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규 시인 첫 시집 '탈춤 추는 사람들' . 모두 74편의 시가
실려 있다.
 
  


고현면 이어마을에 사는 박정규(60년생)씨가 첫 시집 ‘탈춤 추는 사람들’을 최근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시집을 접한 사람들은 우선 놀라기부터 한다. 언제 그런 소질이 이었던가하고.

박씨는 고현농협에 오랫동안 근무했고, 조합장 선거에 출마, 당선됐다가 조합장직을 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주인공이다. 그간의 삶의 고통들이 그를 시인의 길로 인도했던 것일까?

그는 문학계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계간종합문예지 ‘리토리아’로부터 올해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등단하는 영광을 안았고,  도서출판‘리토리아’를 통해 첫 시집 ‘탈춤 추는 사람들’(리토리아시인선 열세 번째 시집)을 출판하게 됐다.
  
 
  
박정규 향토시인이 탄생했다. 그가 언제부터 시와 연분을 맺게
되었는지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의 첫 시집 ‘탈춤 추는 사람들’은 /시인의 말 /1부 내고향 남해 외 16편 /2부 하얀 고무신 외 18편 /3부 상여소리 외 17편 /4부 농부의 방 외 19편 등 총 74편의 시를 싣고 있으며, 끝에는 고려대 강사이자 시인인 박남희씨가 쓴  <‘사이’에서 흔들리는 나침반>이라는 제목으로 된 <박정규의 시세계>가 해설로 달려있다.  


‘리토리아’ 신인상으로 등단, 74편 실어
 

박씨가 문단에 등단하고 첫 시집을 발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출판기념회가 지난 20일 문화체육센터에서 열렸다. 이 출판기념회는 박씨의 친구들인 도마초등학교 28회 졸업 동기생들(회장 이병주)이 마련한 우정의 출판기념회였다.

도마초 28회 동기생들은 이 행사를 후원한 잡지‘리토리아’관계자들과 리토리아 문학동인들 등 외지에서 출판기념회에 오기로 돼 있던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어서 갑자기 닥친 태풍으로 인한 피해복구에 여념이 없는 때라도 출판기념회를 계획대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으며  태풍 피해로 인해 가라앉아 버린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출판기념회도 조촐하게 치렀다.

출판기념회에는 이동선 문화원장과 한관호 남해신문 발행인이 참석해 박씨의 시집 출판을 축하하고 박씨에게 격려를 보냈다.

이동선 문화원장은 “박씨의 출현은 척박한 향토문학에 신선한 빛과 같다”며 “박씨가 아직 젊기 때문에 많은 활약을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박
  
문예지 리토리아 장종권 주간과 이동선 남해문화원장,
리토리아 황희순 편집장, 박 정규시인이 기념촬영했다.
 
  

박정규 시인은 “시를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어 아는 게 없지만 생활 속에서 생각하는 것들을 반성문(영혼을 맑게 정화하는)을 쓰듯이 글로 옮기다보니 이렇게 시집까지 내게 됐다”면서 “나와 같은 이런 시도들이 많아져야 도시의 문화적 삶의 향유기회에 10%에도 못 미치는 지역사회의 문화적 토대도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인사했다.

우정의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박씨의 동기생들은 “갑작스레 닥친 천재지변 때문에 좋은 날 웃을 수 없는 출판기념회가 되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출판기념회를 마치고 난 동기생들은 “어릴 때부터 문학적 소질은 있었는데 이렇게 시집까지 내는 시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면서 “좋은 시로 사람들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유명한 시인이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한편, 이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박정규 시인이 리토리아 신인상을 수상하기까지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던 리토리아 장종권 편집주간과 황희순 편집장 등 외지 손님들이 행사시간을 넘겨 도착하는 바람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축하객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박정규 시인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사람들.                 
  














박정규 시인의 몇 작품을 여기에 옮긴다.



