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사기 피해 일보 직전까지 갔던 기자로서는 혹여 제2, 제3의 피해자가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사를 쓰고자 한다.
지난 4일 기자는 집에서 ○○신용카드회사 직원이라고 밝힌 남자로부터 디지털카메라 190만원, 현금서비스 200만원 등 연체된 카드대금 390만원을 납부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본인은 결혼 후 10여년간 가계부를 줄곧 적어왔기 때문에 연체 사실에 대해 열을 올리며 강력히 이의를 제기했고, 그는 확인해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10여분이 지났을까. 검찰청 직원이라며 곧 전화가 와서는 ‘명의가 도용된 것 같다. 지금부터 수사에 들어가기 때문에 모든 전화내용이 녹음된다’고 일러주었고, 어느 누구에게도 이 사실에 대해 얘기해서는 안 된다며 일침을 놓았다.
그러면서 내 이름으로 된 카드와 통장은 이 시간 이후부터 입출금 거래 내역 확인을 통한 수사에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가장 가까운 현금지급기로 가서 모든 현금을 한 은행의 통장계좌로 모으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계좌의 안전보안장치를 위해 현금지급기로 가서 자신이 말하는 대로 하기만 하면 수사가 빨리 끝날 수 있다며 협조를 구했다.
모든 국민의 방패막이 되어줄 검찰직원일 것이라 100% 믿음을 갖고 있었기에 가정의 사소한 얘기까지도 묻는 말에 소상하고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정말 한 치의 의구심도 없이, 내 명의를 도용한 범인을 잡아야겠다는 일념(?)하에 기자는 그가 시키는 대로 세 군데의 금융기관을 찾아 모든 현금을 인출해 농협계좌로 입금을 시켰고, 현금지급기 앞에서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를 기다리던 찰나, 내 눈에 확 들어온 문구가 있었다.
‘은행 현금자동지급기로 유인하는 모든 전화는 금융사기입니다!’
사기수법이 너무나 내 경우와 똑같아 순간 사기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농협 직원에게 1시간 가량 나에게 일어났던 상황을 얘기하자 그 직원이 말하길 ‘남해신문 기자도 어쩔 수 없나보네’라며 다행 반, 한심 반이 섞인 말투로 정곡을 찔렀다. 남해신문 유니폼을 입고 은행을 나오는 내 뒷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기자는 며칠 전 인터넷을 통해 물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내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일 거라 확신했기 때문에 개인정보 도용 등 급박한 상황으로 몰린 순수한 주부의 입장에선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주위 분들에게 해명했다.
직장 동료들, 심지어 가족들까지 다들 멍청하다느니, 바보스럽다며 놀려댔지만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그 정도는 유머로 받아들이며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조금만 침착해도 사기라는 걸 알 수 있겠지만 얼떨결에 넘어갈 수 있으니 모두가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말로만 듣던 전화사기를 당할 뻔한 당시의 심정과 마찬가지로 기사를 쓰는 지금도 여전히 가슴이 떨려온다.