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은 군조인 백로가 서식하여 ‘봉황리’, ‘황새등’이라 부르다가 오늘의 봉전(鳳田)이라 부르게 되었고, 망운산 줄기에 병풍처럼 펼쳐진 봉황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주변 환경 그리고 교통이 편리하고 행정. 교육 및 편의 시설들이 가까이 있어 일반주택과 연립주택이 공존하는 마을로 주거지로 각광받고 있다.
30년간의 직장생활을 끝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노후를 설계 하던 중 그동안 국가의 녹을 받아 가정을 일구고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이 혜택만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더 늙기 전에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이 없는지 고민하다가 주민들의 권유와 도움으로 마을 주민들의 손발이 되겠다는 신념으로 2011년부터 이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직장생활 말고는 마을 일을 해 본적이 별로 없는 초보 이장으로 행정과 마을의 가교 역할 그리고 주민 간 소통과 화합,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그래도 1978년도 새마을지도자를 맡아 일해오던 중 새마을 중앙연수원을 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희미한 기억 속에 새마을 정신을 더듬어 새겨가며 이미 내 한 몸 던져 봉사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상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서 신발 끈을 동여 메었다.

남새밭의 기적!

아파트를 낀 대부분의 마을의 애로사항은 주민 간 소통과 화합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아파트 주민들은 마을 일에 소극적이었다. 우리 마을도 일반주택과 아파트를 비롯한 연립주택이 절반으로 나뉘어져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마을과 주민이 상생하는 길은 주민 모두가 무슨 일이든 뜻을 모아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우리 마을 안에 농사를 짓지 않는 전답이 있어 여름철이면 잡초가 우거지고 모기를 비롯한 해충들이 서식하고 쓰레기 투기장으로 변해 불쾌감은 물론 마을 이미지가 날로 추락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내와 뜻이 있는 주민 몇 분의 협조를 얻어 풀을 메고 쓰레기를 치우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를 했다. 버려진 땅을 정리하고 보니 그냥 두면 이런 일이 또 생길 것 같았으며 이 좋은 전답을 그냥 놀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워서 고민 끝에 답주들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흙을 밟아보지 못하는 연립주민들의 텃밭을 만들어 필요한 주민에게 분양하여 관리 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한 두둑씩 이름표. 팻말을 붙여 분양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밭을 갈고 퇴비를 뿌리고 남새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방송을 했다. 반신반의 하던 주민들이 분양신청을 하기 시작했으며 특히 농지가 없는 아파트 주민들이 앞 다투어 신청을 했고 30세대 모두 분양하여 지금은 상추, 부추, 고추 등 채소를 재배하는 쏠쏠한 재미와 함께 이웃 간 소통하고 화합하는 것은 물론 아파트 연립 주민들이 마을 일에 솔선수범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2 새마을운동, 날개를 달다!

  남새밭을 통해 일반주택 주민과 아파트 주민들이 자주 만나고 이웃 간 정을 나누면서 하천 정화 활동, 마을안길 청소, 경로잔치, 체육대회 등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도 서로 힘을 모아 솔선수범 하는 모습에 이장으로서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남해군에서 2014년부터 제2 새마을 운동을 야심차게 추진하게 되었고, 우리 주민들은 이와 연계하여 사업을 추진하여 2014년과 2015년 제2 새마을운동 평가에서 2년 연속 우수상을 받아 그 보람이 두 배가 되었다. 
 그 시상금으로 남새밭 관리에 필요한 소형 농기계를 구입하여 주민누구나 사용하게 하였고 특히 고추 말리는 기계 등을 구입하여 무더운 여름철에 이장이 손수 고추를 말려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작과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절감하는 등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마을 재정에도 다소간에 보탬이 되고 있다. 그 수익금 중 1백만 원을 향토장학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우리 마을의 사례가 '봉전마을, 제2 새마을운동으로 날개 달아'라는 제목으로 남해신문 (2015.12.31)에 보도가 되기도 했다.
  
남을 위해 노년을 바친 사람!
  
우리 마을에는 자애원을 비롯한 어려운 이웃이 많이 살고 있다. 이장으로서 그런 분들이 소외되지 않고 주민과 동화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나 손발이 미치지 못한 곳이 더 많았다. 
반신불수가 된 아내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고 20년간 대소변을 수발하면서 남해 청마예술단 단원으로 장구 등 사물놀이에 능해 우리군은 물론 타 시도 경로당까지 방문하여 어르신들과 함께 신명나는 국악 한마당을 벌이기도 하고, 틈틈이 마을회관에 나와 어르신들을 위로하고 친구처럼 살고 있는 등 타의 귀감이 되는 주민이 있었는데 그를‘노인선생’이라 불렀다.
그의 봉사와 헌신적인 아름다운 선행이 이웃은 물론 사회에 기감이 되는 분으로 그냥 묻어두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많아 조금이나마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어버이 날 등 표창대상자로 발굴·추천하여 남해군수, 경상남도지사 상을 수상하게 하였고, 그 선행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KBS1 고향극장 제작팀’에 사연을 보냈는데 이 사연을 들은 제작팀이 한 걸음에 우리 마을로 달려와 “남해 청마예술단”을 소재로 촬영하여 방영되기도 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지역신문인 남해신문(2013.5.16)에도 “남을 위해 노년을 바친 이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어 군민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잠자고 있는 마을 인터넷을 깨우다!

