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판의 밀어내기와 버티기
씨름판의 밀어내기와 버티기
  • 남해신문
  • 승인 2011.06.06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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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씨름이 국민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룰이 문제였던 것이다. 당시엔 ‘밀어내기’란 기술이 있었는데 덩지가 크고 힘이 센 선수가 상대 선수를 씨름판에서 밀어 내 버리면 이기는 것이었다. 원래 우리나라의 민속씨름은 여러 가지 기술로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재미였다. 몸집이 큰 선수를 적은 선수가 멋진 기술로 모래판에 엎어 치면 관중들이 ‘와!’하고 환호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밀어내기 기술의 달인이 등장했다. 홍 아무개 선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홍 선수는 짚동만한 몸집에 힘도 좋았다. 그는 휘슬이 불리면 바로 샅바를 놓고 상대를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워낙 힘이 좋고 덩지가 커니 상대 선수는 속절없이 밀려 나갈 수밖에 없어서 각종 대회의 우승을 휩쓸었다. 이러다보니 보는 사람들의 재미가 떨어지고 자연스럽게 씨름장으로 가는 발길이 뜸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씨름협회는 룰을 바꾼 것이다. 밀어내기로 승부가 결정되지 않도록 말이다.

사실 밀어내기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힘도 좋아야 하지만 상대를 꼼짝 못하게 밀어붙이는 데는 균형 감각이 뛰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가장 대중적인 전통 스포츠인 일본 씨름의 ‘스모’에 있어서 기본적인 기술이 바로 밀어내기이다. 일본 관중들은 이 단순하게 보이는 밀어내기에 열광하지만, 아기자기한 여러 가지 커고 적은 씨름 기술을 즐기는 우리나라 관중들에게는 턱없이 재미없는 것이었다.
아무튼 심심하기만 한 밀어내기 승부가 없어 진 후 다시 기술 씨름이 나타났고 씨름의 중흥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밀어내기의 달인이었던 홍 모 선수는 룰이 바뀌면서 더 이상 승리할 수 없었고 쓸쓸이 씨름판을 떠나갔다. 홍 모 선수로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무슨 반칙을 한 것도 아니었고 이 선수만을 위해 ‘밀어내기’룰이 억지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다. 원래 있던 룰에 따라 합법적으로 경기에 나서 우승을 하였건만 관중들의 재미를 삭감했다는 이유로 속절없이 퇴출당한 결과가 된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씨름도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관중 없는 스포츠란 애당초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즈음 보면 ‘밀어내기’의 달인들이 참 많다.
밀어내기 판에서 이기는 것은 밀려 나가지 않으면 이기는 것이다. 즉 ‘버티기’를 잘하면 지지 않으니까 결국 이기는 것이다. 이미 씨름판에서는 일찌감치 퇴출되어 버린 ‘버티기’의 달인들이 각계각층에 특히 고위급에 갈수록 많다는 것이다. 각종 청문회를 보면 ‘버티기’의 달인들이 참 많이도 등장한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로 인사청문회에 섰던 어느 인사에 관한 인사청문회 경과 보고서를 여야가 채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쌀 직불 금 부당 수령 등으로 문제점이 노정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부서 장관도 아니고 농업관련 장관이 쌀 직불금을 부당히 받아 챙겼다는 사실에  농민단체들이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에 후보자가 단체에 직접 전화를 걸어 사퇴촉구성명 철회를 요청했단다. 참으로 생뚱맞다. 인사 청문회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실제로 국회차원에서 거부했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이다.  

또 있다. 학생들과 교수가 잇달아 자살한 카이스트 총장이 ‘학교 개혁 요구를 곧바로 수용하겠다.’한 당시의 약속을 뒤집을 모양이다. 학교 혁신비상위원회는 지난 9일,18일에 연이어 그동안 폐해가 많았던 ‘영어 강의 부분 감축’과 대학평의회 발족 등을 의결하고 요구하였으나 ‘버티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되는 혁신위의 실행 요구에 서 총장은 대외부총장을 통해 ‘혁신비상위의 결정을 즉시 실행하겠다는 약속은 혁신위의 결정을 가감 없이 이사회에 상정해 절차를 밟아 이행하겠다는 뜻’ 이라고 밝혔다. 역시 생뚱맞다.
 이사회는 주로 총장이 직간접적으로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 구성원들이 반발할 만하다. 또 부총장은 ‘혁신위의 의결안이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사안들임을 인정한다 ’하고 있기에 더 더욱 그러하다. 이사회를 거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이사회로 올린 것은 ‘버티기’작전에 필연적인 ‘시간 끌기’전술일 것이란 것이라고 능히 짐작이 되지 않는가?

씨름의 ‘밀어 내기와 버티기’는 관중들의 외면으로 퇴출되고 말았다. 각계각층의 소위 지도층 자리에 있는 자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들이대는 몰염치한 ‘버티기’에 국민들은 이미 외면하다 못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 보고를 내 놓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한 감사원 감사위원이란 자는 엉뚱하게도 저축은행 비위 사실로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각종 비위를 감사할 감사원의 감사위원이 비위사실로 구속된 것은 역사상 초유의 사태이다.   이것은 ‘버티기’의 한계를 노정한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국민들은 단순한 스포츠를 즐기는 관중이 아니라 이 땅의 주인이다. 주인의 분노를 사고 외면당한 ‘머슴’들의 종말이 어떠할 것인지는 너무나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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