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풍속과 향토 풍속 아쉬어…혼례(婚禮)
세시풍속과 향토 풍속 아쉬어…혼례(婚禮)
  • 남해신문
  • 승인 2007.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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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우리전통 민속과 옛 생활, 향토풍속 등이 날로 퇴색

옛 부터 하나의 강줄기가 흐르듯이 유구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좋은 풍속도를 많이 그려냈다.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월삼질, 창포에 머리감고 그네 뛰는 오월 단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 가을의 풍요로움에 감사하는 한가위 등 그러나 근래에 들어 정월 대보름, 청명한식, 초파일, 단오절, 칠석, 백중, 추석, 동지, 그믐날 등 우리민족고유의 민속과 풍속 등으로 정월에서부터 섣달까지의 풍속으로 이어져 왔으나 요즘 명절들이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점차 흐려져 가고 있어 아쉬움을 면치 못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경남 지방의 혼속역시 구식결혼의식은 찾아보기가 힘들어진다.

이같이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민속과 옛 생활과 풍속 등이 날로 퇴색되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민족문화의 보존과 예술에 대한 문제점을 한번 반성하고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된다.

<편집자 주>

우리 향토 혼속에서도 사주궁합과 봉채, 장가가기 혼례식 신방 지키기 폐습 등 사모관대 차림에 족두리 모습으로 장가, 시집가던 민족고유의 전통 혼례의식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지방은 예부터 학문을 숭상하여 왔으며 예절을 잘 지켜 관혼상제의 행사가 매우 엄격하게 지켜져 왔다는 것이다.

관례와 혼례가 인생의 출발에 관한 의식이라면 상례와 제례도 인생의 결말에 대한 의식인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새로운 현대생활의 습관이 자리 잡으면서 1973년 가정의례준칙이 시행됨으로써 옛날의 아기자기한 고유의 풍속도를 되찾아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같이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민속의식을 이어온 우리의 옛 의식을 보면 관례(冠禮)는 오늘날 성인식에 해당 하는 것으로 남자는 15~20세 사이에 길게 땋은 머리를 풀고서 상투를 틀고 관을 쓰게 하는 의식이지만 현재는 그 관례가 행하여 지지 않고 있다.

혼례, 혼인도 人倫(인륜)의 대사이다.

새로운 가정을 구성하는 시발점인 동시에 이성과 인연을 맺어 평생을 같이 할 것을 기약하는 의식인 것이다.

요즈음은 새로운 신식 혼례관습이 생김에 따라 구식혼은 점차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결혼풍습에는 아직도 고대의 혼례의식절차가 그대로 전해 내려 오는게 많다.

혼례는 예나 지금이나 개인적으론 인생의 대사요, 집안으론 큰 경사로 어느 의식보다 중요한 일로 쳐 왔다. 그에 따라 혼례는 예부터 그 의식절차가 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조선조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당시부터 흔히 六禮(육례)를 갖춰 혼례식을 올린다는 식으로 전해져 오기도 했다.

구식결혼식에 있어 그 육례란,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징(納徵), 청기(請期), 친영(親迎) 등 6가지 의식절차를 말한다.

납채는 신랑집에서 중매인을 통해 신부집에서 혼인의사를 타진 한 다음 신부를 채택한다는 표시로 예물을 보내는 일이고, 문명은 서식을 갖춰 사자(使者)를 보내 여자생모의 성씨를 묻는 것을 이른다.

세 번째 절차의 납길은 길흉 판단을 얻고난 뒤 이를 신부집에 전하고 처음으로 혼인에 관한 일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일이다. 납징은 납페라고도 하는데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예물을 보내 혼약의 성립을 증명하는 일이다.

바로 함을 보내는 절차이다.

청기는 신랑측이 신부측에 혼인날자의 가부를 묻는 예절, 친영은 혼례식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신랑이 친히 신부집에 가서 몸소 신부를 맞아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육례의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모두 거치는 예는 드물었고 의혼(議婚), 납채, 납징, 친영의 4가지 약식절차를 밟는게 당시의 관행 이였다.

또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허혼에 감사 하다는 편지를 보내고 또 여자측에서도 회답을 보내며 양가는 이 사실을 사당에 고하는 납채 의식도 신랑집에선 사주로 보내고 신부집에선 택일을 보내는 식으로 간소화 됐다.

이처럼 혼서(婚書)에 명시된 절차가 생활의 편의에 따라 간결하게 시행되긴 했으나 예의 법도에 어긋난 점은 없었다.

이같은 전통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생활 속에 남아 숨 쉬고 있다.

매파가 양가를 오가며 중매를 선 것이나, 정혼이 되면 사주단자와 택일이 교환되고 신랑집에선 결혼전날 함을 보내는 혼속은 옛적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게속 이어질 것이며 우리의 전통 결혼풍속임에 틀림없다.

일제시대부터 우리나라에는 이른바 신식결혼식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전통적인 혼례를 구식혼례라 하고, 이와 대비되는 결혼식을 말한다.

신식혼례가 구식과 크게 다른 것은 식장(式場)과 복장이다. 신식혼례에서 신랑은 사모관대가 아니라 양복을 입고, 신부는 원삼족두리가 아니라 면사포를 쓰고 드레스를 입는다.

이 밖에도 의례의 절차도 크게 달라졌다. 더구나 기독교·불교 등 종교의식에 의한 혼례도 현대의 혼례로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근세 2백여년 동안 우리나라의 가례 기준에 따라 이어온 것이긴 하지만 요즘 신식 결혼식도 그 의식절차에 있어 옛날 구식 결혼식을 그대로 압축해 놓은 것에 다름이 없다. 그리고 그 옛날로부터 이어온 신방 엿보기 등 풍속엔 구수한 인정이 넘쳐흐르기도 했었던 추억도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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