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이어>

1학년의 특성은 참 다양하다. 그중에 한 가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점수를 따야 하는 일을 할 때는, 비록 세상이 흔들린다 할지라도 꿈적하지 않고, 또 남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받아쓰기 할 때, "모르는 글자가 있는 문제는 표시를 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거라, 다 끝나면 선생님이 다시 불러줄게."라고 말하여도 절대로 말을 듣지 않고, 모르는 번호에 매달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머리를 앞뒤로 돌리면서 남의 것을 어떻게 좀 볼 수 있을까 하고 그 문제에만 심취해 있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 한 문제만 틀리지만 너 하는 대로 하면 모두 다 틀릴 수 있다."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결국은 그 옆으로 가서 연필 쥔 손을 다음 번호에 찍어주어야 한다. 나는 이런 상황을 보고 아이들이 나를 빨리 믿고 따르게 하려면 사람 다스리는 법을 더 공부해야겠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우리 반 보석 7호는 칭찬 스티커를 우리 반에서 제일 많이 받은 아이이다. 입학식 날 이 보석을 보니 볼이 복숭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진한 눈썹 아래 반짝거리는 눈이 총명해 보이기도 했다. 이 보석은 바른 생활이 몸에 배어 있고 학습활동이 늘 정확하고 발표력이 아주 좋다. 모든 활동이 수준급이면서 넘치지도 그렇다고 어느 한구석 부족한 것 또한 없는 아이다. 친구들의 학습 활동을 잘 돕고 선생님과 함께 있는 게 좋아서 학원을 가지 않고 운동회 때 할 무용 연습을 내내 하다가 부모님의 부름을 받고서야 간 아이이다. 줄넘기 대회가 있던 날도 어찌나 잘하던지 놀라웠다. 무슨 일이든지 말하기가 무섭게 똑 소리가 나게 한다. 이렇게 모든 면이 우수한 아이이지만 결코 친구들에게 군림하지 않는 사려가 깊은 보석이다. 간혹 남자 아이들이 슬쩍슬쩍 건드리면 울면서 내게 와서 괴로움을 호소한다. 그러면 내가 이 보석의 귀에다 이렇게 말해준다. “남자 친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들을 괴롭히기도 한단다.”라고 하면 금방 눈물이 미소로 변해버린다. 착한 어린이의 표상이라 친구들이 모두 좋아한다. 언제나 수줍은 듯한 복숭앗빛 미소가 떠나지 않고, 선생님을 무조건 좋아하며, 친구가 어려울 때 아무도 몰래 엄마랑 같이 도와주며, 하나를 말하면 둘을 아는 센스 넘치는 보석이다. 이 세상에 이런 아이가 많아서 희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빛이 날 겸손의 보석이다.
우리 반 보석 8호는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 아이다. 이 보석은 나를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서 다녀오게 하는 보석이다. 입학 즈음에는 교실인지 복도인지 운동장인지 구별이 없이 뛰어다니기만 하였다. 아마 넓은 공간에 오니 마음이 탁 트인 모양이다. 함께 어울리는 개구쟁이들과 벌을 자주 서기도 했다. 그런데 한 보름 지나니까 태도가 확 달라져 학구적인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아주 논리적으로 하는 것이다. 호기심이 너무 많아 수업 시간에 나와 이 보석은 아주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그로 말미암아 다른 보석들도 의견을 수두룩 내놓기도 한다. 가르기와 모으기를 배울 때 내가 칠판에 나눌 分(분)을 한자로 썼다. 그랬더니 이 보석이 선생님, 그 글자가 “사람 인에 칼도 이죠?”한다. 그래서 이 보석이 한자를 잘 아는구나. 생각하고 우리 한글 사랑과 한자와의 관계를 설명해 주었다. 그런데 한자어만 나오면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난다. 교과서의 삽화에 튜-브를 들고 바닷가에 서 있는 어린이가 있다. 나는 준비 체조를 생각하고 있는데, 이보석이 먼저 "선생님 왜 튜-브는 물에 뜨나요?" 한다. 그래서 부력에 대해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설명을 하려는데, 또 하는 말 “선생님, 뜰 부, 힘 력, 이예요."한다. 그리고는 상한 음식에 대해 공부를 하려는데 갑자기 김치에 대해 질문을 한다. 그래서 내가 어려운 말로 ‘발효’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또 “선생님” 한다. 그래서 내가 하하 웃으면서 “또 뭐가 궁금하니?”하니까 “선생님 송자가 보낼 송이예요?”해서 정말 웃음이 크게 나왔다. 선생님은 소나무 송자란다 말하면서 얼마나 기특한지 나의 가슴이 뿌듯함으로 가득차 버렸다. 개구쟁이의 학구적인 면모가 계속 떠올라 자꾸 웃고 있는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도, 이 보석은 아주 심각하게 앉아 또 무슨 한자어가 떠올랐는지 뇌를 회전시키고 있는 듯했다. 아주 예뻐서 칭찬을 아니 할 수가 없는 아이다. 아마도 이 보석의 뇌 속에는 한자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한자어를 말하면 벌써 “선생님” 한다. 그때는 줄줄 뜻풀이가 따라 나온다. 그 때문에 다른 친구들도 많이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의 가르침보다 또래에게서 배우는 게 제일 인지가 빠르기 때문이다. 일기의 제목을 주고 아는 한자가 있으면 섞어서 써도 좋다고 했더니 우리 반 몇몇 보석들은 기가 찰 정도로 잘 섞어 써온다. 이보석이 가장 대표적이다. 정말 재미있고 자랑스럽다. 규칙을 잘 지키겠다고 나와 늘 손가락을 걸어 다짐하지만, 장난이 치고 싶어 그 약속은 늘 물아래로 가버린다. 그렇지만, 수업시간에는 학습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하는 공부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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