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 영 수 (이동면 남음 출신) 
나는 매일아침 5시면 일어나 운동장에 나가 내가 하는 태극권(중국무술)을 연습을 하고 했는데 북측 사람들은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감시 하는것 같았다.

전부 잠 자는 줄 알았는데 운동하는 모습을 다 보았다며 자기네는 태권도같이 빠른 운동을 한다고 말하기에 빠르고 강한 중국 정통권을 한수 보여 주었더니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이것도 약간의 효과는 있었던지 나중에 매점에서 물건을 사는데 아첨하듯이 하며 할인도 스스로 해주는 것이었다.

11월 2일날은 아침에 하역작업 하는 장면을 촬영하려 우리배로 갔더니 2, 3일 못 보았던 선원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데 하역작업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작업중인 장면을 몇 컷트 찍고 남포갑문을 관광차 갔다. 승용차로 약30분정도 가는데 길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노숙자들과 같은 모습이었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유일한 교통수단은 자전거 인 것 같았다.

사진을 찍을 수만 있으면 실생활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데 이동 중에 찰영은 일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눈으로만 찍을 수 밖에 없었다.

갑문 기념탑이 있는 곳에서 비디오를 보고 이쁜 안내원의 이야기를 들었다.

1981년 5월부터 86년 6월까지 5년간 수많은 군대와 노동자가 동원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장비나 좋지 그 사람들은 정말 어려운 공사를 한것 같았다. 이 이야기를 안내원에게 했더니 “왜 미제 물품으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우리가 사용하는 장비는 전부 미제인줄 알고 있는걸 보니 정말 우물안 개구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내려와 바닷가 양지녁에 소위 그들이 말하는 “불타는 조개”를 먹으러 가자는 제안에 전날 갔던 사람들도 하도 좋다고 말하기에 그곳으로 갔다.

조개를 쇠 철망에 하나씩 꽂아서 익어도 벌어지지 않게 휘발유를 위에다 부어 구워서 술안주로 해서 먹는 요리법으로 소위 “불타는 조개”라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흐린 날씨에 평양에 가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뒤 평양으로 가는 길에 남포시가를 가로 지르는데 우리 노숙자들 모여 있는 모습과 흡사하고 조금 가다보니 1998년에 설립했다는 우리의 평화자동차공장이 있었고 얼마 전 노무현대통령이 방문했던 곳이라 외부로 보니 깨끗해 보였다.

평양까지 가는 10차선 고속도로 주변에는 걸어가는 사람들과 몇몇 사람은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었고 자동차는 우리가 탄 차 두 대 이외에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 나무 한그루 없는 들판에는 밭을 매고 있는 아낙들 몇몇이 보였고 넓은 고속도로에는 중앙 분리대도 없고 노란선 하나가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약간의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만경대에 있는 김일성 생가를 보게 되었는데 옛날 조그마한 우리 시골집을 연상하는데 관광객이 많이 오는데 옆에 행열을 지어 가는데 시골에서 왔는지 며칠씩 굶은 사람 같은 모습에 우리가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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