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천년동안 이어온 한민족의 숨결과 손때 등 우리조상들의 생활상 그리고 전통문화와 전통가옥으로써 그 맥락을 찾아 서민들과 함께해온 혼과 한이 서려있는 멋과 풍류, 인심 등 숱한 사연과 조상의 얼을 간직해 온 우리고유의 전통가옥인 초가.

고유의 우리 전통가옥이었던 草家가 사라져가고 있어 이젠 보기조차 어렵게 됐다.

초가는 우리의 요람이요 포근한 마음의 고향이기도 했다.

도시인들에게는 더욱 초가에 대한 향수가 짙을 것이다.

그것은 흙과 함께 수 천 년을 살아오는 우리민족의 토속. 바로 그것인 것이다.

고개를 넘으면 곧바로 펼쳐지는 농촌 마을의 주택…

그 마을은 으레 초가지붕들이 옹기종기 정답게 모여 들어선 이웃들을 같이 하고 있었기엡

어느새 석양과 함께 저녁연기가 뿌옇게 어리면 그것은 너무나도 정겨운 동양화 한 폭 이였다. 눈이 오거나 혹한이 계속돼도 초가지붕 밑은 따뜻하기만 했다.

초가의 역사는 아직도 정확하게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초가와 더불어 달과 자연을 벗 삼아 살리라던 옛 선조들은 초가집은 마음의 고향이라 불러 왔었다.

그래도 가을걷이가 끝나면 잿빛으로 퇴색된 초가지붕은 노랗게 옷을 갈아입혔다.

20여 년 전만 해도 전국어디서나 쉽게 볼수 있었던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초가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고유의 전통 양식을 지녔거나 역사적인 인물을 배출하여 학술적으로 연구 가치가 있는 초가들 역시도 하루가 다르게 그 원형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실정이다.

볼품없는 초가지만 언제나 고향처럼 농촌의 정취와 정감 어린 고향…

마음 역시도 포근한 감을 주는 우리가 태어난 사랑의 보금자리가 아니였던가.

초가지붕엔 언제나 박꽃 넝쿨과 함께했던 농촌.

바로 한 폭의 그림이기도 했다.

초가는 우리나라 민가의 대중을 이루었던 가옥으로 세워진 지역의 기후, 지리적인 여건, 생활양식에 따라 각기 다름 모습을 하고 있으며 소유주의 경제 수준에 따라서도 형식이나 구조에 차이가 났다.

그래서 초가는 농촌의 느긋한 정취를 느끼게 하는 역할 외에도 우리나라 서민문화의 큰 부분을 보여주고 있고 당시 사람들의 민속과 의식구조까지 이해할수 있게 만든 것이다.

초가의 수는 우리나라 약 70년대 만 해도 약 3백만 호에 달했으나 지난 80년대 경제기획의 인구조사에 의해서는 약14만여호에 달했다.

그로부터 농촌 지붕개량사업이 활발하게 이뤄져 이제 남아 있는 수라고 해야 얼마 되지 않을 정도다.

그나마 전통양식의 초가는 몇 채도 안되며 문화재 지정 등 보존해야 할 가옥도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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