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산 김성열
동명대학교 경영정보학과 졸
부산 기장군청 근무
 

萬象은 여름으로 가득 차서 온 세상은 푸르고 무덥기만 하다. 여름이니까 당연히 덥겠지 하면 더운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무더운 날도 지난 겨울날 혹독한 추위와 비교하면 엄청 따뜻한 것이다. 모든 사람은 느껴 아는 것이 본성이다 보니 조금 더우면 덥다.

추우면 춥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나(我)라는 존재는 가만히 훑어보면 모든 사물 속에 섞여있는 일부분이다.

나는 누구인가 지구 전체에서 보면 나는 인간이지만 우주 속에서 보면 허공에 떠있는 하나의 먼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고 고뇌하고 기뻐하며 즉, 희노애락을 즐기는 지혜를 가진 지구의 만물 중에서는 가장 영물인 人間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나는 누구인가?

우리의 육신을 움직이는 주체는 바로 나(我)인 것이다. 내 자신 속에 있는 내가 바로 자아(自我)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육체 본위로 살다보니 진정한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지혜를 쓰는 영악한 인간의 단면인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감각 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춥고 더운 것을 알고 사랑하고 성취하는 쾌감을 알고 느끼며 그리고 思考하면서 살아가는 存在인 것이다.

매일같이 생의 삶의 愛着으로 인하여 욕망을 향한 처절한 일상이 시작되고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주기 위하여 애착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일까 하는 화두를 짊어지고 자꾸만 우울할 만큼의 깊고 긴 愛着의 터널을 걸어가고 있다.

물의 本性은 젖는 것이고, 불의 本性은 뜨거운 것이고, 소금의 본성은 짠 것이며, 사람의 본성은 느껴 아는 것이 본성이다.

즉 감성의 동물이라고 한다. 이 감성의 동물인 사람은 처음에 열 구멍을 달고 태어났다. 이 중에서 배의 구멍이 막히면서 아홉 구멍으로 살아간다.

이 중에서 최상품은 눈이다. 눈은 어떤 물질이라도 받아들이면 아프고 병이 나기에 보는 데만 허용되는 최상품이다.

다음으로는 귀인데 귀는 온갖 소리를 듣고 생각을 하게 하지만 귀청을 만들어 내므로 귀는 중품이다. 그리고 다음은 코와 입인데 코는 숨을 쉴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세상의 온갖 냄새를 맡고 가려서 자신을 존재하게 하나 코를 배출하기에 중품과 상품의 중간이고, 다음으로는 중품과 하품의 중간이 바로 입이다.

입은 날마다 먹고 말하고 그리고 때론 가래까지 생산하는 곳이 입이다.

입은 수양을 잘하여 마음을 닦는 방편을 일러 주기도하고 잘못하면 남에게 주워 담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주는 게 입이다.

그래서 가장 죄를 많이 짓는 것이 口業(입으로 짓는 업)이다. 불교의 千手經에서는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라고 하여 구업(口業)을 짓지 말라고 첫마디에 나온다.

항상 입을 잘 관리해야 도덕적인 인품이 유지되는 것이다.

실언으로 남에게 병을 주고 아픔을 주는 것은 폭력보다 더한 고통이므로 언제나 입을 조심하여 부드럽고 좋은 말을 해야 하고 태산같이 무겁게 다루어야 한다.

인체에 가장 하품이 대 소변을 배출하는 구멍이다.

이 하품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게 없으면 배설하지 못하기에 우리 몸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구멍이다.

그래서 이 구멍은 남이 보면 냄새나고 창피하고 부끄럽기에 인간이 느끼는 수치(羞恥)의 한 가지(枝)로서 철이 든 사람이라면 반드시 숨기고 감추고 다닌다. 실없는 말은 이 구멍처럼 숨기고 숨겨서 입 밖으로 뱉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인생을 향유하고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일상 속의 수행이요, 방편인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모든 것이 마음이라는 거울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인데 마음은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고 거울의 영상처럼 사물을 비출 뿐이다. 다만 생각이라는 그림자가 영화 화면처럼 인생살이를 만들고 희노애락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모든 것은 마음 가운데 비친 생각의 그림자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그림자를 못 보면 마음은 언제나 어두운 터널을 가는 것 같이 답답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修行과 修養을 말하며 마음을 닦으면서 行하고 또한 智慧를 生産하는 것이다.

우리가 높은 산을 오를 때에도 변함없이 푸르른 소나무를 보면 나 또한 저 소나무처럼 온갖 것 풍상을 딛고서라도 고난을 감내하며 독야청청한 지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쉼 없이 흘러가는 물길을 바라보면 내 마음도 저 물처럼 변함없이 인연의 근본도리를 소중히 하고 저 맑은 물처럼 마음 또한 맑고 쉼 없이 지혜를 닦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또한 우뚝 선 바위를 볼 때도 저 바위처럼 내 몸과 마음도 여물고 단단해야겠다,

그리고 산 정상에 올라서 온 세상이 다 보이면 나의 도덕과 지혜도 이 산처럼 높아서 세상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데까지 목표를 세워서 가야겠다,

넓고 푸른 바다를 보면 내 마음의 심지도 저 바다처럼 넓고 깊고 푸르른 마음의 근본도리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면 온 세상의 만물은 나의 스승이요, 마음을 수행하는 도덕적인 형상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참마음 즉, 眞性이라고 하는데 진성은 미움도 욕망도 욕심도 없고 성냄도 是非分別도 없는 것이다. 텅 빈 허공과 같은 것인데 우리들 마음속에는 妄念이라는 헛된 욕망이 자리하기에 미움이 있고 시비가 있고 성냄이 생겨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분별에서 선과 악이 생기고 고통이 생기는 것이니 늘 허공처럼 텅 빈 여여함으로 일상을 영위하면 언제나 지혜로운 발상과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선지자로 살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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