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과학의 달’이고 21일은 ‘44회 과학의 날’이었다.
이런 시기를 맞아 얼마 전 온 나라를 들끓게 한 카이스트(KAIST 한국과학기술원)사태를 머리에 떠 올리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소위 대한민국 과학영재의 요람이라는 대학, 그것도 대학 개혁의 선두주자 격으로 자타가 공인한 카이스트에서 연거푸 자살 사건이 터지면서 생긴 파문이다. 
 이런 불행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맞이하는 과학의 날을 막상 카이스트에서는 어떻게 치르고 있을까 궁금해 하는 것은 필자만이 아닌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을 이리저리 검색해 보니 모 일간지 기자가 카이스트를 탐방한 내용이 떠 있었다. 아래 내용은 ‘문화일보’ 기사 내용의 일부이다.   
< “아! 오늘이 과학의 날인가요? 몰랐네요. 그 얘기(과학의 날)를 들으니 더 착잡하네요.”
21일 제44회 과학의 날을 맞은 KAIST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올해 들어 4명의 학생과 1명의 ‘최우수 교수’가 잇달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개교 40년 만에 초유의 위기를 겪은 후유증 탓인지 생일을 맞은 ‘한국 과학교육의 요람’은 조용하다 못해 침울하기까지 했다. 홍보팀 직원들은 이날이 과학의 날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7일 오후 1시 20분경 인천시 남동구에서 카이스트 휴학생인 박아무개(19,수리과학과 2학년)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카이스트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올해 들어서만 벌써 4번째이다. 박 군은 어릴 적 자기가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가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도를 접하고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가슴이 먹먹하였다. 일면식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의 외로움과 고통이 생생하게 내 가슴을 강하게 울렸던 것이다. 그는 꿈이 가득하고 주위의 사랑이 가득 넘쳤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생의 마지막 장소로 이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마지막 그 순간 얼마나 외로웠으며 얼마나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을까?
 
 무엇이 이 아이를 그런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갔단 말인가?
청년 19세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시기인가? 일생 중 가장 싱싱하고 풋풋하여 꿈으로 가득 찬 시기. 그 어떤 극찬의 수식어로도 부족할 빛나는 청춘의 계절이 아니던가?
 옥상에서 가슴을 활짝 펴고 ‘청춘은 아름다워라!’를 목이 터져라 외쳐도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시기, 한국 과학영재들만의 입학이 허용된다는 대학에 다니는 아이가 무엇에 한이 맺혀 허공으로 몸을 날린다 말인가!

 무엇이 카이스트 학생들로 하여금 죽음으로 몰아넣는가?
지금까지 나타난 이유는 대학 개혁(?) 때문이란다. 그 개혁의 내용은 ‘100% 영어 수업, 징벌적 등록금 제도’로 요약된다. 한 번 따져보자. 이것이 개혁인지, 개악인지를.

 2008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일본의 마스카와 도시히데는 영어수업은 받아 본 적이 없다. 외국유학은 물론이고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는 학자이다. 노벨상 수상 소감도 자국어인 일본어로 했다. 요컨대 영어 수업과 노벨 과학상과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100% 영어 수업을 한다면 정상적인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 중에 과연 몇 사람이나 수업을 따라 갈 것인가? 그리고 멀쩡한 우리말 버리고 영어로 수업을 해야만 교육개혁이고 선진화인가? 로봇 영재로 각광 받던 전문계(실업계)고 출신 학생의 자살에 ‘100% 영어 수업’이 어찌 연관이 없다고 할 것인가?

 ‘징벌적 등록금 제도’란 것은 또 무엇인가?
공부 잘해서 장학금 받았다는 말은 들었어도, 공부 못한 징벌로 돈을 학교에 냈다는 해괴한 얘기는 처음 듣겠다. 원래 카이스트는 등록금이 전액 무료였는데 서남표 현 총장이 부임하면서 개혁이란 미명하에 일정한 학점을 못 받는 학생은 등록금을 성적에 따라 차등하여 내라고 바뀐 제도이다. 카이스트가 최근 내놓은 ‘차등 수업료 등 등록금 부과’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학부생 12.9%가 1인당 평균 254만여 원을 냈다. 수업료 납부 학생이 8명당 1명꼴이다. 자연히 학생들이 겪는 압박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관련한 서남표 총장의 어록을 한 번 보자.
서 총장이 2007년 서울대에서 강연을 한 내용을 문답으로 묶어 낸 ‘한국대학의 개혁을 말한다.’ 란 책자가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학생들 압박이 많습니다. 학점을 B이하로 받으면 수업료를 내야하니 부모님한데 전혀 그런 소리 안하다가 돈 달라고 해야 하니까 그게 커다란 압박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년 보장이 안 된 우리 교수들 또한 압박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제일 걱정하는 것이 자살입니다.”
 이 말에 의하면 본인도 사태의 본질을 알고 있는 듯하다. 징벌적 등록금 제도가 학생들에 가할 압박 정도를 잘 알고 있고 그 결과가 자살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말을 한다.
“그런 것(차등 수업료)을 안 받은 게 처음부터 문제였다. 왜 국민 세금으로 공부 안 하는 학생을 먹여 살려야 하나?… 학생들이 압력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압력을 받으라는 거다. 세상에 압력 안 받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나?” (<조선일보> 2011년 1월29일자 인터뷰)
“ 그거(징벌적 등록금 제도)를 폐지한다고 해결(학생 자살이)되겠나? 어느 대학에나(학생 자살은) 있다. 그래서 병원(학교 안에)을 만들고 신경정신과 의사도 모셨다.”  “미국의 명문대는 자살률이 더 높다.”(<서울신문> 4월 11자)

 실제 카이스트보다 자살률이 높은 명문대가 미국에는 없기도 하지만 하는 말이 더욱 이상하다. 명문대가 되기 위해서는 몇 몇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소위 개혁이라고 하는 ‘100% 영어수업, 징벌적 등록금’ 문제가 학생들의 자살과 인과관계가 있음이 다 드러났으면, 주위에서 말려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데 사퇴하지 않겠단다. 이런 버티기가 선진적인 개혁정신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카이스트 개혁의 첫걸음은 총장의 퇴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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