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씨를 만난 것은 2년 전 월포를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시골 사람 같지 않게 하얀 피부와 깡마른 체격을 가진 경상도 남자치고는 매우 빠른 어투를 구사하는 친구였는데 무엇보다 자신의 일에 정신과 행동이 일치하는 매우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 친구가 관리하는 숙소를 잠시 빌려 머무는 떠돌이 여행객에 불과했던 나에게 그가 새롭게 다가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벽 일출 시간에 숙소를 나와 금산의 쌍홍문을 거의 오를 때쯤 그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용건은 간단 명료했다. 아무개인데 바다낚시를 갈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선뜻 그렇게 하겠노라 대답부터 했다. 두 시간 후 형님과 함께 포구에 나타난 그는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어부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통통거리며 물살을 헤치고 포구를 출발한 배는 앵강만 가운데 노도가 빤히 보이는 원천과 벽련 근처인 형제도 사이에 닻을 내렸다.
 

줄줄이 달려 올라오는 새끼 복어들. 뒤에 노도가 보인다.

 
 

내가 타고 나갔던 배와 함께 낚시를 한 친구들

 

앵강만 한 가운데서 낚시를

그는 낚시에 별 취미가 없어서 가끔은 혼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갑판 위에서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한다고 했는데 동행한 그의 형님은 달랐다. 나는 낚시전문가인 그의 형님을 고수라 불렀다. 고수는 내게 작은 릴 낚싯대 하나를 주었다. ‘그냥 있으면 심심하니까 가는 세월이라도 낚아보라고.’ 어릴 적 바닷가에서 자랐지만 한번도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해 본 적 없던 내가 출렁거리는 배에 몸을 맡기고 바다 가운데서 낚시를 드리우는 일은 특별한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지레 걱정했던 멀미도 없고 라면으로 대신한 배 위에서의 식사는 성찬이었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4개의 낚시에 4마리의 새끼복어가 올라오는 기록을 남겼고 귀하다는 돌돔을 3마리나 낚으며 강태공들이 이야기하는 손맛을 느껴보기도 했다. 잡히는 고기를 보고 연신 웃기만 하는 고수에게 내가 말했다. ‘잡는다는 생각이 없어서 고기들이 스스로 잡혀준 것이라고’
앵강만 한가운데서 보는 남해는 새롭다. 가운데는 송등산(617m), 호구산(550m), 납산(627m)이 버티고 있고 왼쪽으로는 응봉산(412m)과 봉수대가 있는 설흘산(481m), 오른쪽으로는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금산(681m)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그 날 저녁, 소주병을 앞에 놓고 비로소 숨겨놓았던 드라마 같은 생을 펼쳐 보이던 김씨에게 나는 누이 같은 인생의 선배로써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래 그의 가슴 안에 뿌리를 내린 그늘들이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나는 단지 관객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던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앵강만에서 돌돔을 잡아 올리는 필자

 

세상에 따뜻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나는, 그가 준비해온 생선회와 바로 그 날 수확해 찧었다는 눈부시게 흰 첫 햅쌀밥을 대접받으며 새삼 삶은 무엇이며 어디로 흘러가는 것이고 그곳에서 타인의 삶을 구경하고 있는 나는 또 무엇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겉보기에는 멋없이 투박하고 마냥 무뚝뚝해 보이던 그가 가족이야기를 할 땐 드러내지 않은 그의 내면이 슬프도록 따뜻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의 가슴에는 녹지 않은 소금덩어리가 산을 이루고 있으리라. 생각해보니 그는 뉴질랜드로 이민 가서 행복한 농부로 살고 있는 나의 수의사 친구를 닮아있었다. 그래서 연민도 깊었을까?
그 밤 나는 휘영청 뜬 보름달을 보며 늦도록 파도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세상에 따뜻하지 않은 존재란 없다. 다만 우리는 서로의 겉모습만으로 오독(誤讀)하고 있을 뿐…,

 

 

멀리 소치섬이 깨알처럼 떠있다.

 

동력선이 바다에 길을 내며 달린다/바다의 길은 배가 달리는 속도에 비례하지만/돌아보면 뒤따라오던 길은 이내 사라지고 없다/앞만 보고 달렸으므로 지워졌을 뿐인,/누구에게나 저만한 길은 있었다.

그가 세월 한번 낚아보라고 준 릴낚시에는/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복어들만 따라 올라왔다/얕은 바다가 있다면 깊은 바다도 있을 것이다/산란을 끝낸 어미는 먼바다로 떠나고/아직은 아니다 꿈도 꾸지 마라/아무나 먹지 말고 아무나 따라나서지 마라/지느러미에 날세우며 그토록 일렀거늘/어미를 따라가지 못한 어린 복어들은/갑판 위에 무엇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올라와선 휙휙 휘파람소리를 내며/까칠한 배로 풍선을 불다가 곧 시들해져 갔다/그 봐라! 먼바다에선 어미가 가슴을 치고 있으리라/큰 고기를 잡는데 방해가 될 뿐이라며 그가/어린 복어들을 바다로 되돌려줄 수 없는 사정을 말했을 때/나도 어미다 보니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했다.

갑판 위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안간힘을 쓰던/어린 복어에게 연민을 느꼈던 나였지만/애초 잡겠다는 욕심 없는 낚시에 걸려준 그들이 있어서인지/섬 한 바퀴를 돌아 포구로 되돌아오는 길은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올 때는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노도의 뒷모습과/바다에 금방 묻히고 마는 뒤의 길만을 보았다.


          詩 <바다의 길> 全文

/글·사진 김 인 자(시인·여행가)
kim8646@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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