우리군내 222개 마을이 있다. 남해군에서 KT와 연계해서 군내 마을회관에 초고속 인터넷을 설치해 주었고, 마을에서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 수수료는 남해군이 지원하고 있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2011년 이장이 되어 마을 일을 보는데 남해군에서 기증 받은 컴퓨터는 있지만 인터넷이 되지 않아 KT에 인터넷 연결 신청을 했다. KT 담당자는 뜻밖의 말을 했다. 우리 마을회관에 2001년부터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고 수수료는 남해군에서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 10년 동안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수수료만 물어 주고 있는 셈이었다. 비단 우리 마을 뿐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을 하면서 아까운 예산이 솔솔 새고 있었다. 당시 군내 이장들의 대부분이 고령이라 인터넷을 잘 모르고 사용하지 않는 마을이 많았다. 우리 마을처럼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수수료만 물어 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잠자고 있는 마을 인터넷 수수료 문제를 개선 해 달라는 내용을 ‘군정에 바란다’에 건의 하였다. 
남해군에서 이 문제를 직시하고 실태조사를 통해 마을 인터넷 활성화 방안 모색과 사용하지 않는 마을은 일시사용 중지 등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는 등 작은 의견을 소중이 여기는 남해군 행정에 고마움을 느꼈다. 지금은 남해군의 적극적인 정보화 교육을 통해 많은 이장님들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으나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남해군청 홈페이지에 이장사랑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를 십분 활용하지 못하는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상생이냐, 사생이냐?

남해농협 하나로 마트 운영 문제로 농협과 시장번영회 간에 소송이 제기 되는 등 지역 사회에 큰 이슈로 대두된 바 있다. 마약에 대법원 판결이 난다면 남해라는 좁은 지역에서 승소와 패소를 떠나 서로 깊은 상처를 주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 뻔하다.
조합원이자 주민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농협과 시장번영회가 상생 발전하는 방안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합의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이웃 간 웃는 얼굴로 살아갔으면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상생이냐. 사생이냐” 라는 제목으로 남해신문(2017.1.13)에 독자 기고를 했다. 지금은 서로 합의점을 찾고 상생발전을 도모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 미력하지만 힘을 보탠 것 같아 보람을 느꼈다.

참, 고민거리가 많은 이장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사라져 가는 농어촌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하며, 점차적으로 마을을 통·폐합하고 대다수 마을들이 마을운영비를 주민들이 부담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등 마을공동체인‘자립형 마을’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언을 (경남매일, 2016.3.23 / 남해신문 2016.3.11.)하여 보도되기도 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종이문서를 홈페이지와 e-mail, SNS를 통해‘종이 없는 문서’체계를 구축하여 이장 업무를 간편하게 해 달라는 건의와 정부지원 퇴비구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 업무를 처리하면서 느꼈던 생각을 “이장들의 일과와 행정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남해신문(2015.3.6)에 기고를 하였다. 
현재 남해읍에서는 김성근 부읍장이 전입해 오고부터‘남해읍 이장 사랑방’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이장과 직원이 함께 공유하면서 이곳을 통해서 공문도 올리고 토론도 하고 서로 소통하고 있어 조금 늦은 감이 있으나 환영하는 바이며 222개 마을 전체로 확산된다면 예산절감은 물론 이장들이 매일같이 읍. 면사무소에 가는 번거로움도 다소 줄여 줄 것이라 기대해 본다.
오늘도 신발 끈을 동여 메고 집을 나선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도 집을 나선다. 마을회관으로 가서 간단한 청소를 한 다음 주민들에게 안내방송을 한다. “에~ , 동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중략> 이상 마을회관에서 알려 드렸습니다.” 마을방송을 듣고 달려 온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행정사항을 알려 주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눈다. 오전에는 읍사무소 사랑방에서 동료 이장님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공문을 가지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문서 처리를 한 다음 오후에는 경로당과 어려운 이웃의 삶을 돌아보고 마을 구석구석을 살핀다. 
오늘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봉전마을 일지를 쓰고 있다. 이장을 맡은 후 부터 매일같이 크고 작은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마을. 경로당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빠지지 않고 하고 있으며 행정의 최 일선에 서서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장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좋다.
“오늘도 신발 끈을 동여 메고 이장의 하루일과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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