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광고 유감
TV 광고 유감
  • 남해신문
  • 승인 2010.10.0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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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오래간만에 벗이 동부인하여 찾아와 원행을 같이 가자고 한다.
놀이삼아 군산 갈 일이 있다며 동행을 청한 것이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낼 때라 우리 부부도 군말 없이 따라 나섰다. ‘친구 따라 강남가기’인 셈이다.
군산까지 간 김에 전주까지 가자고 뜻이 모여서 선걸음에 전주까지 내처 달렸다.
풍류가 한 맛 더 있는 곳이라 알려 져 있는 곳이라 숙식을 전주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가는 길에 펼쳐진 넓은 김제 평야에 나락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야말로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속에 백로 떼는 잠자리를 찾고 있는지 낮게 비상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마주친 벼가 무르익은 넓은 들은 보기만으로도 풍요로워서 그저 마음이 넉넉해졌다. 

아무 준비 없이 나선 길이라 숙소 예약이 되어 있을 리가 없었지만 아무도 부담스럽거나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벼운 여행이란 원래 계획 없이 나섰다가 발길 닿는 데로 잠자리를 찾으면 되는 것이니까. 언제 들었던 적이 있는 ‘한옥 마을’을 찾아 갔다. 그 흔한 내비게이션 없이 길을 찾는데도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나지 않았다. 사람이란 어디에도 있고 물어물어 가다보면 다 찾아지게 되는 것이다.
한옥 마을에 차를 세우고 근처 한옥 민박집 탐색에 나섰다. 잠시 둘러보니 고색창연한 나지막한 담 위로 기와가 높이 솟아 있는 집을 보였다. 소슬 대문 옆 안내판에 ‘양서재(養書齋)’라 적혀 있다. 뜻을 풀이하자면 ‘좋은 책을 갖추어 두고 책을 읽거나 글을 써는 곳’이 되겠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주인을 찾으니 40대 중년 남자가 나와 안내를 했다.
 
일행이 두 부부 네 명 이라하니 큰 방이 하나 있다면서 문을 열어 보였다. 현대식으로 보자면 큰 방은 아닌데 길쭉한 방을 가로 질러 미닫이문이 있다. 이 문을 사이에 두고 열면 방이 하나이고 닫으면 두 개가 되는 구조이다. 주인이 일삼아 소개를 한다.
“이 방이 원래 서재였는데 가람 선생이 집필을 하셨던 곳입니다.”
찬찬히 방을 살펴보니 가람 이병기 선생이 집필하는 사진이 걸려 있고, 신영복 석좌교수와 소설가 김훈이 들려간 흔적을 글로 남겨 놓았다. 우연히 계획 없이 찾았지만 하루 밤만 쉬어 가기에 아까운 곳을 찾은 셈이었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가 한 마디 한다.
“어, 여기에 TV 없어요?”
“네, 우리 집은 TV없이 살아 온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는걸요.”
“예? 그런데 큰일이네. 내일 아침에 우리나라 아이들 축구 결승인데. 응원해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한국 축구 사를 새로 쓴다는 게임이 내일이었다. FIFA가 주관하는 대회에 역사상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는 17세 이하 여자 축구 게임이 내일이었던 것이다. 축구를 즐기는 친구로서는 놓치기 아쉬운 시합이었겠지만 난 오히려 TV 공해에서 벗어난 고택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는 것에 더 흥이 나 있었다. TV가 없는 삶이 얼마나 고요한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골목을 지나가는 행인들의 소리가 담 넘어 바로 넘어 들어오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TV가 없으니 오히려 TV공해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TV에서 광고가 던지는 피해는 엄청나다. 요즈음에 ‘인생의 깔끔한 마무리를 위하여’ 하는 보험회사 광고가 있다. 이 광고가 나올 때 곁에 어머니가 계시면 난 금방 딴 채널로 돌려 버리곤 한다. 죽음의 그림자란 젊은이보다 노인들에게 짙게 깔리고 보다 예민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노인들에게는 결정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공해이다. 이 광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론 노인들인데 자기들이야 출연료를 받겠지만 이 광고를 보는 노인들에게는 협박이고 공갈인 것이다.

또 있다. 어린 아이가 등장하는 광고이다. 냉장고를 팔아먹자는 광고인데 이 아이가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집은?’ 얼음이 와르륵 떨어지는 남의 집 냉장고 앞에서 아이가 자기 집 것은 얼음이 나오지 않는다는 불평을 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따위 광고를 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까? 그 나이쯤 되는 아이들은 다 귀여운데 나에겐 그 광고에 나오는 아이가 참 밉상으로 보였다. 하긴 그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냐만.

결국 이런 저질의 협박성, 억지 광고에 대처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그 상품을 절대로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을 연상시킨 그 보험에 절대 가입하지 않아야하고, 얼음이 쏟아져 내리는 그 냉장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야 하는 것이다. TV 없이 하루 밤 보내면서 엉뚱하게도 TV생각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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