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천년동안 우리조상들의 생활상 등 면면이 이어온 서민들의 혼과 한이 서려있는 멋, 우물(샘터)

깊다란 깊은 우물 속을 쳐다보며 두레박을 길어 올리는 아낙네들의 팔 힘도 강해 졌건만 요즘은 사용치 않아 팔 힘도 수돗물 꼭지로 돌아 갔다구요…

두레박 안에는 먹을 여름용품인 생선류를 비롯해 수박과 시원한 음식물을 넣어 시원하게 먹기 위해서 담가 두었다가 길어 올려서 먹는 한때의 풍미를 즐겼던 시대도 이젠 영원한 추억 속으로 떠나보냈다.

“질가마 조히 씻고 바위 아래 샘물 길어/ 팥죽 달게 쑤어 절인 김치 이끌어 내니/ 세상에 이 두 맛이야 남이 알까 하노라” 조선조의 문신 金光煜 씨의 시조가락이 아니더라도 여름철 한 대접 샘물만큼 시원한 것이 또 있을까?

해방 전후부터 거의가 샘 우물을 이용했던 정성시대의 그때 그 시절.

역사 이래로 우리조상들의 목숨을 이어준 생명의 물 샘터! 생명수!

오며 가며 어렵잖게 먹을 수 있었던 샘터.

족박 하나면 물배를 채울 수 있었던 샘터는 여인들의 집합장소로 소문 만발하던 곳이기도 했다.

여름에는 이가 시리도록 아주 시원하며 겨울에는 따뜻하다 는 참샘.

그런데 한마을의 공동우물가에는 여인들의 새벽 이야기 가득하기도 했으며 갖가지 사연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물동이에 물을 채우는 바가지 놀림만큼이나 이야기도 많았고 재잘거리는 입놀림에서 드샌 시집살이의 허구들이 들어나기도 했다.

그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기도 했다.

부녀자들은 물론 머리를 길게 따아내린 갓 처녀들의 물동이 행렬은 더 아름다웠다.

깊은 우물속에서 금방 두레박으로 퍼 올린 샘물을 바가지에 담고 보리밥 한 덩어리를 말아 된장에 풋 고추 찍어 마시듯 먹는 그 맛이야 말로 입맛 잃은 여름철에 최고의 별미로 꼽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철엔 시원한 것이 샘물 이지요”

“그러나 요즘은 시골구석 구석에까지 상수도가 들어가 샘물을 먹는 일이 드물게 됐습니다” 하고 그 옛 추억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불가 50여년전만 해도 시골의 유일한 식수원은 샘터요 우물이었다.

더욱이 샘터는 여인네들의 가장 긴요한 생활정보 교환 장소이기도 했지만 주변의 빨래터로서도 유명했었다.

또한 동네의 온갖 소문이 두레박줄 잡은 여인네의 이야기에 춤을 추었고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나 아니꼬운 시누이의 미움도 샘터 두레박 물줄기에 씻겨야 했다.

또한 아들 장가 보내기위해서는 며느리후보생, 며느리감을 선보기위한 장소로도 쓰였으며 이곳에서 멀찌감치 본 그 선본 아가씨가 혼인까지도 했던 일화도 남겨 주었단다.

이젠 우물도, 샘터도, 여인네들의 정담도 점차 말라가고야 말았다.

한편 마을마다에는 참 샘이란 샘터도 있었는데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가다 떨어뜨리기도 하며 뒤집어쓰면 온몸이 한기를 떨던 그러한 추억속의 그 물의 샘터라고 했다.

이렇듯 우리들에겐 생명수 같은 샘터의 물도 이젠 상수도의 파이프에 밀려 그 소중함을 잃고 가고 있으며 어렸을 적 추억속으로만 묻혀 가고 있는 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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