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자 심리학박사
류정자 심리학박사

우리에게 때때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이해력을 갖춘 명철한 지혜가 있다면 올바른 행동을 강화시켜 적절하게 처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 어떤 일과 관련하여 현명함을 함축한 지혜와 슬기로움을 더한다면 조심성과 자제력을 얻게 되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지혜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대화를 통하여 우리 아이들에게 휼륭한 지혜로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 사고를 보다 정교화하고 발전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말하고 싶다고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내뱉고 볼 것이 아니라, 그 말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과 감정까지 탐사하도록 해야 하다. 지혜는 본래 건전한 판단력과 문제를 해결하고 위험을 피하거나 방지하면서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식과 폭넓은 이해력을 성공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지혜는 언제나 선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선한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이 사용할 때는 이것이 악용되기도 한다. 지혜가 악용되는 경우에는 인간의 약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속임수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책략과 술책으로서 교란시키는 행동을 하다가 결국은 자멸의 길로 걸어가게 되어있다.
만약 대화를 할 때에 내 마음만의 만족을 위해한 방향으로 일방적인 대화를 하려고 하면 상대방은 마음을 닫아버릴 수 있다.
우연히 필자의 어머님께서 골절상으로 입원해 계신 다(多)인실의 옆 병상에서 병상이 함께 붙어 있기에 노모A와 아들 사이에 오고간 안타까운 대화를 듣게 되어 옮겨보고자 한다. 
중년의 아들이 편안한 복장으로 면회하러 성큼 성큼 입원실로 들어오기에 편안한 대화로 노모의 마음이 편안해 지겠거니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성이 오고가는 모습을 보게 되어 안타까움이 한가득 목구멍 주변까지 차고 올라옴을 느꼈다. 
 노모께서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침대에 누워만 있어서 그런지 서러움으로 전날 밤에 병원이 떠나가도록 울부짖고 소동을 친 이후에 아마도 간호실에서 보호자인 아들에게 면회와 줄 것을 요청한 모양이었다.
노모A는 아들에게 엉덩이를 좀 보라고 하면서 자신의 엉덩이에 욕창이 생겼다며 아픔을 호소하고 연고를 엉덩이에 좀 발라달라고 말하자, 아들은 역정을 내면서 “엄마가 몸을 자주 돌려 누워주고 일어나기도해야 부스름이 안생기지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있으니 그런 것이 생기지요!”라며 당연히 노모께서 해야 될 행동을 안 해서 이 지경이 되었다며 생각해 주는 듯이 여러 차례 말하자 노모A는 아들의 말과 행동이 서운하게 느껴졌는지 아주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이제부터 병원에 오지마라” “다시는 오지마라”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두 손을 내저으며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입술이 파르라니 떨리고 있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딱한 생각이 스칠 뿐이었다. 
노모A와 아들은 서로의 말속에 담긴 진심을 헤아리지 못한 채 원망만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옆 침상에 누워계신 노모A께서 양육 시기에 자식을 키우면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지혜롭게 훈육하고, 슬기로운 대화로 아이를 성장하게 하였다면 이런 슬픈 장면은 대면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금보다 귀한 것이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하고 싶은지를 독자의 생각을 정리해 보시길 바란다. 부모는 자식을 훈계할 때에 교훈을 잔소리로 듣지 말도록 지혜를 동원해야 할 것이다. 자녀의 연령대에 알맞게 지혜로써 분별력까지 내포하여 듣도록 노력해야 할 것과 소크라테스 식의 대화법을 권하고 싶다. 
자녀들이 철들기 전 잘못을 했을 때도 무작정 “잘못 했습니다” 만 말하게 하기보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정체성을 키우게 하는 것이 다음에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즉, 돈으로는 얻을 수 없는 만족감과 삶의 의미를 선물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크라테스식의 대화법은 자녀들의 사고를 외현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학습이나 기타의 수업장면에서도 쉽게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식의 대화법은 한방향의 대화법이 아닌 산파적대화법으로 말이나 사고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확인하고, 말에 함축되어 있는 속 마음(내용과 감정)까지 탐사 할 수 있다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혜의 왕’으로 회자되는 솔로몬을 포함하여 지혜로 세상을 헤쳐 나갔던 선인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지혜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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