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야 산다
변해야 산다
  • 남해신문
  • 승인 2011.08.15 14: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원하는 근본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현재 상태에서 만족하여 안주하는 습성을 가진 부류였다면 동물과 전혀 차별되지 못하는 한 종류의 짐승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변화를 추구하는 열망은 문명의 발달을 이끌었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만들어 낸 원천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인간에게 변화를 추구하는 심성이 주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축복이다.

하지만 변화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상을 통해 반복적으로 학습된 익숙함이나 쾌락의 즐거움, 길들여진 권력의 달콤한 매력들 같은 것은 습관적 중독으로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는다. 이런 중독된 유혹들은 마음먹는다고 한 순간에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이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금연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흔히 사회의 지도층이란 사람들은 이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열정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그러나 막상 초심을 지키고 오롯이 진실과 정의의 편에서 항상 슬기롭게 처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수의 행복을 위하겠다는 생각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내 중심의 착각 속에서 독선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반복된 습관으로부터의 중독이 자신이 가진 잣대가 그릇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자각을 가지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건, 잘못을 하고 있으면서도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계속 한 방향으로만 밀어붙이다 보면 극명하게 흑과 백으로 양분되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엔 발전을 위한 타협과 양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독선만 있을 뿐이지 공존을 위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남해사회에서 우리가 갈등하는 것이 바로 흑과 백 사이에서 혼돈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 하에서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흑백논리만 있고 공통분모가 없는 상태에서는 몸이 무거워 달리기가 힘들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다양성과 개성이 공존하고, 흑과 백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빛깔의 창조를 이끌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변화만을 요구하기 보다는 내 스스로가 먼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남해사회에서 여러 가지 중대한 공적 사안을 처리하는 과정들이나 이를 다루는 측에서 만들어가는 여론의 방향성을 보면 개운치가 않다. 수차 기고를 통하여 변화를 기대하였지만 도무지 변화를 시도할 의지를 가지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위한 기본에 충실하기보다는 서로의 독선이 골 깊은 상태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새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이라면 미래예측 가능한 전문가들의 지식과 선행된 사례들을 통한 결과의 검증이 공개돼 이득과 손실의 비교 분석이 투명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미 발생했던 사건에 대한 문제라면 사실그대로를 주관적인 감정이입 없이 전달되게 하여 잘 된 것은 장려하고 잘못된 것은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건강하고 올바른 여론이 형성되지 않고 판단된 결정이라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갈등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건강한 여론을 만들어 내기위해선 맹목적으로 충성하고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구조로는 위험하다. 여론을 유도하는 자들은 스스로 가진 정보와 지식의 진실성 앞에 겸허해야 하고 지도층에 있는 자들은 여론이 쏟아내는 잘못을 지적하는 소리에 대하여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듣기에만 좋은 소리가 귀를 멀게 하고 보기에만 좋은 처신이 눈을 가린다는 것을 명심하여 옥석을 가려야하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다.

얼마나 첨예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우리에게 산적해 있는지는 누구나 잘 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해결책을 강구하기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변해야 산다. 모두가 변해야 산다. 변화되기 위한 사고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웨스트민스트대성당의 지하묘지에 있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비문에 새겨진 글귀를 보면서 우리가 변화를 위해 갖추어야 할 방향성을 고민해 주실 것을 기대한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 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 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