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노도(櫓島)를 바라보며(1)
달밤에 노도(櫓島)를 바라보며(1)
  • 관리자
  • 승인 2003.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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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을 생각하며

나를 이끄는 것은 언제나 길이다. 평소 홍현마을이나 월포언덕에서 바라보던 낯익은 길을 버리고 오늘은 노도를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보기 위해 앵강만을 끼고 한바퀴 크게 돌아 벽련(碧蓮)마을로 갔다. 이곳 사람들은 푸른 연꽃처럼 생긴 벽련을 ‘벽작개’라 부른다고 했다. 벽작개를 지나 두모에서 소량, 소량에서 다시 대량으로 오르는 길은 구도가 썩 마음에 드는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유연하게 구불거리는 곡선의 길을 따라 능선까지 갔다가 되돌아와 다시 벽련마을 언덕에 차를 세우고 보니 그야말로 노도는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특히 오늘처럼 달밤에 보는 노도는 서럽게 아름답다. 저곳에서 김만중은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집필했다고 하지 않던가.
예부터 많은 노를 생산했다고 하여 ‘노도’라 불린다지만 섬 모양이 삿갓을 닮았다 하여 ‘삿갓섬’이라고도 한다는 이 섬은 멀리서 보면 금산, 호구산, 설흘산 아래 포근히 안겨 있는 어린 자식 같다. 섬에 갇힌 김만중이 어린 자식이라면 본섬인 남해는 그의 어머니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산뿐 아니라 남해의 마을들은 아주 가깝지만 눈만 뜨면 보는 망망대해 떠있는 조그만 섬에서 말년에 그의 사상과 문학적 재량을 발휘하여 집필에 매달리지 않았다면 무엇으로 한 많은 생을 위로 받을 수 있었을까?
밝은 대낮에 벽련마을에 도착했지만 시월의 해는 짧아 양쪽으로 번갈아 노도를 끼고 걷는 동안 어둠이 내렸다. 달은 16호의 민가가 있는 노도 마을 뒤쪽에서부터 성큼 기어올라 앵강만에 길고 긴 그림자로 다리를 놓으며 솟아오르고 있다. 김만중은 달밤이면 마음만이라도 저 바다 위로 만월이 놓은 다리를 건너서 밤마다 꿈에도 그리운 어머니를 찾아 육지로 가지 않았을까? 곰곰 생각에 젖다가 다시 나는 노도를 바라본다. 노도는 건너 발 아래에서 파도소리만 철썩거릴 뿐 말이 없고 나는 저 큰 바다를 모두 품에 안을 수 있을 듯한 백련마을이 문득 내 생에 갑자기 찾아온 유배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두절미하고 나는 김만중이 노도에서 쓴 시편들을 암송한다. 왠지 모를 슬픔이 치밀어 올라 견딜 수 없다.

김만중을 생각하며
서포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소설가이다. 
그의 문학은 그 시대의 문인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다. 말년에 유배지 노도에서 불운하게 일생을 마치지만 생애의 전반부와 중반부는 상당한 권력의 비호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본디 총명한 재능을 타고났기도 했지만 가문의 훌륭한 전통으로 인해 그의 학문도 상당한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가 종종 주희(朱熹)의 논리를 비판했다거나 불교적 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한 점은 결코 탄탄한 배경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사상이나 진보성은 그의 뛰어난 문학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그가 주장한 ‘국문가사예찬론’은 주목받아 마땅하다. 그는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말을 통해 시문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김만중이<구운몽>·<사씨남정기>와 같은 국문소설을 창작한 것으로 볼 때, 조선 후기 실학파 문학의 중간에서 훌륭한 소임을 수행한 것으로 믿어진다. 그는 시가에 뿐 아니라 소설에 대해서도 상당한 이론을 겸비한 재원이 분명하다. 그러한 김만중도 결국 아래의 사실로 미루어볼 때 그의 말년이 얼마나 불운하고 참담했는가를 미루어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숙종 15년 김만중은 선천 귀양터에서 풀려난지 1년만에 남해섬으로 위리안치된다. 같은 달 사위 이이명이 경북 영해로 귀양을 떠났다. 남해에 도착한 김만중은 숙부 김익훈이 매를 맞아 죽고 조카들도 유배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장조카는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작은 조카 김진규는 거제도로 유배되었다. 곧 이어서 셋째 조카 김진서는 진도로 유배되었다.

“푸르고 아득하게/세 섬은 구름 끝에 있고/두류산, 봉래산, 한라산이/가까이 가까이 잇닿아 있구나./삼촌과 조카, 아우와 형이/두루 나뉘어 차지하고 있으니/신선 같다 하겠구나”

“오늘 아침 어머니를 그립다는 말을 쓰자 하니/글자도 되기 전에 이미 눈물이 앞을 가리네/몇 번이나 붓을 적셨다가 다시 던져 버렸는고/문집에서 남해시는 마땅히 빼어 버려야 하리”
“저 용문사 위 한 뿌리에 자라난 나뭇가지가/병들어 사경에 있듯이/인간의 풍산도 서로 바꾸지 못하는 것,/도끼로 나무를 찍듯/죽음만이 머뭇거리는구나/아! 헤어진 제형들이 무고들 하던 그 때/오색비단 옷 입고 즐거이 놀던 그 때 그 얼굴들이 그립구나/홀로 외로이 계시는 팔십노모의 사무친 한은 언제나 풀리려나”
“만목이 앞다투어 얼어드는데/밤 새 무심한 해풍만 뇌성처럼 우는구나/등잔 앞에 홀로 앉아 주역을 읽나니/한번 흘러간 세월은 돌아올 길 없구나”
  “북풍이 매섭게 죽림으로 불어 드는데/아, 생가지 인 것 같구나/남쪽으로 유배되었으니 그 마음 얼마나 아팠겠느냐?/너마저 멀리 남쪽 바다로 귀양갈 줄 누가 알았으랴?/풍파가 거치른 탓일까, 반년을 두고 서찰이 끊겼네/지금 내 병환은 낙조처럼 짙어만 가는데/내 죽어 강변에 버려질 백골을 그 누가 거두어 줄까?”
-노도에서 쓰여진 자탄과 실의와 병고를 노래한 김만중의 시편들-
김 인 자(시인·여행가)    

      
kim8646@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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