내 느낌엔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있을 것 같아, 분명 그럴 거야” 구남효 씨의 목소리가 두릅 밭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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