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충 양
한국자치경영평가원 理事
설천 출신, 수필가
나는 고향 떠난 지 40년,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

나에게는 고향 남해와 관련한 모임 몇 개가 있다. 면(面)향우회, 군(郡)향우회, 유자회, 남공회가 그것이다.

향우회에 나가는 이유는, 직장이 같아서가 아니다.

나이가 같아서도 아니다. 더더구나 직위가 같아서도 아니다.

오로지 ‘고향’이 같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다. 고향 ‘남해’가 그리운 것은 부모가 생존해 있거나 뼈를 묻은 곳이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 때문이다.

다랭이 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부모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삶이 메마르지 않는 것은 추억할 고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하고픈 일이 있다면

고향을 위하는 일

생각뿐이다

이즈음 우리 앞에 단연 돋보이는 자랑스런 향우가 있다. 박정삼회장이다. 어릴 때 고향 떠나 부산객지에서 힘겹게 모은 재산을 남해에 조선단지를 조성하여 고향을 풍요롭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장본인이다.

천혜의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가난을 대물림해 왔던 우리 고향 남해가 잘사는 고장이 되는 게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남해는 여천 에너지단지와 광양제철을 이용할 수 있는 입지적인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다. 남해에 조선단지가 들어서면 군민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인구도 늘어날 것이다. 나는 발전된 고향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면서 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리에 추진되기를 기원한다.

나에게 있어서

고향 남해의 위력은 대단하다

마치 음식점이 잘되고 안 되는 이유를 ‘친절’에서 찾듯이 말이다. 손님의 취향은 모두가 다르다. 싱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 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 쓴 맛, 매운 맛, 신 맛 등등 선호하는 음식은 제마다 각양각색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은 무슨 이유일까? 그것은 ‘친절’이라는 접착제가 각기 다른 취향을 봉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이처럼 친절의 위력이 대단하듯이 고향 남해의 위력 또한 그에 못지않다.

어쩌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아름다운 남해를 찾았더니 음식문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위생식단이나 표준식단을 만들어 음식문화를 드높이는 일을 했으면 한다. 또 하나는 금산을 찾았더니 보리암에 주차장이 적어 승용차가 대기하는 시간이 많이 걸려 짜증스러웠다고 할 때다. 차라리 복곡저수지 주차장까지만 승용차를 운행하도록 하고 보리암까지는 버스나 업무용차량만 운행하도록 하여 민원의 소지를 없앴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편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의 어깨가 우쭐해진다

남해에 자랑스러운 인물이 많이 난다는 말이다.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차관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을 들먹이며 선후배를 언급할 때이다. 내가 마치 유명인사라도 된 듯 우월감에 빠진다. 또 하나는 남해사람들이 부지런하다는 말이다. 이 말이 왜 이다지도 듣기가 좋은지 모른다. 아마도 요령 피울 줄 모르고 정직하게 산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 아닐까.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지금의 고향풍경을

눈을 지그시 감고 회상한다

마을을 장식하고 있는 노란 유자와 빨갛게 익은 감, 들녘에는 마늘농사와 시금치 수확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일손, 마을 뒷산의 순한 모습, 강진바다에 한가로이 떠 있는 배, 이것이 내 고향 마을풍경이다.

여기에 서면 앞바다에 들어 설 조선소에서 용접봉이 뿜어내는 힘찬 광채와 함께 거대한 배가 진수되는 장면을 오버랩 시켜본다.

이렇게 아름답고 생동감 넘치는 한편의 고향그림을 상상하면서 흐뭇해하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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