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경남면향우회장 송범두
날마다 뜨고 지는 해는 같건만 한해가 갈아드는 때에는 덧없이 수많은 생각이 점철되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추억이 쌓이고 꿈을 키운 고향은 애절한 향수로 맴돕니다.

그립고 존경하는 님들께 그리고 향수를 먹으며 사는 향우님들께 새해 인사를 드리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바다 건너 오동도 옆으로 하얀연기 뿜으며 서울로 가는 열차에 동심을 실어 보내고, 천황산 아래 송씨가 집성을 이룬 180여호는 사이좋게 500여년의 마을 역사를 지키고 바닷가 고목나무 숲은 향기로 그 역사를 증명하는 외부와 30여분 이상의 거리의 단절을 갖은 교통 오지, 시운시변에는 둔하여도 인심은 그저 그만인 남면 구미동, 수많은 추억 속에서도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때 몹시도 춥던 날 첫 닭이 울 때 책보에 붓과 벼루를 싸들고 차부까지 구신길을 살을 뜯기는 듯한 추위도 잊고 30여분을 걸어 첫 차로 대회장에 도착하여 나눠주는 도장 찍힌 종이에 붓을 들어 추위와 허기로 만들어지는 지렁이 글 꽃에 그만 주루룩 흘러내린 아픈 눈물은 지금도 잊지를 못합니다.

1970년대 초반 우리도 이제 잘 살수 있다는 새마을 운동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새정부가 들어선 때 저는 마을 어르신들과 상의하여 박태황 이장님을 모시고 무작정 상경 새벽 6시경 이화동 청남 신동관(당시) 국회의원님께 선창이 필요함을 말씀드렸더니 금년에는 추경도 끝났으니 내년에 꼭 하자고 하심에 저는 위원님의 사비로 라도 단 1m 만이라도 좋으니 시작하게 하여 주시기를 간청하여 어려운 여건에서도 예산을 지원받아 60m의 첫 사업을 시작하여 마을의 모든 사람이 총동원되어 모든 돌담장을 헐어 머리에 이고 바지게 날라 숙원이 이뤄지고 연차공사로 공신널(지금 골프장 클럽하우스 앞 마닷가)에 닿던 경전호가 새선창에 닿고 서면으로 신작로가 만들어져서 지금은 마늘밭에 스프링 쿨러가 돌아가고 진질밭에서 건막 줍고 낙지 잡던 갯벌은 아쉽지만 골프장으로 바뀐 지금의 고향 그곳에서 선창 1m만이라도의 절규에서 60m를 시작으로 교통오지를 벗어나고 시작이 반이다, 하면 된다는 실질적 철학이 오늘 내가 살아가는 큰 길잡이가 되었음에 늘 감사드립니다.

이제 새로운 변화가 예상되는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남해인의 모든 분들의 뜻하심이 꼭 성취되시고 아울러 보다 큰 덕 베푸시기를 원하여 국회의원으로, 군수로, 그리고 서울시의 교육감으로 도전하시는 모든 분들의 뜻이 꼭 이뤄지기를 바라면서 남해님들의 유산인 서로 챙기는 인정머리로, 죽으라하고 성실히 일하며, 모래밭에 혀를 박고 죽어도 바르게 살라 하심을 잊지 않고 각수 직분하여 모든 분야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어디 사람들보다 일취월장 남해인의 기개를 드높이는데 나의 작은 지혜와 덕을 쏟아 보다 큰 덕으로 융합시켜 신명나는 남해역사가 계속 되기를 바라면서 모든 남해의 분들께 늘 건강과 만사여의 하시옵기 를 마음 깊이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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