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대 우(신문 방송 전언론인)
내고장의 전통문화와 한민족의 숨결과 손때 등 문명의 뒤안길에서 그 맥락을 찾아 수 천년동안 우리조상들의 생활상 등을 이어온 서민들의 혼과 한이 서려있는 멋과 풍류.인심 등 숱한 사연과 함께 우리나라 세시풍속 그리고 조상의 얼을 간직해온 흘러온 역사와 한국의 멋과 역사의 뒤안길 애기를 소재로 한 옛 우리조상들의 생활상태를 재 조명 해보는 ‘사라져 가는 내고장의 풍물’을 시리즈 로 엮어보고자 한다.

‘새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 나가 구름속에 나부낀다’는 김미봉선생의 작시처럼 쌍 올백이 극세저(極細苧)치마 저고리에 ‘날을 듯 잠자리 같은 맵시’가 뭇 총각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남해 세모시는 올올이 여인의 정념(情念)이 서려 더욱 애잔하고 다소곳한 여름철 한복의 고유미로 한때는 하복지의 대명사였다.

온 천지가 신록에 묻힌 5~6월(음)이면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표백된 남해모시(南苧)를 널어놓고 주부들이 직접 다듬고 있는 모습은 예나지금이나 같은 녹색과 백색의 ‘앙상불’이다.

삼복더위에 보기만 해도 시원한 남해모시, 산뜻한 모시 ‘셔츠’나 저고리 감으로 등장했던 남해모시는 이제 시대의 변천에 따라 한때 후퇴 되었다가 다시금 시원한 모시옷으로 삼베옷을 찾고 있다.  6~70년대까지만 하더러도 남해에선 삼삼기로해서 베틀짜리로 옮겨 옷감으로 생산해 왔으나 그후 ‘나일론’이라는 옷감이 한때 판을 쳤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수십년전부터 다시 모시를 되찾게 되고 일삼을 해온 이곳 아낙네들의 모시 다듬는 소리도 아름답기도 했다.

삼복더위 무더운 날씨에도 산뜻한 모시 ‘셔츠’나 모시 저고리를 보면 어딘지 모르게 시원한감을 느끼게 한다. 특히 모시의 특산지였던 남해섬의 아낙네들은 무더운 폭염아래서도 모시손질하기에 더운 줄을 몰랐다.

이같이 무더위를 달래며 모시 손질하기에 바빴던 한때의 남해지방에서는 대부분의 농가에서 가내부업으로 커다란 부수입을 올렸으며 이 모시는 시대가 바뀌자 각종 나일론 옷감이 시장에 헐값으로 범람함으로써 큰 타격을 받기 시작해 점차적으로 사라져 가게 되었다.

약 40여년전 남해군에서도 특산물로 모시를 장려하기 위해 저마 묘표장(1정보)과 함께 묘목생산에 힘써 왔으며 무상으로 생산농가에 골고루 공급해 주기도 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만 하더라도 군내 모시생산면적은 66정7단보에 연간 2만여필이 넘는 생산을 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장날이면 1백여명의 외지상인들이 몰려들고 수천필의 모시가 나와 북적 됐다고 한다. 특히 남해모시는 여름옷감으로는 으뜸이며 특히 한삼 새모시는 나이를 가리지 않아도 그대로 어울리는 독특한 옷감 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모시옷은 뒷손질이 너무나 많이 가는 바람에 여인네들의 보통정성을 들이지 않고서는 입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화학섬유에 밀려 사양길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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