「내 고향 남해」

할머니 얼굴 주름살 골을 타고 달려온 버스가
마중 나온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싸-한 바다냄새 비늘처럼 일어나 차창을 두드린다
산허리까지 올라선 다랑이들 가슴에
노니는 물안개가 도솔천 대문을 지키고 있다
파릇파릇 마늘 농심 꿈으로 키우는 동면 잊은 다랑이들
대장군 여장군 우뚝 섰는 남해대교 두 팔 뻗어 반기고
방파제 깨우는 파도 거품 위를 비상하는 갈매기들
통통 고깃배 넘나드는 해전포구 노량바다 거북선 지킴이
세속에 발 담지 않은 처녀 허벅살처럼
뽀송뽀송 싱싱한 횟집 아줌니
꼴뚜기 병어회에 묻어나는 인심
망운산 골짝 깬 청옥 같은 물줄기
뿌리 이어 내려오는 맑디맑은 내 고향
할아버지<할아버지<할아버지께서
토담 치고 옹기 모아 둥지 튼 보금자리
할머니 쌈지 속에 콧물 묻은 지폐처럼
밟아버린 세월 저편 아련한 추억들
삶의 주머니에 꼬깃꼬깃 숨었다가
겁 없는 망아지처럼 버스 안으로 뛰어든다
버스는 꼬불꼬불 시간 속을 달리건만
차창 밖으로 어린 세월은 새치만큼씩 마음 안을 키운다
아, 언제나 안기고픈 비릿한 흙냄새 마늘향기
토끼반도 남쪽바다 한려공원 중심에서
청정해역 출렁이는 내 고향 남해.



「하얀 고무신」

어머니께서,
씨암탉 한 마리 바구니에 담아
사립문 열고
장 보러 가시는 길은 따뜻했다
햇살 밟는 징검돌 같은 발자국을
삽살개가 촐랑촐랑 건너며 갔다.

산들바람 간질이는
양지쪽 토담 아래 앉아
사금파리 바늘하여 흙마당을
한올 한올 뜨개질 해
수십 켤레의 고무신을 만들면서
콩닥콩닥 뛰는 가슴 한없이 달랬다.

점심나절 어머니가 차려놓은
다박고구마 서너 개 먹지도 못했다
천사처럼 고운 어머니가
하얀 고무신 앞세우고 골목길 돌아올 때
삽살이 꼬리 넘치는 기쁨
목에 걸고
딸랑딸랑 그림자를 흔들며 왔다.

염소 몰고 뒷동산 오를 때도
학교 가는 돌담길도 신지 않았다
껴안고 뒹굴며 걸어온 인생길
삶의 방향까지 인도해 온 하얀 어머니.

귀밑머리 허옇게 바랜 세월
구릿빛 자궁 바구니 속에
젖은 눈시울로 잉태한
까까머리 그립다.



「탈춤 추는 사람들」
(탈, 탈, 벗어버려! 벗고싶어. 벗어, 제발……)

삶을 재권명財權名이라 부르지 말아요
또한 부정하지 말아요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아니라는, 아니라는 사람들
아니란 걸 난 알아요
알아요. 그런 사람들
탈춤 추는 사람들.


「짝사랑」

나는 시詩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를 쓰지도 못합니다.
나는 시를 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를 얻지도 못합니다.
다만, 어느 스님께서
“불심즉시심佛心卽詩心”이라는 말에
시를 짝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시에게 너무나 쪽팔리는
1급 비밀이지만,
나의 진실을 털어놓습니다.
사실,
나는 불자佛者도 아니랍니다.



「농부의 방」

밤하늘에
밤송이 같은 달님이
개구리 합창소리 화음에 반해
동그라미 가진 별님 불러 방울방울
논갈이한 물논에 와 목욕을 합니다.
별님이 맹글은 논둑길을
논물 근심 업고 달리는
농부의 자전거 바큇살 소리 맞게
물 위의 달님이 논두렁을 따라 달립니다.
가을이 오면 황금빛 나신으로
농부의 가슴을 출렁일 신방에
달님이 다소곳이 이부자릴 폈습니다.
달님처럼 별님처럼 그렇게
들녘은 농부의 부푼 꿈이 됩니다.
세상의 높낮이가 논물처럼 평온합니다.
달님이 가져온 넉넉한 들판에
늦은 밤이 졸음 가득한
피곤을 보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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